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갈래" 전세사기 후폭풍…빌라, 사지도 살지도 않는다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의 한 다세대주택에 전세로 거주 중인 30대 송모씨는 6개월 남은 전세 계약 기간이 끝나면 아파트로 이사할 계획이다. 송씨는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해 뒀지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하다”며 “당장 비싼 아파트를 매수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 아파트 전셋집을 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빌라(연립·다세대주택)를 중심으로 역전세난(전셋값이 떨어져 집주인이 새 세입자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현상)과 전세 사기가 기승을 부리면서 빌라 기피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7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서울 다세대·연립 전세거래량은 5만3244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만6140건)보다 19.5% 감소했다. 9월(5174건)만 놓고 봐도 지난해 같은 기간(6381건)보다 18.9% 줄었다. 빌라를 기피한 전세 수요는 아파트로 넘어가고 있다. 특히 전용 면적 60㎡ 이하 규모의 소형 면적 전세 시장에서 강세를 보였던 빌라의 거래 비중이 최근 아파트보다 적어졌다.
부동산 정보 플랫폼 ‘다방’을 운영하는 스테이션3이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통계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올해 10월까지 서울 지역의 전용면적 60㎡ 이하 주택 전세 거래는 49만8778건(아파트 23만6193건, 빌라 26만2585건)이었다.
시기별로 보면 2020년 1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빌라의 전세 거래량은 월평균 6131건으로 전체의 절반 이상(54%)을 차지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아파트의 전세 거래 비중이 51.9%로 올라서면서 빌라를 앞질렀다. 이후에도 아파트의 전세 거래 비중은 올해 2월 57.3%로 정점을 찍고 지난달에는 52.3%를 기록했다. 장준혁 다방 마케팅실장은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역전세난과 빌라 기피 현상 등의 영향으로 빌라보다 아파트를 선택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부는 지난 5월부터 전세 사기를 막기 위해 반환보증보험 가입 요건을 강화했는데, 이 역시 빌라 기피 현상을 가속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정부는 전세금반환 보증보험 가입 요건을 기존 공시가격의 150%에서 지난 5월 1일부터 공시가격의 140%, 주택 가격의 90%로 변경했다. 이에 따라 공시지가의 126%까지만 전세 보증이 가능해졌다. 여기에 지난해 대비 올해 전국 평균 공시가격이 약 18.6% 하락하면서 전세보증 가입 요건이 더 까다로워졌다.
빌라 기피는 매매시장에서도 나타난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이 제공하는 서울 아파트와 빌라의 월별 거래량을 합산해 그 비중을 계산한 결과 빌라의 거래 비중은 지난해 10월 75.2%까지 치솟았지만, 전세 사기가 수면 위로 떠오른 올해 초부터 꾸준히 감소해 30%대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10월 아파트 거래는 559건(24.8%)에 불과했지만 빌라는 1692건(75.2%)이 거래됐다. 하지만 올해 9월에는 아파트는 3360건(63.4%), 빌라는 1942건(36.6%)이 각각 계약됐다.
경매 시장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부동산 경매정보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달 법원에서 경매를 진행한 서울 빌라는 1268건으로 전달(908건)보다 39.6%(360건) 급증했다. 2006년 5월(1475건) 이후 17년 5개월 만에 가장 많다. 하지만 낙찰률(경매 진행 건수 대비 낙찰 건수 비율)은 10.6%로 9월(14%)보다 3.6%P 줄었다.
빌라에 대한 수요가 급감하면서 향후 공급량도 대폭 감소할 전망이다. 국토교통 통계누리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서울 다세대주택 건설 인허가 물량은 1만3492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6만2530가구) 대비 73.4% 급감했다. 착공 물량 역시 9월 누적 기준 3167가구로, 1년 전 같은 기간 1만2376가구 대비 74.4% 감소했다.
정부는 비아파트에 대한 건설자금·보증 지원을 확대하고, 청약에서 무주택자로 간주하는 소형주택 범위를 확대하는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이는 시공 기간이 짧은 빌라나 오피스텔을 빠르게 짓도록 유도해 전체 주택 공급량을 늘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부동산 업계에선 비아파트 시장의 수요를 살릴 수 있는 대책이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 중소건설사 관계자는 “기존 주택 거래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신규 공급 활성화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서울 주거지의 30%가량인 빌라가 그동안 서민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해왔다”면서 “정부는 빌라 밀집 지역에 대한 소규모 재건축, 재개발 정비사업을 활성화하는 등 수요 확대를 위한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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