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나우' 올인한 클린스만호, '플랜 B' 준비는 돼 있나

이준목 2023. 11. 7.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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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명단 발표... 믿는 구석은 '유럽파 황금세대'

[이준목 기자]

▲ 경기 시작 기다리는 클린스만 감독 10월 17일 경기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대표팀 한국과 베트남의 친선경기. 클린스만 감독이 경기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지금으로서 변화나 경쟁은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일까.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이번에도 기존 선수단의 연속성을 선택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11월 6일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2연전에 나설 국가대표팀 23명 명단을 발표했다. 대표팀은 13일에 소집되어 16일 월드컵예선 첫 경기인 싱가포르(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와 홈경기, 19일에는 중국(한국시간 오후 9시, 중국 선전)과 원정경기를 치른다.

이번에 공개된 대표팀 명단은 지난 10월 A매치 명단과 비교하여 달라진 점이 거의 없었다. 주장 손흥민(토트넘)을 비롯해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이재성(마인츠), 황희찬(울버햄튼), 조규성(미트윌란) 황인범(즈베즈다) 등 주축 유럽파 멤버들이 모두 이름을 올렸다. 국내파도 김영권, 정승현, 김태환, 설영우(이상 울산), 김진수(전북현대), 이기제(수원 삼성) 등 익숙한 멤버들이 그대로 승선했다.

그나마 변동이 있었던 부분은 수비수 김주성(서울)과 골키퍼 김준홍(김천)이 제외되고, 골키퍼 송범근(쇼난 벨마레)이 5개월 만에 A대표팀에 복귀한 정도다.

이번 대표팀 명단이 이전보다 좀더 진지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클린스만호 출범 이후 처음으로 친선전이 아닌 공식 대회에 나서는 데뷔 무대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내년 1월에 있을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을 대비하여 미리보는 최종명단이기도 하다. 10월과 11월 명단에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은 자연히 이 멤버가 아시안컵까지도 그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윈나우' 택한 클린스만호... 주전급 선수들 과부하 우려

클린스만 감독은 올해 2월 한국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이후 총 8번의 A매치를 치르는 동안 선수명단에 큰 변화는 주지 않았다. 전임 파울루 벤투 감독이 구축했던 카타르월드컵 16강 주역들이 여전히 주축을 이루는 가운데 이기제, 이순민, 문선민 등 몇몇 선수들이 가세한 정도였다.

현재 클린스만호의 방향성은 명백한 '윈나우'로 요약된다. 대표팀은 클린스만호 출범 이후 첫 5경기 연속 무승에 그치며 부진했으나, 지난 9월 유럽원정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첫 승을 시작으로 10월에는 튀니지-베트남을 연파하며 3연승의 상승세로 돌아섰다. A매치 4경기 연속 무실점에, 최근 2경기에서는 10골을 몰아쳤다.

대표팀은 최근 A매치에서 경기력이 좋았던 데다 현재 주축 선수들 다수가 큰 부상없이 쾌조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 EPL 무대에서 나란히 득점왕 경쟁을 펼치고 있는 손흥민과 황희찬, 독일과 프랑스리그의 최강팀에서 주전으로 활약중인 김민재와 이강인 등은 모두 클린스만호의 뼈대를 이루는 핵심 선수들이다.

11월 A매치에서 상대할 중국과 싱가포르는 전력상 몇 수 아래로 꼽히는 약체팀들이기는 하지만, 이번 무대는 어디까지나 친선전이 아닌 월드컵 예선이었다. 더구나 우승을 노리는 1월 아시안컵까지는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여기서 굳이 무리하게 실험이나 변화를 주기보다는, 컨디션이 좋은 최정예멤버를 유지하면서 연속성과 조직력을 이어가는 게 더 나은 타이밍이라고 판단했을 법하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더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한 부분은 아쉽게 느껴진다. 베스트 11은 그렇다치더라도 폼이 떨어졌거나 소속팀에서 아직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몇몇 선수들이 별다른 경쟁없이 대표팀에 붙박이로 계속 선발되고 있다는 것은, 선수단의 동기부여나 대안 측면에서는 결코 바람직하지만은 않다.

주전급 선수들의 지나친 과부하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주장 손흥민은 탈장수술과 사타구니 부상의 후유증으로 현재 소속팀에서도 풀타임을 자제할 만큼 출전시간을 관리받고 있으며, 이강인은 최근 아시안게임 출전에 이어 A대표팀 소집까지 소화했다. 특히 센터백 김민재는 소속팀에서 유럽클럽대항전과 컵대회까지 공식전 10경기 연속 풀타임을 소화하며 현지에서도 '혹사 논란'이 제기될 만큼 빡빡한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월드컵 예선이나 아시안컵같은 중요한 경기들을 앞두고 핵심 주전들을 아예 제외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이들의 부담을 덜어주거나 만일의 상황을 대비한 '플랜 B'도 어느 정도는 준비되어 있어야만 했다.

클린스만호의 최근 A매치 3연승은 모두 피파랭킹 70위권 밖의 약체팀들을 상대로 거둔 승리였다. 한국은 전력상 한 수 아래인 팀들을 상대로 그나마 감독이 갓 교체되거나 정상적인 전력을 꾸리지 못하고 혹은 상대 선수가 퇴장 당하여 수적열세에 놓이는 등, 유리한 조건까지 겹친 상황이었다.

한국은 약팀들을 상대로 최정예멤버들을 동원하여 쉬운 승리를 잇달아 챙기기는 했지만, 클린스만호의 전술이나 위기관리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함이 있었다.
 
▲ 훈련 지켜보는 클린스만 감독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10월 16일 오후 경기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베트남과 친선 경기를 앞두고 훈련하는 선수들을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더구나 클린스만 감독을 향한 각종 논란과 곱지 않은 여론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A매치 연승으로 잠시 가라앉았지만 클린스만 감독의 재택근무와 잦은 외유, K리그 점검과 선수발굴 소홀 등 근무태도와 역량을 둘러싼 의구심은 여전하다. 클린스만 감독으로서는 자신을 둘러싼 비난을 불식시키기 위하여 정예멤버를 총동원하여 매경기 과정보다 결과에 집착하는 분위기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클린스만 감독에 대한 우려와는 별개로, 한국 축구는 현재 '유럽파 황금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한국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선수들이 유럽 무대를 누비고 있으며 특히 빅리그에서 활약도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주전 멤버들만 놓고보면 유럽파 숫자가 훨씬 더 많은 일본에도 뒤지지않는 '아시아 최강'을 노릴 만하다. 클린스만 감독은 부임과 동시에 한국축구 역사상 최초의 월드클래스급 선수층을 물려받는 행운을 누렸다.

한편으로 이는 그만큼 '확실한 성과'에 대한 기대가 커졌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재 대표팀의 전력은 종전 역대 최고로 꼽히는 2002년의 히딩크호, 2010년의 허정무호도 벌써 뛰어넘었다는 평가다. 현 대표팀은 이미 전임 감독 체제에서 카타르월드컵 때부터 연속성을 이어왔기에 조직력과 경험 면에서도 큰 문제가 없다.

바꿔말하면 이처럼 역대급으로 '축복받은 조건'을 가지고도 아시아 무대에서조차 확실한 성적을 내지못한다면, 그것은 오롯이 '감독의 책임'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 3월 부임 당시 '북중미월드컵 4강'과 '아시안컵 우승'이라는 야심찬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불성실 논란으로 도마에 올랐을 때도 아시안컵 성적이 나온 뒤에 중간 평가를 해달라고 요구하며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처럼 스스로 오직 '결과와 성적'으로 평가받겠다고 약속한 것은 바로 클린스만 감독 본인이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친선전이 아닌 진짜 실전이 기다리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으로서는 이제 윈나우로 자신의 축구를 증명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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