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직원에 자사주 300억 지급 곽동신 한미반도체 부회장 [CEO 라운지]
반도체 후공정 장비 업체인 한미반도체가 300억원 규모 자사주를 전 직원에 지급하면서 재계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 열풍으로 AI 반도체 장비 시장이 날개를 달면서 한미반도체 주가가 급등했는데, 이참에 임직원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다.
직원 1인당 4800만원 챙긴다
한미반도체는 이르면 연내 직원들에게 자사주를 부여하고, 3년 후 자사주를 지급할 예정이다. 직원들의 장기근속을 유도하기 위한 조치다. 올해 반기보고서 기준 한미반도체 직원 수는 624명. 자사주 300억원을 직원 수로 나누면 1인당 약 4800만원에 달하는 자사주를 지급받을 전망이다. 단 직원에게 부여하는 자사주 수량은 내부 평가, 근속 연수 등에 따라 차등을 둘 예정이다.
한미반도체를 이끌어온 곽동신 부회장(49)은 이번 자사주 지급을 두고 “1998년 입사 후 가장 기쁜 순간이다. 함께 동고동락한 동료들과 기쁨을 나눌 수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의미 있는 순간”이라고 밝혔다.
한미반도체가 글로벌 반도체업계 불황에도 파격적인 자사주를 지급하는 배경은 뭘까. HBM(고대역폭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급성장한 영향이 크다. 한미반도체는 생성형 AI의 HBM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후공정 장비를 생산해왔다.
반도체 공정은 크게 전공정과 후공정으로 나뉜다. 전공정은 원재료인 웨이퍼에 집적회로를 그려 전기적 특성을 지니도록 가공하는 과정이다. 후공정은 기판 위에 만들어진 회로를 하나씩 자르고 배선을 연결, 패키징한 후 제대로 작동하는지 검사하는 단계다.
보통 칩 미세화를 위한 최첨단 기술이 발전해온 전공정에 비해, 후공정은 기술적 난도가 낮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최근 전공정에서의 반도체 성능 개선이 힘에 부치면서 후공정에서 미세화 한계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후공정, 특히 패키징 공정에 대형 반도체 기업이 잇따라 진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HBM은 고성능 AI 연산에 특화된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로 꼽힌다. 기판 위에 최대 12개 메모리 트랜지스터를 쌓아 올리는 적층 방식으로 제조한다. 칩을 연결하는 패키징 기술이 핵심이다. HBM을 제작하려면 열 압착 방식으로 가공이 끝난 칩을 회로 기판에 부착하는 장비인 TC 본더가 필요하다. 주로 차세대 HBM 반도체 칩 수직 적층 생산성, 정밀도 향상 패키징에 활용된다.
특히 한미반도체가 생산하는 ‘듀얼 TC 본더’는 HBM 생산에 꼭 필요한 장비다. HBM은 여러 개 D램을 수직으로 쌓은 뒤 1024개의 구멍(데이터 통로)을 뚫어 연결해 생산한다. 듀얼 TC 본더는 쌓아 올린 D램의 구멍을 뚫는 장비다.
이번에 선보인 ‘듀얼 TC 본더 그리핀’은 반도체 칩 적층을 위해 생산성, 정밀도가 높아졌다는 것이 한미반도체 측 설명이다. 덕분에 최근 SK하이닉스로부터 3세대 듀얼 TC 본더 그리핀 수주를 따냈다. 수주 규모는 600억원 수준으로 단일 계약 기준 사상 최대치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 점유율은 50%, 삼성전자는 40%로 집계됐다. HBM 시장점유율 1위 SK하이닉스에 HBM 관련 장비를 가장 많이 납품하는 업체가 한미반도체다. 국내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 중 가장 주목받는 이유다.
HBM 반도체 시장 전망은 그 어느 때보다 밝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전 세계 HBM 반도체 시장 규모는 올해 40억달러(약 5조4000억원)에서 2027년 330억달러(약 44조5300억원)로 연평균 52.5%가량 성장할 전망이다.
이민희 BN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AI 투자 붐으로 내년 HBM 수요가 2배가량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내년 한미반도체의 TC 본더 수주가 올해보다 5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해 매출 2000억원 달할 듯
실적도 괜찮다. 한미반도체는 지난해 매출 3276억원, 영업이익 1119억원을 기록했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영업이익 1000억원을 돌파했고 영업이익률도 33%에 달했다.
올해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2분기 매출 491억원, 영업이익 112억원을 올렸다. 증권가에서는 한미반도체가 3분기 매출 544억원, 영업이익 15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본다. 유진투자증권은 올해 한미반도체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각각 1898억원, 442억원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실적에는 못 미치지만 최근 수주가 늘어나는 만큼 실적 전망이 밝다.
덕분에 주가도 날개를 달았다.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1만원대 초반이었던 주가는 최근 5만2700원(11월 1일 종가 기준)까지 뛰었다. 임소정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연초 대비 주가가 4배가량 올랐다. 본딩 장비 제품군 확대를 통해 종합 후공정 장비사로 도약하면 2025년 매출이 5000억원대로 급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분위기가 좋아지면서 곽동신 부회장도 기대에 부풀었다. 곽 부회장은 한미반도체 창업주 곽노권 회장 장남으로 24세였던 1998년 한미반도체에 입사했다. 한미반도체 기획관리실 차장을 거쳐 2007년 33세 젊은 나이에 대표이사 사장이 됐다. 2014년에는 부회장으로 승진해 지금까지 회사를 이끌고 있다. 그는 지난 9월 1일 두 차례에 걸쳐 회사 주식 총 5만6000주(33억원 규모)를 매입했다. 9월 이후 추가로 사들이며 지분을 35.84%까지 늘렸다.
곽 부회장은 무리한 다각화는 피하고 한 분야에만 집중하는 전략을 펼쳐왔다. 잘하는 장비를 지속적인 연구개발(R&D)로 업그레이드해오는가 하면, 매년 매출의 상당 부분을 R&D 비용으로 썼다. 덕분에 반도체 패키지를 작게 절단한 뒤 세척·검사를 한 번에 하는 장비인 ‘마이크로 쏘&비전 플레이스먼트’는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최근에는 LAB 장비도 개발 중이다. LAB 장비는 극소 부위만 열을 가해 반도체 칩 다이와 기판을 붙이는 장비다.
여세를 몰아 해외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최근 타이완에서 개최된 반도체 전시회 ‘세미콘 타이완 2023’에 참가해 ‘TC 본더 2.0 CW’ 장비를 선보였다. 이 장비는 열 압착 방식으로 AI 그래픽처리장치(GPU)와 HBM 반도체를 실리콘 인터포저(집적회로의 배선 연결을 도와주는 부품)에 부착하는 패키징 장비로 대만 TSMC의 차세대 기술인 CoWoS 패키징에 적용할 수 있다. 덕분에 한미반도체가 머지않아 TSMC를 비롯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 물량을 대거 수주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민규 상상인증권 애널리스트는 “내년 HBM 시장에서 메모리 반도체 업체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충분한 생산 경험을 쌓아온 한미반도체가 신규 고객사를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 불황에도 한미반도체가 파격적인 자사주를 지급한 것은 그만큼 기술력에 자신 있다는 방증이다. 해외 시장 수주가 늘면 글로벌 반도체업계 ‘슈퍼 을’로 불리는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기업 ASML처럼 ‘한국의 ASML’로 도약할 가능성이 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 전언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3호 (2023.11.08~2023.11.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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