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친일파 소환할 때 우리는 독립운동가를 소환한다
[김수정 기자]
지난 10월 25일은 봉오동 전투를 대승으로 이끌었던 홍범도 장군의 80주기였다. 이 날에 맞춰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서대문구 독립공원에 홍범도 장군의 추모 부스를 마련했으나 서대문구청은 '민감한 정치사안'이라며 '불허'했다.
최근 윤석열 정부는 육군사관학교 안에 있는 독립운동가 흉상을 철거하고 친일파 백선엽의 동상을 세우겠다고 발표했다가 시민들의 반대 여론에 부딪혔다. 현재 육사에 마련되어 있던 독립전쟁영웅실은 철거되었다.
이렇게 정부가 시작한 '역사전쟁'에 대응해 청년 학생들이 11월 4일 서대문구 독립문 앞 일대에서 독립운동가를 소환하는 문화제를 개최했다.
▲ 독립문화제 장면 |
ⓒ 서울겨레하나 |
그래서 독립문화제의 사전마당으로 진행된 참여부스는 '자꾸만 친일파를 소환하는 윤석열 정부'와는 반대로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독립운동가 이름들로 가득 채워졌고, 독립운동가의 구체적인 삶을 살펴볼 수 있는 내용들이 눈에 띄었다. ▲독립운동가 초상화 그리기 ▲독립운동가 인물 퀴즈(힌트 보고 맞추기, 스피드퀴즈) ▲ 독립운동가 말씀 따라쓰기(책갈피&종이액자 만들기) ▲역사 MBTI(나의 독립운동가 유형은?)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부스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 독립문화제 부스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들 |
ⓒ 서울겨레하나 |
'대형 친일파 사전을 완성'하는 부스도 주민들의 이목을 끌었다. 대형 판넬에는 일제 강점기에 나라를 팔아넘긴 8명의 친일파 이름과 설명이 적혀있었고, 빈 칸으로 되어있는 부분에 들어갈 단어를 맞추는 형식이었다. 주민들은 이 부스 앞에서 토론을 하기도 했는데, 찬반 토론이 아닌 친일 망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들이었다. 이들이 과거의 친일파였다면, 현재의 친일파도 존재할까? 대학생들이 행사를 돌아다니며 받은 '한국 정치인의 친일 망언 투표'는 그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 친일망언투표에 참여하고 있는 서대문 주민들 |
ⓒ 서울겨레하나 |
152명의 주민들이 투표해 문화제에서 발표된 순위는 이렇다.
1위 신원식 국방부 장관(61표)
"이완용이 매국노지만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었다."
2위 김영환 충북도지사(33표)
"나는 오늘 기꺼이 친일파가 되겠다. 임진왜란을 겪고도 대비하지 않은 조선의 무능력과 무기력에 있다."
3위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전 국회부의장)(24표)
"철 지난 친일 타령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뒤를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2차장(14표), 석동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대통령 직속부처)(14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6표)이 이었다.
순위를 발표할 때마다 참가자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당신은 한국인인가, 일본인인가!". 자, 이제 우리 청년 학생들의 물음에 모호한 정체성을 가진 정치인들이 해명을 할 차례다.
▲ 독립문화제에서 발언하는 20대 서포터즈 |
ⓒ 서울겨레하나 |
대한민국의 건국에 참여하지 않거나 반대되는 이념에 동참하였다고 해서 식민통치에 저항한 그들의 행동을 지워서는 안 됩니다. 독립운동의 역사를 지키는 것이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며, 이는 우리나라를 지키는 유일한 길입니다.
- 독립문화제 준비를 함께 해온 서포터즈 20대 청년의 발언
독립운동가에게 '이념'을 들이미는 것은 참 무례한 행위이고, 독립운동을 계승한 우리의 헌법을 부정하는 행위다. 문화제 사회를 맡은 전지예 청년겨레하나 대표는 "서대문 형무소가 자리한 서대문구에서부터 찬란했던 독립운동 역사를 알리려고 한다.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한다고 발표했을 때, 우리가 제일 먼저 한 일이 이 독립문 앞을 찾아오는 것이었다. 서대문 형무소에 있는 독립운동가를 반드시 지켜야겠다는 마음이었다. 감히 정부가 독립운동 역사를 지울 수 없도록 우리가 나섰다"라며 올해 독립문화제 취지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독립운동가들의 말씀 하나, 행동 하나에 그들의 가치와 삶이 담겨있다. 문화제에서 대학생들이 소환한 독립운동가들은 어둠 속에서 빛을 만들어낸 이들이었고, 그 어떤 이념에 얽매인 것이 아니라 오로지 '민족의 염원 독립,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겠다는 희망' 그뿐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을 영광스럽게 마감한 독립운동가들, 우리는 그들이 남긴 문장과 발자취에 집중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이 한 번의 젊은 나이를 어찌할 것인가" 고민하던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우당 이회영 선생이 지금 독립문 앞에 서있는 청년 학생들의 모습을 본다면 비로소 고민이 해결되는 기쁨을 느꼈을 것이다.
국토를 회복하여 자손 만대에 행복을 주는 것이 우리 독립군의 목적이요, 민족을 위한 본의다. - 여천 홍범도
우리는 찬란했던 독립운동 역사를 왜곡하지 않고, 훼손하지도 말고 온전하게 물려주어야만 한다.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고, 식민지배의 가장 큰 후과인 '우리나라의 분단'을 극복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은 분단된 땅에서 살아가지만, 독립운동가들이 그토록 지켜내고자 했던 것은 '온전한 한반도'였다.
▲ 주민에게 전시내용을 설명하는 대학생 |
ⓒ 서울겨레하나 |
이날 청년 학생들이 우리의 길고도 찬란했던 독립운동역사에 대한 기획전시를 진행하며 '역사를 지키자'고 호소한 것처럼 우리의 역사는 언제나 그랬듯 정치인들이 나라를 팔아먹어도 민중들은 나라를 지킨 역사였다. 이날 참가한 주민들이 남긴 메시지로 우리는 우리의 힘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 독립문화제에 참가한 주민들이 남긴 메세지 |
ⓒ 서울겨레하나 |
"대한 독립 만세!"
"독립운동은 우리가 감히 지울 수 없는 소중한 역사입니다!"
"역사를 기억해야 미래를 지킬 수 있습니다"
▲ 독립운동가 필사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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