[슬레이트]편견과 낙인 지운 정신병동에 햇살을 비추다

이종길 2023. 11. 8.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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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규 감독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환자 간호하던 간호사도 우울증 겪어
모두가 정상·비정상 경계에…가리기도 불가능
치료만 받아도 낙인 찍는 시선 악순환 초래
장벽 낮추기·걸림돌 제거가 우리 몫이라고 강조

넷플릭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는 두 차례 자살 기도가 나온다. 먼저 시도하는 인물은 명신대학교 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병동에서 치료받는 망상 환자 김서완(노재원). 아이러니하게도 현실감각을 되찾으면서 고민에 휩싸인다. 의료진의 퇴원 조치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자신이 없어요"라고 한다. 다시 준비해야 하는 공무원 시험에 대한 두려움이다. 여러 차례 낙방해 좌절과 자학의 나날을 보내왔다. 정신병동을 더 안전하고 편하게 생각한다. "계속 이 길을 가자니 붙을 거라는 확신도 없고, 포기하자니 그동안 했던 게 아깝고. 그렇게 늪에 빠진 것 같아."

자살을 생각하거나 시도하는 사람들은 내가 무엇을 해도 삶이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절망과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감정은 삶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시야를 가로막는다. 나종호 예일대학교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교수는 저서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비극적인 상황에서 탈출하고 고통을 멈추는 유일한 길이 죽음뿐이라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한다. 자살을 시도하는 순간 그들에게 자살은 선택지가 아닌, 현실의 고통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흔히 자살로 세상을 떠난 사람을 이기적이라고 규정하는 시각과 대조된다. 오히려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있을 가능성을 가리킨다. 자살 예방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인식이다. 부정적 시선은 자살 고위험군의 자살 생각이나 시도를 계속 숨기게 하기 때문이다. 적절한 치료 기회를 박탈해버린다. 자살한 사람이 모두 정신질환을 앓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살 경향성은 우울증, 조울증, 경계성 성격장애, 약물중독 환자에게서 흔하게 나타나며, 자살 생각은 우울증 증상의 하나이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주인공 정다은(박보영)의 감정 변화로 보여준다. 김서완을 정성을 다해 치료해온 간호사다. 사망 소식을 전해 듣고 심각한 우울증에 빠진다.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일할수록 비관과 염세는 커진다. 정다은은 한순간 응어리진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한다. 빨간 신호를 보고도 무의식적으로 횡단보도를 건넌다. 말리는 어머니(황영희)를 뿌리치고 달리는 차량을 향해 돌진한다. 감당할 수 없는 절망으로 이성적 사고가 마비돼버렸다. 우울, 불안, 공포, 분노와 같은 강렬한 감정이 소용돌이쳐 극도의 정서적 고통을 느낀다.

정다은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이 심리적 중압감에 마음이 억눌려 있다. 동료 간호사 민들레(이이담)는 어머니의 도박 빚으로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고, 같은 병원 항문외과의 동고윤(연우진)은 불안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손가락 관절을 눌러댄다. 절친한 친구 송유찬(장동윤)은 회사를 그만둔 뒤에도 공황 장애에 시달린다. 심지어 정신건강의학과를 총책임지는 임혁수(김종태) 교수도 환자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어깨가 짓눌려 있다.

정신질환 또는 그 초기 증세를 흔한 질병으로 묘사한 이유는 분명하다. 모두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를 가리기는 불가능하다. 독일의 정신의학의 만프레트 루츠는 저서 '위험한 정신의 지도'에서 "정상과 비정상의 절대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이분법적 사고를 가지기보다 열린 마음으로 유연한 사고를 지녀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규 감독은 정다은의 자각과 같은 병실을 쓰는 환자 윤지선(박정윤)의 넋두리로 루츠의 주장에 힘을 싣는다. "나는 자살을 시도했던 우울증 환자다. 그래서 이곳 정신병동에 왔다. 내가 만난 많은 환자처럼…. 나는 아프다. 그들과 나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데서 자고, 같은 것을 먹어도 나는 여기서 나만이 아프지 않은 사람이라고 믿었다(정다은)." "신기한 게 사람들 눈에는 자기 흉보다 남의 흉이 더 잘 보여. 그러니까 자기 흉은 못 봐. 자기 흉 못 보니까 의사가 있고, 간호사가 있는 거예요(윤지선)."

치료만 받아도 낙인을 찍는 시선은 악순환을 초래할 뿐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위험 수위를 넘어선 지 오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2020년 10만 명당 24.1명)이 가장 높다. 비율은 더 오를 수 있다. 성인 네 명 가운데 한 명이 정신질환을 경험하지만 치료받는 경우는 22%에 불과하다. 일부는 취업이나 직장생활에서의 불이익을 우려해 건강보험을 사용하지도 않는다. 개인에게 가중되는 부담으로 치료가 더뎌져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안타까운 일이 반복된다.

마음이 힘들 때 도움을 청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용기를 요구한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그 장벽을 낮추고 걸림돌을 제거하는 일이 우리의 몫이라고 강조한다. 다른 사람의 삶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노력으로 그 틈이 좁아지는 마법 같은 순간들을 펼친다. 편견과 낙인이 지워진 정신병동에 햇살을 비추며…. "여기는 커튼도 없어. 그래서 다른 병동보다 아침이 제일 빨리 와."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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