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웅빈 특파원의 여기는 워싱턴] “학내 反유대주의 차단”… 유대계, 채용 거부·기부 중단 압박
막강한 정·재계 파워로 실력 행사
대형로펌 100여곳 채용 거부 동조
유력 사모펀드도 기부 중단 방침
잇단 강공책에 젊은 층 반감 고조
친팔레스타인 정서 되레 확산조짐
18~34세 65%는 美 군사지원 반대
미국 대학 내 반유대주의 확산을 우려하는 유대계 로펌과 기업들이 채용 거부나 기부금 중단 카드로 학생들을 압박하면서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유대인 커뮤니티가 막강한 정·재계 파워를 바탕으로 실력 행사에 나서면서 이에 대한 반감도 커지고 있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무차별적 공습으로 민간인 희생이 급증하면서 미국의 젊은층 사이에서는 팔레스타인에 대해 온정적인 정서가 점차 확산되는 분위기다.
미국 대형 로펌 설리번앤크롬웰의 수석 의장인 조셉 셴커 변호사는 지난 1일(현지시간) “최근 몇 주간 대학 캠퍼스에서 발생한 반유대주의적 괴롭힘과 기물 파손, 폭행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며 “이러한 반유대주의 활동은 어느 회사에서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편지를 작성했다. 그는 “로스쿨 학생들을 채용하는 고용주로서 학생들이 차별이나 괴롭힘에 무관용 정책을 적용하는 우리와 일할 준비가 돼 있는지 확인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반유대주의 활동을 한 법학도는 채용하지 않겠다는 경고였다.
셴커 변호사는 이 편지를 다른 로펌 20여곳과 공유했고, 이들 로펌은 변호사 채용이 연계된 대학 로스쿨 100여곳의 학장에게 편지를 전달했다. 편지가 공개되자 더 많은 로펌이 동참을 선언했다. 애킨검프, 깁슨, 던앤클러처, 크라벳, 스웨인앤무어 등 대형 로펌 100여곳이 공동 서명자로 이름을 올렸다.
스티븐 다비도프 솔로몬 UC버클리 법대 교수는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반유대주의 법학도를 채용하지 말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게재했다. 그는 UC버클리 법대생 일부가 이스라엘 지지자의 행사 연설을 금지하는 조례를 추진했다며 “증오와 비인간화, 반유대주의를 지지하는 학생을 채용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그러자 졸업생 200여명이 어윈 체메린스키 로스쿨 학장에게 해당 기고에 대한 항의 서한을 보냈다. 팔레스타인 정의를 위한 법대생 모임인 맷 페르난데스는 “모두가 교수진에 분노하고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며 “많은 사람이 소셜미디어 계정에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조차 불편하게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유대인 헌법학자인 체메린스키 학장은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대학 캠퍼스에 반유대주의에 대한 관용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대학들이 노골적인 반유대주의를 공개 규탄할 것을 촉구했다.
세계 4대 사모펀드 중 하나인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의 마크 로완 회장은 자신의 모교인 펜실베이니아대의 반유대주의 분위기를 문제 삼고 기부 중단 방침을 밝혔다. 그는 대학 측이 반유대주의 대응에 소극적이었다며 리즈 매길 총장과 스콧 복 이사장의 사퇴까지 요구했다.
로완 회장은 대학 재학 시절 부친의 별세로 등록금을 감당할 수 없게 됐을 때 학교 측이 졸업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이에 고마움을 느낀 그는 졸업 후 꾸준히 모교에 기부하는 열혈 동문이 됐다. 2018년엔 경영대학원인 와튼스쿨에 역대 최대 규모인 5000만 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발발한 뒤 대학 내에서 반유대주의가 확산하는데도 학교 측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자 화가 났다고 한다. 로완 회장은 펜실베이니아대 졸업생 400여명 및 기부자들과의 전화 회의로 이 문제의 공론화를 추진했다. 또 예일과 하버드 등 아이비리그 대학들의 ‘큰손 기부자’ 수십명과 줌 회의를 열어 기부 중단을 논의했다고 한다. 글로벌 화장품 기업 에스티로더 창업주의 아들 로널드 로더, 존 헌츠먼 전 유타 주지사 등이 기부 중단에 동참하기로 했다.
억만장자 투자자인 퍼싱 스퀘어 캐피털 설립자 빌 애크먼은 하버드대에 이스라엘 비난 성명에 서명한 학생들 명단을 요구하면서 이들을 절대로 채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폭력적인 반유대주의 활동에 가담한 학생들을 정학 처분하고 학교 게시판에 관련 콘텐츠를 게시한 학생도 징계할 것을 요구했다.
빅토리아 시크릿의 전 최고경영자(CEO)인 레슬리 웩스너와 그의 아내 아비 게일이 설립한 웩스너 재단도 하버드대 기부 중단을 선언했다. 웩스너 재단은 “우리는 하버드 지도부가 무고한 이스라엘 민간인에 대한 야만적 살인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하지 않은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유대인 단체인 반명예훼손연맹은 지난주 미국 전역의 대학 총장 약 200명에게 서한을 보내 각 대학의 팔레스타인 정의를 위한 학생들 지부가 연방법이나 주법을 위반했는지 조사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미국 내 젊은층에서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정서는 약해지고 있다. 퀴니피액대가 지난 2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 하마스의 테러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응에 찬성하는 18~34세 응답자는 32%에 그쳤다. 이들 18~34세 응답자 중 65%는 미국이 이스라엘에 더 많은 군사 지원을 하는 것에 반대했다.
CBS방송이 유거브와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47%는 이스라엘에 대한 동정심을 표했다. 그러나 30세 미만 연령대는 34%만이 이스라엘에 대한 동정심을 나타냈다. 전체 응답자 중 팔레스타인에 대한 동정심을 표한 비율은 26%였지만, 30세 미만에선 34%로 높았다.
뉴욕 바드대 증오연구센터 케네스 스턴 소장은 “반이스라엘 발언을 검열하려 할수록 반유대주의 도그마에 대처하는 게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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