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질 그들의 거시기는 어쩌다…[강영운의 ‘야! 한 생각, 아! 한 생각]
매경이코노미는 이번 주부터 새로운 성칼럼 코너 ‘강영운의 야! 한 생각, 아! 한 생각’ 연재를 시작합니다. 필자인 강영운 매일경제 기자는 역사 속 외설과 동식물 사이의 생식 등 야한 얘기 속에서 ‘아!’ 하는 인문학적 인사이트를 전달합니다. 매일경제 온라인 페이지에서 네이버 구독자 1만8000명을 달성하는 등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성기는 남성성의 지표였다. 크면 클수록 다산의 상징으로 숭상받았다. 농경 사회일수록 노동력이 많아야 했고, 다산(多産)은 선으로 통했기 때문이다.
구석기 시대에 만들어진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봐도, 가슴과 성기가 비정상적으로 크게 묘사돼 있는 걸 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보다 앞선 이집트에서도 큰 성기로 묘사된 신의 모습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라이벌 관계였던 페르시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는 미의 이상향을 그린 석상에 작은 성기를 그려 넣은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작은 성기’를 아름답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들은 커다란 성기는 오히려 멍청하고 탐욕적이며 흉한 것이라고 여겼다. 당시 이상적인 남성의 기준은 탄탄한 근육질 몸매에, 합리적 사고로 무장한 이성, 그리고 작은 성기였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를 배출한 철학의 나라였던 만큼 욕망의 지표(?)는 작아야만 했다. 갓 태어난 아기의 성기가 가장 아름답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다.
여기 또 하나 ‘작은 성기’를 예찬한 나라가 있다. 바로 고려다. 1992년 북한 개성에서 한 동상이 발견된다. 역사학계가 발칵 뒤집혔다. 동상의 모델이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이었기 때문이다. 연구가 진행될수록 학계는 다시 한 번 놀란다. 지나치게 작게 묘사된 왕건 동상의 ‘성기’가 문제였다. 최고 존엄인 왕의 신체, 그것도 남성의 상징을 이토록 작게 묘사하다니. 고려 시대 직전인 신라 시대 지증왕이 무려 30㎝에 달하는 성기의 소유자로 묘사된 것과는 무척이나 대조되는 일이었다. 고려에 반감을 가진 세력의 노골적인 폄훼였을까.
노명호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의 해석은 달랐다. ‘고려에서는 작은 성기가 오히려 예찬을 받았다’는 주장이다.
답은 ‘불교 문화’에 있다. 불교에서는 부처가 갖춰야 할 32가지의 신체 특징을 ‘32대인상’으로 규정한다. 그 특징 가운데 하나가 ‘마음장상(馬陰藏相)’이다. 말(馬)의 남근(陰)처럼 성기가 오그라들어 몸 안에 숨은(藏) 형상(相)을 뜻한다. (말이 성기를 숨기고 있다는 것도 의외의 사실이다.) 도가 통해 깨달음을 얻으면 하체의 양기가 머리 쪽으로 올라가 성기가 아주 작아지는 경지에 이른다는 의미다. 불교 국가였던 고려에서는 왕건의 성기를 아주 작게 표현해 ‘부처와 같은 깨달음을 얻은 자’라고 존경을 표했던 셈이다. 태조왕건상과 그리스 석상의 연결고리다.
오늘날 작은 성기는 일종의 조롱의 대상이다. 극단적 페미니즘 성향 커뮤니티에서 남성을 조롱한다면서 작은 성기를 의미하는 손가락 모양 로고를 사용하는 식이다. 혹시 누군가에게 이와 비슷한 조롱을 듣는다면, 이렇게 맞불을 놓으시는 건 어떠할지. “우리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숭상한 미(美) 그 자체면서, 부처의 깨달음을 얻은 자”라고. 때로는 생각의 전환이 자존감을 높이는 길일 수 있다.
성기 크기보단 몸집 경쟁이 진화에 우월
이제 동물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180㎝가 넘는 큰 키에, 떡 벌어지는 어깨, 윤기가 흐르는 털까지. 육중한 몸에서는 카리스마가 넘쳐흐른다. 남성성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동물, 바로 영장류의 자랑 고릴라 이야기다.
그러나 고릴라에게도 말 못할 비밀이 존재한다. 테스토스테론이 폭발할 것 같은 외관과는 달리 성기 크기가 고작 4~5㎝에 불과할 정도로 유달리 작아서다. 경건한 명상 시간이거나 아주 추워서 몸이 오들오들 떨릴 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성적 욕구가 넘쳐흘러 가장 화(?)가 났을 때의 크기다. 시쳇말로 간에 기별도 안 온다고 해야 할까.
고릴라는 영장류 중에서도 그 크기가 매우 작은 편에 속한다. 인간 남성의 평균은 12㎝로 알려졌다. 인간과 비교했을 때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인류와 고릴라의 조상이 갈라진 건 불과 900만년 전. 태곳적 시간처럼 느껴지지만 진화의 관점에서는 매우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 DNA 차이 역시 2.3% 정도. 힘세고 강인한 고릴라는 어쩌다 ‘애송이’가 됐던 것일까.
성기는 생식기면서 동시에 다양한 진화적 비밀을 담고 있다. 바꿔 말하면, 고릴라의 짝짓기 체계가 이 같은 체제를 불러왔다.
수컷 고릴라 한 마리가 암컷 여러 마리에 둘러싸여 있다. 녀석은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먹이를 먹고 있다. 이 여자 저 여자, 아니 이 암컷 저 암컷을 만지면서. 학자들은 이 고릴라를 ‘실버백’이라고 부른다. 무리를 이끄는 대장 수컷이라는 의미다. 실버백 고릴라는 우리 네로 비교하면 왕과 같은 삶을 살아간다. 리더 고릴라인 실버백이 여러 암컷을 독차지하기 때문이다. 암컷들은 이 대장 수컷과만 관계를 할 수 있다. 혹여 다른 수컷과 교미했을 때 후환이 두려운 일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임금의 후궁이 외간 남자와 성관계를 맺는 것과 같은 셈이다.
다른 수컷과의 교미는 실버백이 죽어야 가능한 일이다. 수컷 고릴라가 짝짓기를 원 없이 하기 위해서는 싸움을 잘해 우두머리가 돼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외모나 성기 크기는 짝짓기의 주요 요인이 아닌 셈이다. 성기가 매우 작더라도 싸움을 잘해 한 무리의 ‘실버백’이 되면 모든 암컷과 수시로 잠자리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 진화적으로 수컷 고릴라들은 몸집을 불려 ‘싸움짱’이 될 유인은 많지만, 동시에 성기는 ‘성장동력’을 잃어버리는 셈이다. 우람한 몸집의 고릴라가 성기나 고환이 무척 작은 배경이다. 몸집이 아담한 침팬지는 고릴라보다 성기가 두 배나 크다. 이 역시 짝짓기에 비밀이 있다. 침팬지 암컷은 자유롭게 여러 수컷과 사랑을 나눈다. 싸움을 잘하는 수컷과도, 못하는 수컷과도, 잘생긴 수컷과도, 못생긴 수컷과도 교미한다. 고릴라 암컷이 리더와만 자야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우두머리가 되지 않아도 언제나 교미가 가능한 침팬지 수컷은 행복할까. 심리적으로는 모르겠지만 진화적으로는 마냥 그렇지만도 않다. 암컷이 자유롭게 섹스를 하는 탓에 자신의 유전자가 전달될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침팬지 고환과 성기가 큰 방향으로 진화하게 된 이유다. 고릴라 고환이 호두 크기인 반면, 침팬지는 달걀만 한 것을 지니고 있다. (성기도 고릴라의 두 배인 8㎝에 달한다.) 정자 역시 침팬지의 것이 200배나 더 많다. 한 번의 성관계에서 가능한 많은 정자를 암컷에 전달하는 게 후손을 남기는 데 유리했기 때문이다. 생물학계에서는 이를 ‘정자 경쟁’이라고 부른다.
몸집은 작지만 성기는 큰 침팬지, 큰 덩치를 지녔지만 성기가 작은 고릴라. 모두가 각자의 미를 추구한다. 고대 그리스인과 현대인의 미가 다르듯.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3호 (2023.11.08~2023.11.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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