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경고... '건강한 여성의 몸'은 대체 어디 있나 [양민영의 한 솔로]

양민영 2023. 11. 7.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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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영의 한 솔로] 나는 어쩌다가 유지어터가 됐나

[양민영 기자]

 체중 변화는 내 삶의 모든 이슈를 집어삼켰다.
ⓒ unsplash
 
한 출판사의 대표와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비록 얼굴은 모르지만 카페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가 누구인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나를 뚫어져라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다가와서 말을 걸거나 하지 않아서, 핸드폰 메시지가 몇 번 오간 다음에야 인사를 나눴다. 

그는 내가 출연한 영상과 인터뷰를 찾아보고도 나를 알아보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고 싶어 했다. '오해하지 말고 들으라'고 하면서 운을 떼는데 듣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말인즉 사진과 영상으로 볼 때는 지금보다 몸집이 훨씬 컸다는 거다. 출간을 제안받고 나간 자리인데 처음 받은 질문이 체중 감량의 비결이었다.  

과장하면 그 무렵에 거의 매일 듣는 질문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자주 들르던 육개장집 사장님이, 몇 년간 말 건 적이 없는 옆집 사람이, 시장에서 양배추를 팔던 상인이 저마다 체중에 관해 물었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불쾌하진 않았다. 누군가가 갑자기 10kg도 더 감량한 채 나타나면 나부터도 무슨 변화가 있었나 궁금할 테니까.

체중 변화는 내 삶의 모든 이슈를 집어삼켰다. 내가 쓴 글이 체중의 반만큼만이라도 관심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말이지 현대사회의 가장 주된 관심사가 '어떻게 생겼느냐'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팩트다. 그러니까 원래부터 저체중이 아니면서 성별마저 여성인 내가 감량 이후에 겪은 일은 너무나 전형적이다. 

'음식중독'이라는 깨달음, 그리고 변화
 
▲ 음식 중독 뭘 먹어도 만족하지 못해서 식당, 와인 샵, 카페, 편의점을 끝없이 순회했다.
ⓒ 픽셀스
 
그러나 전형성을 살짝 빗나간 요소도 있다. 내가 페미니스트이고 다름 아닌 운동을 주제로 글을 쓴다는 사실이었다. 애초에 감량을 시작한 것도 주짓수 대회를 소재로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 그전까지 몸무게는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모든 여성이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몸무게에서 자유롭고 마구 날뛰는 식욕의 고삐를 과감하게 풀어버린 여성으로서 자부심마저 느꼈다. 그리고 내 평생 지금 가장 건강하다고 굳게 믿었다. 절대 굶주리지 않고 그깟 숫자에 연연하지 않는 나! 10년 전쯤에 저체중이던 몸이, '몸매가…'로 시작하던 여성혐오적인 언사 따위가 조금도 그립지 않았다. 

그런데 체중을 줄이느라 식사량을 절제하고 채소 위주로 먹으면서 내가 가벼운 음식중독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스트레스에 따른 가장 쉽고 편한 보상으로 자극적인 맛을 원했다. 그러나 흡사 마약중독처럼 기대했던 보상이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무엇을 먹어도 만족하지 못해서 식당, 와인샵, 카페, 편의점을 끝없이 순회했다. 갈수록 체중이 늘어나는 이유를 나이라고 합리화했으나 진짜 원인은 음식중독이었다.  

힘이 세고 적당히 살찐 채로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먹던 내가 음식중독이라니! 배신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충격의 반작용으로 이번에 건강식에 매달렸다. 샐러드 식사는 몸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정화하는 것 같았다. 또 전체 식사량에서 채소 비중을 높이기 위해서 아마추어 과학자처럼 이런저런 생체 실험에 몰두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유튜브 구독 목록에 비건 요리 채널이 넘쳐나고 요즘 유행이라는 햄프 시드, 바질 시드, 치아 시드 등의 온갖 종류의 씨앗과 이름도 낯선 콩과 잡곡, 프로틴 파우더가 집으로 배달됐다. 고기를 구워서 반주를 곁들이거나 배달 음식을 먹을 때보다 훨씬 많은 돈을 썼다.

비건 레시피를 하도 뒤져서인지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끊임없이 다이어트 영상을 추천했다. 건강 프로파간다를 조금이라도 더 자극적인 어조로 전달하고자 몸부림치는 콘텐츠를 몇 개 접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 영상들은 조만간 나에게 감량한 무게 이상으로 체중이 불어나는, 이른바 요요 현상이 닥칠 거라고 예언했다. 재앙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여자들의 영원히 끝나지 않은 숙제, '관리'를 평생 이어가는 거다. 

보는 사람의 잣대에 따라 결정되는 '건강'
 
▲ 다이어트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병적으로 몸무게에 집착하는, ‘건강치 못한 여자'가 돼 있었다.
ⓒ 픽셀스
 
그래서 주말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서 요거트볼(요거트, 오트밀, 각종 씨앗과 과일을 버무린 음식)을 먹고 수영장에 갔다. 내 삶이 건강 그 자체라는 생각에 약간 도취될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동안 인사하며 지내던 한 할머니가 '너무 마른 것 같으니까 살을 그만 빼라'고 경고했다. 

여기서 체중을 더 줄였다가는 비난받을 일만 남았다. 망상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미 먹은 걸 토하거나 사과 반 조각으로 식사하는 나를 상상하는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병적으로 몸무게에 집착하는, '건강치 못한 여자'가 돼 있었다. 

허탈한 사실은 내가 건강해지려고 노력하는 동안에도 건강의 여부는 이미 보는 사람의 잣대에 따라 결정돼 있다는 거다. 우리는 항상 건강을 말한다. 그러나 건강 상태가 좋아서, 건강의 결과물로써 어떤 몸이 도출되는 게 아니라, 특정한 몸을 통해서 그 사람의 건강 상태를 짐작할 뿐이다. 엄밀히 말해 실제 건강은 누구의 관심사도 아니다. 

건강한 몸이라는 것 또한 불특정한 이미지의 산물이자 허상이다. 대표적인 예로 걸그룹 멤버들은 청소년에게까지 무리한 다이어트를 유행시켜서 문제가 된다. 누구도 그들의 몸을, 예쁘다고 할지언정 건강하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명 피겨 선수나 체조 선수의 경우 똑같이 저체중임에도 운동선수라는 이유로 대중에게 건강한 이미지로 각인된다. 실제 운동선수들이 체급을 낮추기 위해서 감량하는 과정을 보면 그야말로 병적이지만 누구도 이러한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첫 번째 책 <운동하는 여자>가 세상에 나왔을 때 엄마는 "네 몸이 그래서 책이 잘 팔리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때 나는 '전형적인 몸과 운동을 결부시키지 않는 게 이 책의 존재 의의'라고 받아쳤다. 지금도 엄마의 말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대중적인 잣대를 그대로 반영한 충고인 건 분명하다.  

운동성과 관련된 이미지로 타인에게 어필하고 싶다면 하나의 노선을 선택해야 한다. 인플루언서처럼 철저하게 '관리한 몸'에 속하든가 그게 아니면 전형성에서 벗어난, 운동선수 같은 육체성을 갖춰야 한다. 한마디로 철저한 관리도, 근육으로 만든 육체성도, 심지어 몸을 그냥 방치하는 것도 전부 몸으로써 표현된다. 이 냉정한 기준으로 볼 때 이전 내 몸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고 그 결과 엄마 같은 사람에게 운동의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근래 섭외된 인터뷰집에 사진이 실릴 거라는 말을 들었다. 나도 모르게 감량한 몸이 준비돼 있음에 안도했다. 그리고 되뇌었다. '조금만 더 유지하자. 촬영이 끝날 때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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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게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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