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극장 먼저…아카데미상 시동

권근영 2023. 11. 7.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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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6일 개봉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을 그대로 재현한 영화 '나폴레옹'의 한 장면. 사진 소니픽쳐스

" 나는 프랑스의 시궁창에 버려진 왕관을 발견해 칼끝으로 그걸 주워 정화해 국민의 투표에 따라 내 머리에 쓴다.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호아킨 피닉스)는 교황의 손길을 기다리지 않고 직접 왕관을 집어 들어 머리에 얹은 뒤 아내 조제핀(버네사 커비)에게도 왕관을 씌워준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 있는 길이 9m 넘는 그림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1807)을 영화 '나폴레옹'에 그대로 구현했다. 다음 달 6일 개봉한다.

같은 날 지휘자이자 작곡가 레너드 번스타인과 아내 펠리시아 몬테알레그레 콘 번스타인의 이야기를 담은 ‘마에스트로 번스타인’도 극장에 걸린다. 첫 연출작 ‘스타 이즈 본’(2018)으로 아카데미 작품상ㆍ각본상ㆍ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브래들리 쿠퍼 연출ㆍ주연이다.

브래들리 쿠퍼 연출ㆍ주연 영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사진 넷플릭스

두 영화의 공통점은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제작했다는 점, 또 극장에서 먼저 볼 수 있다는 거다. 극장 상영 후 각각 애플TV+와 넷플릭스로 스트리밍된다. 지금 극장에서 상영 중인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플라워 킬링 문’(원제 ‘Killers of the Flower Moon’)과 데이비드 핀처 감독 ‘더 킬러(The Killer)’도 마찬가지다. 10일부터 안방에서 볼 수 있는 '더 킬러'에는 6일까지 관객 1만 3373명이, 아직 스트리밍 일정이 정해지지 않은 '플라워 킬링 문'에는 15만 3648명이 들었다.

로버트 드 니로(왼쪽)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30년 만에 한 작품에서 만난 영화 '플라워 킬링 문'.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관객들이야 OTT로만 보기 아까운 대작들을 극장에서 만날 수 있겠지만, 굳이 왜 이 기간에 몰릴까. 답은 미국 아카데미상에 있다. 아카데미상 후보가 되려면 미국 LA 지역의 극장에서 일주일 이상 상영해야 한다. 이에 따른 전 세계 개봉 일정에 맞춰 국내 극장에도 함께 공개된다. 넷플릭스 제작 영화 ‘로마’(감독 알폰소 쿠아론)가 2019년 감독상ㆍ촬영상ㆍ외국어영화상을 휩쓴 뒤 아카데미는 이 같은 출품 규정을 확정 지었다. 코로나 19로 극장이 문을 닫으면서 대작들이 개봉을 늦추자 2022년에는 작품상 10개 후보 중 절반이 OTT 제작 영화였다. 청각장애인 가정의 소녀가 꿈을 다룬 영화 ‘코다’가 스트리밍 영화로는 처음으로 작품상을 차지했다.

주연 릴리 글래드스턴(가운데)을 비롯한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 배우들이 그들의 역사를 연기한 영화 '플라워 킬링 문'.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아메리카 원주민 오세이지족의 아픈 역사를 담은 영화 ‘플라워 킬링 문’은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오펜하이머’와 함께 벌써부터 유력한 수상 후보로 꼽힌다. 1920년대 오세이지족 연쇄 살인 사건을 수사한 FBI의 이야기를 다룬 논픽션 원작은 오세이지족과 결혼한 백인 남자 어니스트 버크하트(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위주의 영화로 각색됐다. 오세이지족 보호구역에서, 주연 릴리 글래드스턴을 비롯한 원주민 출신 배우들을 대거 기용해 촬영한 제작 과정도 화제였다. '플라워 킬링 문'이 작품상을 받으면 애플로서는 '코다' 이후 두 번째 수상 기록을 갖게 된다.

"극장에 걸리지 않아도 영화인가." 넷플릭스 제작 '옥자'(2017)가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된 뒤 영화계에서는 이 같은 질문이 뒤따랐다. 칸은 결국 OTT 제작 영화의 경쟁부문 출품을 불허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칸영화제 티에리 프리모 집행위원장은 할리우드 영화 매체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칸도 넷플릭스 영화를 환영한다. 극장에 나오지 않으니 비경쟁부문으로 참가하면 된다. 그러나 그들은 경쟁을 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플라워 킬링 문'은 올해 칸영화제 비경쟁부문에서 전 세계첫 공개 했다. 지난 5월 팀 쿡 애플 CEO가 레드카펫에 함께 오르기도 했다.

마이클 패스밴더가 고독한 킬러를 연기한 영화 '더 킬러'.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는 '더 킬러'와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을 9월 베니스 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처음 공개했다. 이처럼 OTT 업계는 힘준 작품을 여름 베니스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한 뒤 북미 시장에 내놓아 아카데미상 수상을 겨냥한 캠페인까지 이어가는 시계를 갖게 됐다. 다양한 작품이 출품되면서 베니스 영화제의 화제성이 높아진 효과도 있다.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로 수상작을 정하는 아카데미상은 오는 18일 후보 제출을 마감하며 본격 레이스에 돌입한다. 최종 후보는 내년 1월 23일 발표되고, 시상식은 3월 10일이다. 각국에서 출품하는 아카데미 국제 장편 영화상의 경우 국내에서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선정해 다음 달 미국 개봉을 앞두고 있다.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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