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미국의 리쇼어링, 성공할 수 있을까
미국 정부가 리쇼어링(reshoring), 즉 해외로 나간 제조업을 국내로 불러들이는 정책을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에는 주목하지 않았던 탈(脫)제조업을 왜 지금은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을까. 일차적 이유는 글로벌 공급망의 균열이 빈번해짐에 따라 경제의 회복탄력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그러나 국가 전략 차원에서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미·중 패권 경쟁의 승패가 첨단 제조업에서 결판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양자역학, 반도체는 경제뿐 아니라 안보와도 직결된다. 생명공학과 2차전지도 미래의 핵심 기술이다. 미국은 이러한 첨단기술 경쟁에서 중국을 제압함으로써 패권국 지위를 확실히 굳히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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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첨단 제조업 재건 정책은
미국형 자본주의에 적합지 않아
신산업 수출 역량 세계 4위 한국
미국 리쇼어링 이후도 내다봐야
」
중산층 강화를 위해서도 첨단 제조업이 필요하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더 나은 발전(Build Back Better)’ 전략을 통해 미국의 중산층을 재건하려 한다. 지구화된 세계에서 미국은 금융과 첨단기술 및 플랫폼 산업으로 성장을 구가해 이 산업의 임금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전통 제조업에서는 다른 국가와의 경쟁에 밀려 근로자의 임금이 오르지 못했다. 이는 경제 양극화를 초래했고 나아가 정치 양극화의 뿌리가 되었다. 미국의 지니계수는 0.43으로 G7 국가 중 소득불평등도가 가장 높다. 상위 1%에 속하는 미국인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로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 수준이다. 따라서 양극단의 중간 정도 소득을 제공하는 첨단 제조업의 리쇼어링은 미국의 심각한 불평등을 치료하는 해결책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미국의 리쇼어링이 미·중 패권 경쟁 이후까지 지속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미국이 첨단 제조업 생산에서도 강자가 되려면 미국형 자본주의를 한국이나 독일·일본형으로 전환해야 한다. ‘자본주의의 다양성(Varieties of Capitalism)’ 논의에 따르면 미국형, 북구형, 유럽대륙형 등으로 분류되는 선진국 자본주의는 체제 내적인 일관성을 갖는다. 노동, 교육, 금융, 문화와 가치관이 일관적으로 정렬되어 있을 뿐 아니라 효율성도 그에 비례한다. 미국은 ‘반도체 및 과학법’에 따라 국내에서의 반도체 연구와 생산을 위해 향후 5년간 약 70조 원의 보조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써는 어림도 없다. 단순히 법률을 제정하고 재정을 투입하는 차원을 훨씬 넘어 경제체제 자체를 전환하는 거대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력 문제를 보자. 미국의 유능한 젊은 세대가 대량생산 공장에서 일하기를 원할까. 창의성을 강조하는 미국의 교육제도가 제조업 강국 정책과 부합할까. 소득 3만 달러 이상, 인구 1000만 명 이상인 국가 중에서 국내총생산 대비 제조업의 비중이 18%를 넘는 국가는 2021년 현재 한국(25%), 일본(20%), 독일(19%) 뿐이다. 미국은 10%에 그친다. 그런데 일본과 독일의 평균 근속연수는 미국의 두 배 정도다. 한국도 근속연수가 매우 짧은 비정규직 중소기업 근로자를 제외하면 미국보다 높다. 첨단 제조업은 특정 직무에 있어 고도의 숙련도를 요구하며 숙련도는 근속연수에 비례한다. 인력 없는 완전자동 공장은 아직 요원하며 고숙련 근로자의 암묵지(暗默知)는 여전히 반도체 수율의 핵심 결정요인이다. 이처럼 고숙련 장기근속 근로자가 충분하지 않다면 미국의 첨단 제조업 발전은 난망하다.
범용(汎用)과 창의성 교육이 핵심인 미국 교육은 제조업 공장에서의 노동과 맞지 않는다. 학교에서 특정 직무를 배우지 않았고 창의성이 강한 청소년들은 반복적인 생산공정에서 일하기보다 아직 세상에 없는 신기술을 개발하고 싶어 할 것이다. 직장 이동이 빈번한 미국은 어느 직종에도 쓰일 수 있는 범용 교육에 집중한다. 반면 독일은 초등학교 이후 직업학교와 실업학교에서 특정 직무에 대한 직업교육을 받는다. 일본은 졸업 후 작업장에서의 교육훈련(OJT)을 통해 제조업 직무훈련을 효과적으로 받는다. 근속연수가 짧은 상황에서 미국 기업이 OJT를 강화하기는 어렵다. 한국의 경우는 문제 해결 역량이 높고 상대적으로 풍부한 이공계 인력이 강점이다. 미국 대학의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 졸업생 비중은 20% 이하지만 한국은 30%를 상회한다.
대한민국은 첨단 제조업 강국의 지위를 지켜야 한다. 대격변의 시대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첨단 제조업 역량에 달려 있다.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의 경제안보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12개 신산업 분야에서 세계 4위의 수출 역량을 가진 나라다. 미국은 1950년과 같은 애치슨 라인을 더는 긋기 어려우며, 중국도 한국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문제는 우리 내부다. 첨단 제조업 인력 부족은 갈수록 심각해진다. 인구 감소와 의대 열풍, 젊은 세대의 산업 현장 기피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미국의 리쇼어링이 끝나고 첨단 제조업이 재편될 미래에도 한국의 위상은 여전히 높을까. 대학은 어떻게 변해야 하나. 우리 정부는 어떤 정책을 갖고 있나.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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