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써본 유언장… 재산기부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절절히 느꼈다

김동규 2023. 11. 8.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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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롭게 꺼내든 종이에 유언장을 작성하려 했다.

유언장에는 자필로 작성자 이름을 비롯해 작성 날짜와 주소지가 포함돼야 하고 도장 혹은 지장이 찍혀 있어야 한다.

유언장 정보를 파악하던 중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제공하는 첫 유언장 작성 지원 플랫폼이 눈길을 끌었다.

국민일보 종교부가 크리스천의 유산 기부 활동을 발굴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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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기부 시즌2]
<9회> 유산 기부의 실제 (1)
김동규 기자가 지난 5일 인천 부평구의 한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유언장을 작성하고 있다.


호기롭게 꺼내든 종이에 유언장을 작성하려 했다. 하지만 누구에게 어떤 말을 어떻게 건네야 할 지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1시간을 고민했지만, 백지는 그대로였다.

유언장이 무엇인지부터 되새겨봐야 했다. 유언장 작성을 도와주는 기독NGO들을 살펴봤다. 유언장이 법적 효력을 지니려면 다섯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전한다. 유언장에는 자필로 작성자 이름을 비롯해 작성 날짜와 주소지가 포함돼야 하고 도장 혹은 지장이 찍혀 있어야 한다.

유언장 정보를 파악하던 중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제공하는 첫 유언장 작성 지원 플랫폼이 눈길을 끌었다. 작성하기 버튼을 누르자 화면에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 마디’ ‘가장 잘한 일에 대해 한 문장으로’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한 마디’ 등 네 가지 질문이 나왔다. 기자는 질문에 맞춰 유언장을 적어 나갔다.

유언장은 고인의 마지막 부탁이다. 유언장을 통해 살아온 인생을 정리하는 한편 유산의 사용처와 자신의 장지 등을 선택한다. 기자도 장례 방식과 유산 처리에 관한 내용을 뒤에 추가로 담으려 했다. 하지만 유산과 관련해서는 손을 댈 수 없었다. 유산을 기부하자니 먼저 아깝단 생각이 들었다.

군대 장교 시절부터 지금의 언론사에 입사하기까지 차곡차곡 모아온 얼마 안되는 돈이 전부였지만,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됐다. 지금까지 유산 기부자를 취재하며 건물 등 부동산을 비롯해 수십억원을 선뜻 건네는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사실 20대인 기자는 유산 기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보건복지부 2023년 보건통계 기준 한국인 평균 기대수명이 83.6세이니 올해 26세인 기자는 약 57년 뒤에나 접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기부 시즌 2’ 팀에 속하면서 유산 기부를 조명하게 됐다. 유산 기부자들이 평생 모아온 재산을 기부하기까지 얼마나 번민이 많았는지 절절히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유언장을 작성하면서 멀다고만 느꼈던 죽음이 내일이 될 수도 있다 생각해 긴장할 줄 알았다. 하지만 긴장보다 반성하는 마음이 제일 먼저 들었다. 죽기까지 몇 해가 남았는지 계산하며 남은 기간에는 무엇을 할지, 지나온 삶은 어땠는지 되돌아봤다.

유언장을 쓰면서 지금은 돌아가신 교회 원로장로였던 친할아버지가 생각나기도 했다. 90여년을 건강하게 살아왔던 할아버지는 마지막 3년간 병마와 기나긴 싸움을 했다. 그럼에도 할아버지의 입술에선 감사가 넘쳤다.

한 번은 할아버지가 군 복무 중이던 기자를 병실로 불렀다. 그는 “자녀와 손주, 집을 포함해 이 모든 것에는 내가 직접 이룬 것이 하나도 없다. 모두 하나님께서 이루셨다”며 “모든 것을 두고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하나님이 모두 이루셨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이를 떠올리니 유산 기부에 대한 의지가 조금씩 생겨났다.

가족주의가 강한 대한민국에선 자식에게 무언가 남겨야 한다는 의식이 공고해 유산 기부가 활발하지 못하다. 국민일보 종교부가 크리스천의 유산 기부 활동을 발굴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성도들이 NGO 단체 등을 통해 기부한 재산은 어려운 학생들의 학비가 됐고 아프리카 빈곤층의 우물 등이 돼 줬다. 가장 낮은 자들을 돌보셨던 예수님의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예수님의 사랑을 유산 기부로 흘려보내는 크리스천들을 보며 성경의 이 말씀을 떠올린다.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요하나, 여러분을 위해서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가난으로 여러분을 부요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고후 8:9, 새번역)

글·사진=김동규 기자 k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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