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전화할까, 말까? 그냥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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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 의사가 전혀 없으므로 불출석하겠습니다." "상대방이 조정 의사가 없는 것으로 보여 조정이 무의미합니다. 속히 재판 절차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어떤 내용으로도 조정할 생각이 없습니다. 조정을 취소해 주기 바랍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법원 조정위원입니다. 조정 의사 없다고 의견서 내신 것은 잘 받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조금 궁금한 점이 있어 연락 드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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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 의사가 전혀 없으므로 불출석하겠습니다.” “상대방이 조정 의사가 없는 것으로 보여 조정이 무의미합니다. 속히 재판 절차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어떤 내용으로도 조정할 생각이 없습니다. 조정을 취소해 주기 바랍니다.”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법원에 접수되는 의견서들이다. 민사소송을 하다 보면, 자신이 원하지 않더라도 언젠가 한 번은 조정에 참여하게 된다. 법원에서 서로 합의하라고 권하는 것이다. 그것이 잘 안 돼서 소송까지 걸었는데 다시 합의를 해보라니 답답한 노릇이다. 쓸데없는 시간 낭비 같아 어서 빨리 판결이나 써 달라는 절절한 심정이 이해된다.
안 그래도 사건이 많아 바쁜데 아무도 출석하지 않는다고 하니 다행인건가? 양쪽 다 조정 의사가 없어 조정이 불성립됐다는 간단한 보고서만 작성하고 쉬면 되니 말이다. 그런데 왠지 찜찜하다. ‘전화라도 한 번 해볼까?’ 나도 모르게 수화기를 들었다. ‘뚜르르~뚜르르~’. 연결음이 계속된다. ‘조정할 생각이 없다는데, 굳이 전화를 하면 오히려 화를 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냥 끊을까 하는 순간, 덜컥 “여보세요?” 하며 전화를 받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법원 조정위원입니다. 조정 의사 없다고 의견서 내신 것은 잘 받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조금 궁금한 점이 있어 연락 드렸어요.”
“네? 아니, 저는 조정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지난번에 세 달에 걸쳐 나눠서 준다고 하더니 약속을 안 지켰어요. 이미 충분히 기다렸고, 더 이상 믿음도 가지 않습니다. 빨리 재판으로 보내주세요!”
“아이고, 그러셨군요. 이런 경우에 저희가 권해드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우선 몇 달에 걸쳐 나눠 받거나, 좀 깎아주시거나 하는 내용으로 합의를 하시되 상대방이 약속을 어기면 그 즉시 받으셔야 할 돈 전부와 지연이자까지 한꺼번에 받으시는 내용으로 조정을 하시는 거죠. 이렇게 하시면 상대방이 돈을 주도록 유인할 수 있고, 또 약속을 안 지키더라도 선생님이 하나도 손해를 보지 않게 되거든요.”
“그런 방법도 가능한가요?”
“그럼요! 그냥 밖에서 합의하시는 경우와 다르게 법원을 통해 조정을 하시면 저희가 보내드린 조정안이 판결과 같은 효력이 있으니까 결국 훨씬 더 빨리 승소 판결을 받게 되는 셈이지요.”
“알겠어요. 그럼 그렇게 한 번 보내줘보세요.”
“네, 법원에서 보내드리는 서류는 잘 받고 계시지요? 받아보신 날부터 2주 내로 선생님도 이의 신청을 하지 않으시고, 상대방도 이의 신청을 하지 않으면 됩니다. 만약 상대방이 이의 신청을 한다면 다시 재판을 하실 기회도 있답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전화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절대로 아무 내용으로도 조정을 하지 않겠다는 분이 흔쾌히 조정에 응하셨다. 휴, 다행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던가? 용기 내어 전화를 해보길 잘했다. 이렇게 10건 중 3건 정도는 조정 의사가 없다고 의견서를 냈더라도 대화를 나누다보면 의외로 실마리가 풀린다. 상대방이 조정 의사가 없다고 했지만, 실제로 그에게 전화를 해보면, 아니라고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알고 보면 연락해 달라고 했는데 아무 대답이 없었다는 이유로 조정 의사가 없다고 혼자 해석해 버린 경우다.
친하게 지내다 서먹해진 친구에게, 명절에 대판 싸우고 헤어진 형제에게, 내 돈 떼먹고 시치미 뚝 떼고 있는 지인에게 전화해볼까, 말까? 그냥 해보자! 의외로 상대방도 수화기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내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안지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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