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프리즘] 밀양 영남루
우리 전통 건축 중 누(樓)와 정(亭)이 있다. 누(樓)와 정(亭)은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탁 트인 건물을 말하는데, 층수에 따라 정은 1층, 누는 2층을 의미한다.
경남 밀양시에 있는 영남루(嶺南樓)는 진주 촉석루(矗石樓), 평양 부벽루(浮碧樓)와 함께 조선시대 3대 명루로 꼽히던 곳이다. 영남지역 사람들은 지금도 자주 찾는 밀양의 대표 명소다. 누 양편에 날개처럼 거느린 능파각과 침류각이라는 부속건물까지 있어 웅장함도 남다르지만, 이곳에 올라서면 확 트인 밀양강과 시가지가 훤히 내려다보여 그야말로 시심(詩心)이 절로 생기는 곳이다.
그래서일까. 영남루는 전국에서 몰려든 유명한 문인들의 시와 글을 새긴 현판이 한때 300여개나 걸려 ‘시문(詩文) 현판 전시장’으로 불렸다. 영남루는 통일신라 때 세운 영남사(嶺南寺)라는 절에 있던 금벽루(金璧樓) 혹은 소루(小樓), 죽루(竹樓)라 불리는 작은 누각에서 시작됐다. 고려 때 절은 폐사되고 누각만 남아 있던 것을 1365년(공민왕 14) 밀양 부사 김주(1339~1404)가 중창하고 영남루라 불렀다. 그러나 화재와 전쟁으로 몇 차례 소실됐다가 1844년 중건되면서 현재 남은 시판은 12개 정도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843년 이인재 부사의 아들 이중석(당시 11세)과 이현석(7세) 형제가 썼다는 ‘영남제일루(嶺南第一樓)’와 ‘영남루(嶺南樓)’ 현판이다. 당대 최고의 명필만이 쓸 수 있다던 현판을 당시 서예 신동으로 불렸던 이들 형제가 썼다는 기록이 영남루 중앙 대들보에 남아 있다.
누각 천장을 따라 구한말 추사체의 대가 성파 하동주가 쓴 현판을 비롯해 퇴계 이황, 목은 이색, 삼우당 문익점 등이 남긴 현판도 걸려 있어 이곳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한다.
영남루에는 유명한 설화도 얽혀있다. 밀양 부사의 외동딸 아랑이 달구경을 갔다가 자신을 겁탈하려는 관노에게 살해되고 누각 아래 대숲에 버려졌다. 이후 밀양에 부임한 부사마다 첫날 밤에 죽어 나갔는데 이 소식을 듣고 자청해 부임한 간 큰 부사가 밤에 귀신으로 나타난 아랑의 억울한 사연을 듣고 원혼을 풀어줬다는 이야기다. 밀양 아리랑의 원류로 전해지는 ‘아랑설화’다. 이를 모티브로 드라마 ‘아랑 사또전’과 영화 ‘아랑’도 만들어졌고, 김영하의 ‘아랑은 왜’라는 소설도 나왔다.
문화재청은 지난달 30일 밀양 영남루를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 영남루는 일제강점기인 1933년 보물로 지정됐다가 1955년 국보로 승격됐다. 하지만 1962년 문화재 보호법이 제정되면서 다시 보물로 내려앉았는데 이번에 국보로 지정되면 61년 만에 가치를 재평가받는 셈이다. 건축학적인 가치는 물론 인문학과 역사학적으로도 가치가 큰 영남루가 재조명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위성욱 부산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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