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지구 살리는 친환경농산물을 먹어요"

이해림 헬스조선 기자 2023. 11. 8.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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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개정 앞둔 친환경농어업법
'유기농=농약 불검출' 기준 과도
농약 허용치 선진국 따라 조정
친환경 농사법 준수 규정 추가
클립아트코리아

포장재에 '유기농(ORGANIC)' 마크가 있는 친환경농산물. 다들 한 번쯤 접해봤지만, 장바구니에 담아본 적은 드물다. 일반농산물과 비교하면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다. 친환경농산물 인증 기준이 지나치게 까다롭다 보니, 생산 농가가 적어진 게 단가 상승의 한 원인이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는 친환경농산물 생산과 소비를 활성화하기 위해 다가오는 12월 친환경농어업법 시행규칙을 개정한다. 인증 기준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조절하기 위함이다.

농약 불검출돼야 친환경? 규제 과도해

농림축산식품부는 친환경농업법에 따라 5년 단위로 친환경농업 육성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추진되는 제5차 계획은 '지속가능한 농업 확산'이 목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친환경농산물 소비를 활성화하고, 관행적인 농업을 친환경농업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친환경농업은 생물 다양성을 증진하고 토양 등 농업생태계를 건강하게 보전하며 농산물을 생산한다. 친환경농산물이 건강하게 생산되고 있는지 점검하려 정부가 19개 항목을 확인하고 있으나, 항목 중 하나인 '잔류농약검출' 결과가 인증취소에 큰 영향을 미치는 탓에 환경 보전 활동의 중요성이 덜 부각되고 있다.

이 기준이 친환경농업에 종사하는 농업인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도 문제다. 농약을 일절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농산물에서 소량의 농약이 검출되곤 해서다. 근처 다른 경작지에 뿌려진 농약이 바람이나 물을 타고 흘러들어오거나, 오래전에 뿌렸던 일부 농약이 토양에 잔류해있다가 뒤늦게 검출되는 게 주원인이다. 그러나 현행법에 따르면 친환경농산물은 '농약 불검출'이 원칙이므로, 일단 농약이 검출되면 원인 파악이나 재발 방지보다는 검출 결과에 초점을 맞춰서 행정처분이 이루어지고 있다.

규제가 과도하게 강하다 보니, 친환경농산물 생산과 소비를 촉진하자는 원래의 취지와 반대되는 상황이 펼쳐졌다. 친환경농업에 새로 진입하는 농업인의 수가 줄고, 친환경농업을 시행하다가도 포기하는 농가가 많아졌다. 생산되는 친환경농산물의 양이 줄어드니 가격이 올라가고, 친환경농산물을 원하는 소비자들도 유기농 제품을 선택하기를 망설이게 됐다.

농림축산식품부 유기농 인증 마크

친환경농업 선진국은 국내보다 기준 느슨해

외국은 친환경농산물의 농약 규제가 국내보다 훨씬 느슨하다. 국내는 '불검출'이 기준이지만, 친환경농업 선진국으로 손꼽히는 유럽 연합(EU)·영국·일본은 일반농산물 농약 잔류허용기준(MRL) 이하면 유기농 마크를 달 수 있다. MRL은 식품위생법에서 정한, 식품에 잔류하는 것을 허용하는 농약의 최대 농도를 말한다. 각 식품의 일일 소비량·체중을 고려했을 때, 농산물에 남은 농약을 평생 섭취해도 건강에 영향을 주지 않는 수준에서 설정된다. EU·영국·일본보다 규제가 엄격한 미국도 MRL의 1/20 이하를 친환경농산물 기준으로 설정하고 있다. 해외 기준으로는 충분히 친환경농산물로 인정받을 농산물들이 국내에선 유기농 마크를 달지 못하는 것이다.

친환경농업 농가들은 비의도적 오염으로 인한 농가 피해를 구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정부는 지난해 8월 친환경농업단체 간담회를 계기로 구제 방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친환경농산물 재심사 기회를 확대하고, 비의도적 농약 오염을 확인할 방법을 담은 안내서를 관계기관에 보급한 것이다. 친환경농산물 인증 기준도 해외 사례를 고려해 합리적으로 전환한다. 다가오는 12월, 잔류농약 불검출 기준이 잔류허용기준(MRL)의 1/20 이하(잔류허용기준 미설정 농약은 0.01㎎/㎏ 이하)로 조정될 전망이다. 미국의 기준과 같은 수준이다.

‘친환경농업 발전을 위한 생산자­소비자 상생 심포지엄’ 현장/농림축산식품부 제공

농약 유무 대신 '친환경 기여도'에 집중해야

친환경농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먹거리 안전을 포기하자는 게 아니다. 농약이 검출됐느냐는 결과에만 집착하지 말고, 농사가 이루어지는 과정 전체를 관리하자는 게 이번 개정의 골자다. 실제로 이번 친환경농어업법 개정안은 농약 '불검출'을 '잔류허용기준(MRL)의 1/20 이하'로 대체하는 대신, 농가에서 비의도적 농약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을 추가했다. 또 과거에 농약 검출 이력이 있거나, 농약정보시스템상 농자재 과다구매 이력이 있는 농가를 집중적으로 점검해, 의도적 농약 사용이 확인되면 검출량과 상관없이 인증을 취소할 예정이다.

소비자가 친환경농산물 생산 과정에 직접 참여해, 먹거리 신뢰도를 높일 방안도 마련됐다. 친환경 인증을 받은 농산물을 사후 관리하는 데 소비자들이 명예심사원으로 직접 참여하는 게 한 예다. 이에 관해 지난 9월 '친환경농업 발전을 위한 생산자-소비자 상생 심포지엄'에서 생산자 단체인 한국친환경농업협회와 소비자 단체인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간에 업무협약이 체결됐다. 농업인과 소비자가 함께 친환경농산물 생산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탄소중립 실현을 통한 가치 창출을 도모하기로 약속했다.

앞으로 친환경농업 평가는 농약 유무가 아니라 농사의 전 과정이 환경 보호에 얼마나 이바지하는지에 중점을 둘 것이다. 이를 위해 친환경농어업법 개정안엔 ▲토양 비옥도 유지 ▲생물다양성 확대 ▲해충 천적의 서식지 제공 ▲자원 순환 등 친환경적 경작 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규정이 신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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