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집회 아냐" 판사와 충돌한 트럼프…'자산 부풀리기' 일부 시인

정현진 2023. 11. 7.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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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자산가치 조작 의혹 민사 재판에 출석
퇴정 경고에도 '마녀사냥' 주장
대선 1년 앞두고 '사법 리스크' 부각

"이건 정치 집회가 아닙니다.", "당신의 의뢰인(트럼프)을 통제하세요."

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자산가치 조작 의혹을 다루는 민사 재판 법정에서 아서 엔고론 판사가 큰소리를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판과는 관계없는 정치적인 내용을 증언으로 내놓으면서 엔고론 판사는 "우리가 당신이 하는 말을 듣기 위해 여기 있는 게 아니다"라면서 퇴정 조치를 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 휴정 시간에 법정을 나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미국 대통령 선거를 1년도 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법정에서 판검사와 정면충돌했다.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격적인 언사를 이어가면서 사실상 정치 유세를 벌이고 있는 모양새다. 그는 재판에서 자산가치 조작 의혹에 대해 일부 시인하면서도 재무제표에 면책 조항이 있다며 방어에 나섰다.

자산가치 조작 의혹에…"면책 조항이 있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뉴욕 맨해튼 지방법원에서 열린 자산가치 조작 의혹 관련 민사 재판에 출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트럼프 그룹이 대출받는 과정에서 은행과 보험사 등을 상대로 보유 자산의 가치를 부풀려 사기 행각을 벌였다는 재판이다.

이 자리에서 그는 회사의 재무제표를 작성하는 데 직접 관여했는지에 대한 검찰 측 추궁에 "내가 한 일은 회계사들이 재무제표를 작성하는 데 필요한 것을 주도록 사람들에게 말하고 승인한 것뿐"이라고 답했다.

이어 그는 회계사들이 작성한 재무제표 기록에 대해 "내가 보고, 어떤 경우에는 몇 가지 제안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맨해튼 북쪽에 있는 대규모 부동산 '세븐 스프링스'에 대해 기존에 평가된 가치가 "너무 높다고 생각했다"며 재무제표상 가치를 낮춘 사실을 인정했다.

기존에는 재무제표 작성에 본인이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했으나 이러한 입장을 일부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이 저평가돼 있다고 생각한 마러라고 리조트를 포함, 그러한 가치 평가 작업에는 개입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마러라고 리조트의 가치와 관련해 엔고론 판사가 플로리다주 세금 감정 기록을 들어 1800만달러(약 234억원)로 평가한 것을 언급하자 트럼프 전 대통령은 "훨씬 더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마러라고 리조트의 가치를 얼마로 보느냐는 검찰 측 질문에 "10억달러에서 15억달러 사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날 재판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무제표에 기록된 면책 조항을 들어 방어에 나섰다. 그는 2011∼2017년 재무제표에 부풀려진 자산이 있는 것을 알고 있느냐는 검찰 측 질문에 면책 조항을 거론하며 "내가 이 진술에 너무 몰두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그(면책) 조항이 (재무제표의) 첫 페이지에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어 어떤 법원에서든 면책 조항을 인정할 것이라며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소송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면책 조항에 대해 회계사들이 엄격한 감사 업무를 수행하는 데 준수해야 할 특정 의무를 면제해 줄 수는 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 등에게 허위 및 오해의 소지가 있는 자산평가서를 제출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법정을 정치판으로 만든 트럼프 '마녀사냥' 주장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날 재판에서는 내용보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판사, 검사와의 충돌이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조 바이든 대통령보다 경합 주 등에서 앞선다는 여론조사가 나온 상황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을 '마녀사냥' 한다고 공격, 사실상 정치 유세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판 초반 레티샤 제임스 뉴욕주 법무장관 겸 검찰총장을 향해 "이것은 정치적 마녀사냥"이라며 "그는 스스로에 대해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이 재판을 맡은 엔고론 판사에 대해서도 "그는 나를 사기꾼이라고 불렀고,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며 "사기는 내가 아니라 법원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판사는 항상 내게 불리한 판결을 했던 만큼 또 나에 대해 부정적으로 판결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엔고론 판사는 정식 재판 시작 전인 지난 9월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이 은행 대출 등을 위해 보유자산 가치를 부풀리는 사기 행각을 벌였다고 일부 혐의를 인정한 바 있다.

엔고론 판사는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장광설이 이어지자 발언을 짧게 해달라고 여러 차례 주의를 줬고, 독백에 가까운 진술 일부는 기록에서 지우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변호사에게 "당신의 의뢰인을 통제해달라"며 "그럴 수 없다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부정적인 추론을 끌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속해서 증언을 길게 이어가고 정치적인 발언도 내놓자 엔고론 판사도 결국 이를 막지 못하고 대부분 무시하면서 재판을 이어갔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재판에서 "당신들이 나를 온종일 이 법정에 세우려고 하기 때문에 이것은 선거 개입"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형사재판과는 별개…8일 이방카 증언 예정

이번 재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받는 형사재판 4건과는 무관한 별개의 민사 사건이다. 지난해 9월 제임스 뉴욕주 법무장관은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이 은행 대출 등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10년 이상 뉴욕의 저택과 최고급 아파트, 빌딩, 영국과 뉴욕의 골프장 등 다수의 자산 가치를 약 22억달러 부풀려 보고했다며 뉴욕주 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제임스 장관은 이날 재판을 마친 뒤 기자들에게 "그는 횡설수설했고 모욕을 퍼부었지만, 우리가 예상했던 것"이라며 "서류 증거들은 그가 자산을 거짓으로 부풀렸다는 것을 보여준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8일 이어지는 재판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장녀인 이방카 트럼프가 출석해 증언할 예정이다.

내년 대선에 출마할 것이 유력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가장 위협하는 요인은 '사법 리스크'라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향후 대선 행보에서 이날 있었던 민사재판 외에 형사재판을 계속해서 진행해 나가야 한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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