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리 논설위원이 간다] 대통령의 이례적인 카카오 실명 비판, 우연이었을까

안혜리 2023. 11. 8.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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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 높은 카카오 때리기, 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서울 한 카페에서 열린 제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택시기사 유니폼을 입고 온 김호덕 부산 개인택시조합 이사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알고 보니 두 사람은 구면이었다. 연합뉴스.
"카카오의 택시에 대한 횡포는 매우 부도덕하다. 약탈적 가격이라고 해서…경쟁자를 다 없애버리고 독점이 됐을 때 가격을 올려서 받아먹는다. 독과점 행위 중에서도 아주 부도덕한 행태다. 정부가 반드시 제재해야 한다. "

윤석열 대통령 입에서 통상 시민단체나 이익단체 관계자가 기업을 공격할 때 쓸법한 거친 언사가 튀어나왔다. 지난 1일 서울 홍대 앞 한 카페에서 국민 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타운홀 미팅 형식으로 열린 '제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 현장에서다. 택시 기사 유니폼을 입은 첫 번째 발언자가 카카오택시의 수수료와 콜 몰아주기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자 이렇게 질문 수위보다 훨씬 더 강도 높은 답변을 내놓았다. 우발적 질문에 대한 즉흥적 답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현직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특정 기업을 악덕 기업으로 낙인 찍으며 거칠게 비판하는 건 매우 이례적이라 그 배경을 놓고 여러 뒷얘기가 흘러나온다. 특히 카카오택시를 운영하는 카카오모빌리티의 모회사 카카오와 창업주인 김범수 센터장이 SM엔터테인먼트 인수와 관련한 시세조종 의혹 등으로 수사를 받는 상황이라 이날 발언의 충격파는 더 컸다. 윤 대통령의 카카오 비판 발언이 나오게 된 배경을 좇아봤다.


대통령실은 "예정 없던 발언"


분명한 사실 하나는 윤 대통령이 택시업계에 대해 진심이라는 점이다. 이날 회의 직후 대통령실은 "예정에 없던 발언"이라며 "생생한 절규에 대통령의 감정이 북받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얘기다.

타운홀 미팅에 푸른색 택시기사 유니폼을 입고 첫 번째로 발언해 대통령의 깜짝 답변을 끌어낸 사람은 평범한 한 명의 택시기사가 아니다. 윤 대통령과 지난 2021년부터 인연이 있는 김호덕 부산 개인택시조합(이하 조합) 이사장이다. 전국개인택시운송조합연합회 부회장인 동시에 부산시·코나아이와 함께 부산지역 공공 택시 플랫폼인 동백택시를 운영하는 당사자다. 크게 보면 경쟁업체 관계자가 정부 행사에 나와 경쟁 상대편을 비난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 간담회 참석 택시기사, 2년 전 인연 맺었던 조합 이사장
첫 만남 때 이미 카카오에 대한 강도 높은 반감 드러내
카카오 잘못 있지만 특정 기업 반시장적 옥죄기는 위험

김 이사장은 "동백택시 서비스를 이용하라고 조합원들에게 독려해온 것일 뿐 조합이 이 플랫폼을 직접 운영하진 않는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동백택시 출범 자체가 조합 요구로 시작된 데다, 김 이사장이 숱한 언론 인터뷰에서 줄곧 동백택시를 "부산시와 택시업계가 함께 운영하는 공공 플랫폼"으로 소개해온 걸 고려할 때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는 앞서 지난해 5월 부산시장 재보궐 선거 당시엔 박형준 현 시장의 선대위에서 공동 선대위원장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거대 악덕 플랫폼에 치여 생활고에 시달리는 일개 택시 노동자와는 거리가 먼 택시업계 막후 실력자 중 한 사람이라는 얘기다.


"난 아직 길에서 택시 잡아"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예비후보 시절인 지난 2021년 10월 부산 개인택시조합을 찾아 김호덕 이사장(윤 대통령 왼쪽)과 만나 간담회와 오찬을 했다. 김 이사장은 지난 1일 택시 기사 신분으로 대통령실이 마련한 타운홀 미팅에 참석했다. 유튜브 캡처.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 시절인 지난 2021년 10월 부산 개인택시조합을 찾아 김 이사장과 간담회를 진행하면서 일찌감치 카카오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 바 있다. '카카오를 제재하라'는 피켓을 들고 당시 윤 예비후보를 맞은 조합 관계자들 앞에서 윤 대통령은 "큰 경제권력(카카오택시)이 들어와서 여러분들 일하시는데 힘들게 한다면 해결해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이후 택시와 관련한 발언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때 방문했던 부산 조합 얘기를 반복해서 언급했다.

이듬해인 2022년 2월' 택시업계 정책 간담회'에서도 그랬다. 윤 대통령은 이날 훨씬 더 구체적으로 택시업계에 대한 애정, 그리고 동시에 카카오택시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2021년) 부산 조합에 방문했을 때 카카오의 플랫폼 독점화로 인한 수수료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독과점 플랫폼의 갑질에 공정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또 "(나는) 택시를 아직도 길에서 잡는 구식"이라고 자신의 택시 잡기 성향을 소개하며 "택시가 여러 가지 비용을 내고 나면 남는 것도 없는데 이익의 엄청난 부분을 (카카오가) 수수료로 받아간다는 건 불합리하고 국민 상식에도 맞지 않는다"고 했다. "(카카오의) 독과점으로 문제 되는 게 없는지 검토할 것"이라며 "독점적, 약탈적 이윤을 법률적으로 막기 어렵다면 정부가 재정으로 출자하는 플랫폼을 만들어 개선하겠다"는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했다. 이날 택시업계는 카카오 제재 외에도 노령 운전자에 대한 강제 검사 중단이나 고속도로 중앙 차선 이용 등도 건의했다. 당시 윤 후보는 단정적으로 답했던 카카오와 달리 이런 안건에 대해선 "검토하겠다"는 원론적 답변만 했다.


카카오의 자업자득 측면도


카카오는 지금 우군이 없다. 어찌보면 자업자득이다. 골목상권 침해와 문어발 확장 등 지난 정부 때부터 문제로 지적돼온 부분에 대한 개선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과도한 쪼개기 상장 시도, 전문 경영인들의 잇따른 먹튀 등으로 주가가 곤두박질치면서 국민적 불신이 상당하다. 카카오택시 역시 비단 독과점의 폐해뿐만 아니라 서비스와 관련해서도 이런저런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수수료를 내는 택시 기사뿐 아니라 무료로 콜 서비스를 이용하는 일반 이용자들의 불만도 적지않다. 공정위가 257억 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한 배경이다. 하지만 "이익의 엄청난 부분을 수수료로 받아간다"는 후보 시절 윤 대통령의 주장은 일부 택시업계의 과장된 레토릭에 더 가깝지, 객관적 사실과는 차이가 있다. 택시 기사보다 훨씬 많은 수의 택시 이용자가 혜택을 보고 있기도 하다. 문제가 있다고 실제 잘못보다 과한 벌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통령에게 잘못 입력된 정보가 지금 기업을 필요 이상으로 옥죄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센터장이 지난달 23일 SM엔터테인먼트 인수를 위한 주가 시세조종 의혹과 관련해 금감원에 출석해 포토라인에 섰다. 윤석열 정부가 카카오를 손봐주려 한다는 뒷말이 나올만큼 이날의 포토라인은 이례적이었다.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튀어나온 게 지난 1일 타운홀 미팅 발언이다. 실제로 이날 발언은 1~2년 전 택시업계 관계자들과의 정책 간담회 때 나왔던 발언 수위와 거의 유사하다. 타운홀 미팅에 과거 친분 있는 택시업계 관계자를 섭외하고, 그에게 가장 먼저 발언권을 줌으로써 대통령실이 사전에 카카오를 향한 대통령의 작심 발언을 계획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김 이사장은 "대통령실로부터 특정한 얘기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지 않았다"면서도 다른 일반인 참석자와 달리 사전에 발언권을 보장받았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이날 타운홀 미팅에서 적잖은 참석자들이 질문하려고 여러 차례 손을 들었지만 실제로 발언권을 얻은 사람은 첫 질문자인 김 이사장을 포함해 10여명에 불과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회의에 앞서 "2분 이내로 짧게 해달라"는 부탁만 했다고 한다.

대선 당시 윤석열 캠프에 있었던 한 인사는 "카카오택시 이용 경험이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택시업계 관계자들 주장이 과대 대표되면서 벌어진 일"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정책 라인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타다 규제로 경쟁이 사라져 불거진 문제가 카카오택시의 독점이니만큼 경쟁 확대 정책을 써야지 카카오택시 제재로 가면 안 된다'는 조언을 여러 차례 했는데도 대통령 머릿속에 워낙 카카오는 벌줘야 할 악, 택시기사는 동정받아야 하는 약자라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바뀌질 않더라"고 전했다.


자율 규제 원칙 맞는지 살펴봐야


택시기사 면허가 있는 이준석 전 대표는 "카카오택시에 과도한 수수료 문제가 있다면 윤 대통령이 언급한 것처럼 정부 플랫폼으로 경쟁을 시키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며 "다만 억지로 특정 기업 주리틀기 식으로 가면 오히려 문제만 키운다"고 우려했다. 또 "이용자 편익을 떠나 카카오택시의 호출 서비스가 사라졌을 때 과연 택시 기사들의 수익에 플러스가 될 것인지도 알 수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무리하게 민간 택시 플랫폼을 손보는 순간 대한민국에서 사업하려는 사람들은 이걸 리스크로 받아들이기에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다른 IT업계 창업자도 비슷한 걱정을 했다. 그는 "이러다 카카오가 모빌리티 사업을 정말 접어버리면 국민이 과거처럼 불편을 감수하거나 아니면 외국계 기업이 한국시장을 장악하지 않겠느냐"며 "잘못한 게 있다면 처벌하고 고치면 되는데 이렇게 회사를 존폐 위기로까지 내몰면 스타트업계에도 나쁜 시그널을 준다"고 했다. 국내의 대표적 창업 성공 스토리인 김범수의 카카오마저 '애써 키웠지만 정부가 흔들면 저렇게 다 털리는구나'라는 생각에 사업할 의지가 꺾인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과거 대통령들이 이례적으로 특정 기업을 언급할 때마다 해당 기업 경영진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기업이 퇴출당하는 등 뒤끝이 좋지 않았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같은 대통령의 발언이 보수 정부의 전반적인 친기업적, 자율규제 우선의 경제정책 기조와도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민생을 챙기는 건 칭찬할 일이지만 자칫 지난 문재인 정부와 유사한 반(反)시장, 반기업으로 흐를까 걱정하는 보수 인사가 점점 늘고 있다.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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