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은 석굴에 천여 명이? '천인굴' 이름의 진짜 의미
[이완우 기자]
▲ 지리산 삼정산 바위 끝 문수암 |
ⓒ 이완우 |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에 있는 삼정산(1156m)은 백무동과 한신계곡을 넘어서 지리산 천왕봉을 마주 보고 있다. 이 삼정산 정상의 으뜸 봉우리 아래에 문수암이 자리 잡았다. 지리산 칠암자를 잇는 숲길을 찾아 영원사에서 고개를 넘는 제법 힘든 산길을 1.8km 걸으면 상무주암에 도착하고, 대체로 평탄한 숲길을 0.8km 진행하면 바위 절벽 중간에 도량을 마련한 문수암에 이른다.
이곳 문수암에서는 지리산의 중봉이 보이고 천왕봉과 그 오른쪽 지리산 주능선은 앞산 줄기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이 암자에서는 함양 방면이 잘 조망되며 멀리 가야산(1432m)이 보인다. 산의 이름부터 가야 문화를 암시하고 있는 가야산은 불교문화가 시대적으로 일찍 꽃 피웠을 수 있다.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품에 안은 가야산은 예로부터 뛰어난 지덕을 갖춘 불교 성지로 여겨졌다.
우리나라 불교는 서역과 중국을 통해 북방 경로로 4세기 후반 삼국 시대에 고구려와 백제에 전래하였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러나 인도에서 해양으로 1세기 중반에 가야에 불교가 전래하였을 가능성이 학계에서 제기되었고, 가야 지역의 문화재와 설화에서 그 방증을 확인할 수 있다.
▲ 지리산 삼정산 문수암과 천인굴 |
ⓒ 이완우 |
이 지역 함양의 향토지인 <함양군사>(2012년)에 마적 대사의 행적이 비교적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휴천면 엄천강 상류 용유담 주변의 마적 대사 전설 탐방로를 따라가면 마적동, 마적사 터, 대사 배나무, 바둑판 바위, 대사 우물과 마적대 등 마적 대사와 관련된 설화와 유적지가 풍부하다.
▲ 지리산 삼정산 문수암 천인굴 내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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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유담 지역은 지리산의 천왕봉, 노고단과 백무동 등과 함께 지리산 성모 산신 신앙의 터전이었다고 한다. 마적 대사가 용유담 주변을 시끄럽게 하는 용들을 쫓아내며 던진 바둑판이 조각나면서 이 계곡의 바위가 되어 널려 있다는 설화가 전하는데, 용유담 일대에 마적 대사가 불교를 유입하면서 이런 설화가 남겨진 것으로 보인다.
엄천강과 용유담 주변에 활동하던 마적 도사가 자신의 활동 지역과 가까운 지리산 자락의 삼정산으로 올라와 천연 석굴에서 수행하고 이곳에 문수암을 세웠을 것이다.
혜암(慧庵, 1920~2001) 스님은 현대 한국 불교의 대표적 선승이다. 그는 가야산 해인사의 해인총림 방장을 지낸 혜암 스님이 가야산이 보이는 이곳 천인굴 앞의 폐허가 된 문수암 터를 발견하고, 1965년에 암자 건물을 다시 세워 수행의 도량으로 삼았다.
하루 한 끼니 식사만 한다. 눕지 않고 오래도록 앉아서 좌선한다. 의식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수행에만 전념한다. 이렇게 혜암 스님은 일종식(一種食), 장좌불와(長坐不臥)와 두타고행(頭陀苦行)에 철저하였다. 스님의 '공부하다 죽어라.'와 '공부만이 살길이다.'라는 일관된 수행 태도는 수행자들의 많은 귀감이 되고 있다.
▲ 지리산 삼정산 문수암 천인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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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경(維摩經)에는 재가(在家) 불자였던 유마 거사가 그를 문병한 3만 2천 명을 그의 작은 방장에 모두 앉게 했다고 한다. 이렇게 작은 방에 수많은 사람이 들어가 앉았다는 설화는, 수행자의 교화력이 그만큼 컸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 지리산 삼정산 문수암의 견성골 조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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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암 천연 석굴 천장에서 불교 경전에 나오는 인드라의 구슬 그물을 연상한다. 인드라 하늘은 하나의 그물로 덮여 있는데, 그 그물은 줄지어 엮어진 구슬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구슬 하나하나는 다른 모든 구슬 비추고 있다. 어떤 구슬 하나가 소리를 내면 그물로 연결된 다른 모든 구슬도 공명한다.
이 인드라 구슬의 그물은, 한 수행자의 깨달음은 많은 사람을 깨달음으로 이끌어 공명하게 한다는 비유이다. 자연 현상이나 사물에는 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닮은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하는 프랙탈 구조가 있다. 이렇게 한 수행자의 깨달음이 수많은 중생을 깨달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대승적 비유와 상징을 이 천연 석굴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지리산 문수암의 지리산 주능선 조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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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 신문 지리산인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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