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귤 맛 나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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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간 제주에 머물렀을 때 구좌읍 작은 마을에 숙소를 잡았다.
하얀 담벼락에 그려진 아담한 귤나무가 인상적인 시골집이었는데 안거리(안채)는 집주인 부부가 살고 계셨고 밖거리(바깥채)는 민박집으로 운영하고 계셨다.
반질반질 윤이 나는 귤을 보니 어르신의 노지 귤이 생각난다.
뭍에 사는 딸에게 띄우는 귤 맛 나는 사랑을 대신 받은 나는 문득 어르신의 안부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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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간 제주에 머물렀을 때 구좌읍 작은 마을에 숙소를 잡았다. 읍에서도 깊숙이 위치해 있어 오가는 사람이나 차가 드물어 작은 새의 지저귐도 잘 들리는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였다. 하얀 담벼락에 그려진 아담한 귤나무가 인상적인 시골집이었는데 안거리(안채)는 집주인 부부가 살고 계셨고 밖거리(바깥채)는 민박집으로 운영하고 계셨다. 닷새쯤 됐을 때 점심을 먹고 근처 비자나무숲으로 산책갔다 돌아왔는데 숙소에서 나설 때는 없었던 까만 봉지가 문 앞에 놓여 있었다. 그 안에는 크기가 제각각인 노지 귤이 한 아름 담겨 있었다. 영문을 몰라 민박집 아주머니께 여쭤보니 길 건너편에 사는 어르신이 주신 거라고 얘기하셨다. 일면식도 없는 어르신이 두고 간 까만 봉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온 동네가 석양을 받아 금빛으로 물들어 갈 무렵 봉지 안에 담긴 귤도 구슬처럼 빛났다.
낯선 처자가 나타나 인적 드문 동네를 며칠씩 들락날락하니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어르신은 뭍에 사는 딸 생각이 나셨다고 한다. 또래도 아닌, 닮은 구석이라곤 있을 리 없는 처자가 그저 뭍에서 왔다는 이유로 고향 떠난 딸 생각이 나셨다는 것에 마음이 먹먹했다. 이슬과 햇볕을 머금고 귤이 익어가는 동안 어르신의 기다림은 그리움으로 익어갔을 것이다. 귤은 딸을 향한 그리움만큼 가득 담겨서 내게로 왔다. 성한 귤만 골라 담고 또 담았을 손길과 지팡이를 짚고 길을 건너는 작은 체구가 연상됐다. 반겨주는 이가 부재한 집 앞에 귤 봉지를 두고 돌아섰을 모습에 못내 아쉽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노지 귤은 메마른 껍질과 달리 탱글탱글한 알갱이가 씹히며 단맛을 냈다. 자식을 향한 어르신의 사랑도 그만치 달았을까.
귤이 제철인 계절이 다시 왔다. 반질반질 윤이 나는 귤을 보니 어르신의 노지 귤이 생각난다. 뭍에 사는 딸에게 띄우는 귤 맛 나는 사랑을 대신 받은 나는 문득 어르신의 안부가 궁금하다. 여전히 재회의 날을 기다리며 그리움을 쌓고 계실까.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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