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정적이고 귀중한 한 번뿐인 삶을 어떻게 쓸 생각인가

김윤주 2023. 11. 7.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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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넷플릭스 영화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

[김윤주 기자]

1.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2. 꿈을 좇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
3. 수영은 고독한 스포츠인 것 같지만 팀이 필요하다
 
2013년 9월 2일 플로리다 해변에 이제 막 다다른 만 64세의 수영선수 다이애나 나이애드(Diana Nyad, 1949~)가 사력을 다해 내뱉은 말이다.
쿠바 아바나에서부터 플로리다 키웨스트까지 177km에 이르는 바다를 안전망 없이 수영으로 종단하는 대장정을 이제 막 끝마친 순간이었다. 총 다섯 번의 도전, 1978년 나이 스물여덟 첫 도전에 실패한 이래로 35년만의 성취였다.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 포스터 이미지
ⓒ 넷플릭스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Nyad, 2023)는 수영 선수 다이애나 나이애드의 평생에 걸친 도전의 과정과 그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엘리자베스 차이 바서렐리(Elizabeth Chai Vasarhelyi)와 지미 친(Jimmy Chin)이 감독한 넷플릭스 영화로, 2016년 출간된 자전적 에세이 < Find A Way >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아네트 베닝(Annette Bening)이 주인공 나이애드 역을, 조디 포스터(Jodie Foster)가 그녀의 코치 보니 역을 맡아 멋진 연기를 선보인다. 이십대 시절 극장에서 만나던 그 눈부신 미소의 아네트 베닝과 지성미가 돋보이던 조디 포스터의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그것을 날것 그대로 스크린에 담아낸 그들의 용기와 쌓아온 세월이 더없이 아름답다.

은퇴한 수영선수 다이애나 나이애드는 쿠바에서 플로리다까지 100마일이 넘는 구간을 수영으로 종단하는 믿기 어려운 도전을 결심한다. 그것도 심지어 28세 때 실패했던 도전을 60세 생일 무렵 다시 결심하게 된 것이다. 영화는 그렇게 시작된다.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 포스터 이미지
ⓒ 넷플릭스
 
나이애드는 미국의 장거리 수영선수다. 뉴욕에서 태어나 플로리다에서 성장하였다. 수영을 시작한 이래로 중고교 시절부터 온갖 지역대회에서 수상했으며 올림픽 출전의 꿈을 키우던 중 심장내막염으로 포기하고 장거리 수영선수로 전환한다.

1975년 45km에 이르는 맨해튼 둘레를 수영으로 일주하는 데에 성공하고, 1978년에는 쿠바-플로리다 구간 수영 종단에 도전한다. 하지만, 42시간만 실패로 돌아가고, 이후 쿠바 국경이 폐쇄되면서 도전도 멈추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이십대 시절 이루지 못한 꿈을, 잊은 줄로만 알았던 꿈을, 삼십 년이 넘도록 마음 한구석에 나도 모르게 자리하고 있던 그 꿈을, 나이 60이 넘어서 새로이 다시 꺼내어 조금씩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육체는 슬플 만큼 노쇠해졌지만 정신만큼은 젊은 시절에는 없었던 그 무엇으로 가득했다. 하루하루 훈련을 시작하고 필요한 지원들을 하나씩 모으고 모아 다시 네 번의 새로운 도전과 실패 끝에 기어이 꿈을 이루어낸다. 그의 곁을 내내 함께한 친구들, 40명 조력자들의 우정과 열정, 같은 꿈을 향한 투지가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한다.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 포스터 이미지
ⓒ 넷플릭스
  
길고 긴 낮과 밤을 홀로 끝도 없이 깊고 넓은 바다에서 하염없이 팔과 다리를 휘저으며 육체의 고통을 이겨낸다는 것, 그 고독하고 공포스런 시간을 온전히 홀로 견뎌낸다는 것, 기어이 그 먼 바다를 가로질러 목표 지점에 도달하고 꿈을 성취해낸다는 것, 보통 사람인 우리로선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칠흑 같은 암흑의 바다, 죽음을 부르는 상어와 해파리, 종단 한 번에 9kg이나 감량될 만큼 체력 소모를 요하는 육체의 고통, 물리적인 장애물들을 이겨냈다는 점에서 오는 놀라움 뿐 아니라 정신적인 측면에서의 도전과 성취는 그야말로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반복되는 실패와 절망과 초라한 자조감을 다시 또 딛고 일어서서 상상도 하기 어려운 도전을 하고 또 한다는 것, 과거의 자신과 싸우며 현재의 자신을 끌고 나간다는 것, 그런 그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함께하는 우정과 사랑과 헌신으로 가득한 멋진 팀이 있다는 것,

한없이 비루해 보이기만 하는 우리의 삶이 이토록 다정하고 경이로울 수도 있다는 것에 마음속에 어떤 파도 같은 것이 울컥 차오른다. 결국 그것은 삶을 대하는 자세, 그러니까, 사람을 대하고 시간을 대하고 과거와 현재의 나를 대하는 자세에서 나온다는 것, 그 지속성과 끈기에서 나온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낀다.

어린 시절 코치에게서 당했던 성폭력,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가정사 등의 서사를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보여준다. 스크린을 가득 채운 푸르른 바다와 하염없이 팔을 젓고 발을 차는 나이애드의 강하고도 가녀린 몸짓 위로 닐 영의 < Heart of Gold >(1972), 드리프터스의 < Save the last dance for me >(1960), 사이먼 앤 가펑클의 < Sound of Silence >(1964) 등 반가운 옛 팝송들이 흐른다.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 포스터 이미지
ⓒ 넷플릭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여정의 계기가 우연히 만난 시 한 구절이었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메리 올리버(1935-2019)의 시 <여름 날(The Summer Day)>의 한 구절이다. 영화에서 아네트 베닝이 들고 있는 시집은 < House of Light >인 것으로 보인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우연히 발견한 시집, 그나마도 옆집 아저씨 이름이 적혀 있는, 엄마의 소유물도 아니었던 그 시집에서 나이애드는 문득, 시들어가고 저물어가는 것만 같은 자신의 삶을 다시 일으키고 채워 넣을 실낱 같은 햇살 한조각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내가 달리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결국엔 모든 것이 죽지 않는가, 그것도 너무나 이르게?
격정적이고 귀중한 한 번뿐인 삶을 어떻게 쓸 생각인가.
 
Tell me, what else should I have done?
Doesn't everything die at last, and too soon?
Tell me, what is it you plan to do
With your one wild and precious life?
 
단 한 번뿐인 우리 인생을, '격정적이고 귀중한 한 번뿐인' 우리의 삶을, 이렇게 고귀한 꿈을 키우고, 그것을 전염시키고, 함께 나누고 이루며 그 길고 긴 여정에서 충만감과 감동의 순간을 공유해가는 일에 쓸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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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저의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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