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벌이 쏠쏠한데 '반동 날라리' 된다…北, 해외노동자 딜레마
북한 당국이 코로나19로 인한 국경폐쇄로 중국과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 지역 등에 남겨졌던 해외 파견 노동자들을 본국으로 송환하기 시작했다. 외교가에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주춤했던 신규 노동자 파견도 곧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북한과 공개적으로 무기거래에 나서면서 제재를 무시하기로 결심한 틈새를 노려 북한 당국이 대놓고 대규모 신규 노동자를 러시아 극동지역으로 파견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게 전문가들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서는 외화벌이 숨통이 트이는 셈이지만, 동시에 위험 부담도 있다. 북한 해외노동자들은 김정은이 두려워하는 한국 등 외부 문화를 북한 내에 확산시켜 체제 유지를 위협할 수 있는 요인도 되기 때문이다.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북한 고려항공은 지난달 24일부터 화·목·토요일 등 주 3회 평양과 베이징을 오가는 정기노선 운항을 재개했다. 이에 앞서 평양과 블라디보스토크를 오가는 노선도 지난달 16일부터 코로나19 발생 이전과 같이 매주 월·금요일에 정기운항이 다시 이뤄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고려항공 정기운항의 1차적 목표는 코로나19로 외국에 발이 묶여 있던 노동자들의 본국 송환으로 보인다. 강동완 동아대 교수는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내년 3월 29일까지 매주 2회 블라디보스토크와 평양 사이를 오가는 북한 고려항공 JS271편의 '정기 운항'이 공지됐다"며 "넉 달 동안 주기적으로 노동자들을 본국으로 송환하려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기존 노동자 송환 뒤 새로운 노동자를 파견하는 것이 뒤이은 수순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러시아의 묵인 하에 당분간은 제재를 회피하기 위한 편법 비자 발급 등에 애쓰지 않아도 대규모 파견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 실제 김정은의 지난 9월 방러기간 중 북·러 양국은 연해주를 비롯한 극동지역에서 농업특구를 공동으로 운영하는 방안과 극동지역 인프라 개발 등을 논의했는데, 관련 사업이 실제 진행된다면 대규모 노동자 파견은 시간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하지만 해외노동자 파견이 김정은에게 득만 되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 등 현지에서 장기간 생활하면 자연스럽게 외부 문물을 접하게 되고, 이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면 일반 주민에게 '자본주의 날라리풍'을 전파하는 창구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일반적으로 해외 파견 노동자들은 귀국하면 북한 당국의 강도 높은 사상 교육을 받는 것은 물론 일거수일투족을 삼엄한 감시 속에서 지내야 한다고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제재가 본격화하기 전 러시아에서 일하는 북한 해외 노동자들의 근무 기간은 통상 5년 내외였는데, 코로나19에 따른 국경봉쇄가 3년 넘게 이어지면서 노동자들이 현지에 머무는 기간은 더 길어졌다. 이에 따라 북한 사회의 모순을 깨닫게 된 노동자들이 탈북을 시도하는 사례도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북한 당국이 해외 파견 노동자에 대한 사상교육을 강화하는 동시에 이들의 송환을 서두른 이유이기도 하다.
주민들의 사상 이완을 막기 위해 '반동문화사상배격법'까지 만들어 한국 등 외부 문화의 접촉을 강력하게 단속하는 김정은으로서는 해외 노동자들이 대북 정보 유입 통로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확실한 외화벌이 수단이기 때문에 노동자의 해외 파견을 멈추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인 셈이다. 해외 노동자 파견을 통한 외화벌이가 당장은 김정은 정권의 든든한 '돈줄'로 자리매김할 수 있어도 장기적으론 체제 내구성을 위협할 수 있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은 통제와 억압으로 사상 이완을 차단하려 할 것"이라며 "하지만 해외 파견 노동자들의 외부 문물 접촉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없기 때문에 파급효과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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