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여름 보낸 석유화학업계, 따뜻한 겨울 맞는다
롯데케미칼도 적자 탈출 전망
한화솔루션 전분기比 13.6%↑
中공급과잉 축소·유가 안정세
수요 불확실성 등 불안요인도
“우리나라는 세계 4위 화학 강국(에틸렌 기준)으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저력이 있다. 시황이 여전히 안 좋은 상태지만 조금씩 살아나고 있고 혁신과 도전도 현재진행형이다. 저는 긍정적으로 본다. 더 열심히 하겠다.”(신학철 LG화학 부회장)
“석유화학은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사이클(순환 주기) 산업으로 업다운이 있다. 제가 보기엔 저점을 통과한 것 같다. 새벽이 가까이 왔다.” (김교현 롯데그룹 화학군 총괄대표 겸 롯데케미칼 부회장)
“어려운 상황이지만 위기를 함께 헤쳐나가면 극복할 수 있다. 새로운 시도를 이어나가겠다.”(남이현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 대표)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 ‘화학산업의 날’ 행사장에서 만난 국내 석유화학 ‘빅3’ 최고경영자(CEO)들은 불황 극복에 대한 확신과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경쟁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했다.
LG화학은 최근 석유화학 부문에서 작년 4분기부터 이어진 적자를 끊고 올해 3분기 흑자전환이라는 깜짝 실적을 공개했다.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은 전 분기 대비 영업이익이 10% 이상 늘었고 이번주 실적 발표를 앞둔 롯데케미칼도 흑자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석유화학 업황이 바닥을 쳤다는 낙관론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다. 추운 여름을 보낸 석유화학업체들이 따듯한 겨울을 맞았다.
LG화학 실적 발표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석유화학 부문 적자 탈출이다. 지난해 4분기와 올해 상반기 적자가 총 2300억원에 달했던 석유화학 부문은 올해 3분기 366억원의 영업이익을 봤다. LG화학은 “유가 상승으로 래깅효과가 발생했고, 태양광 패널 필름용 소재(POE)와 탄소나노튜브(CNT) 등 고부가가치 제품군이 견조한 수익성을 냈다”고 밝혔다. 래깅효과란 원유 구매시점과 판매 시점이 한 달 이상 차이 나면서 원가 측면에서 마진이 달라지는 효과다. 원재료인 나프타 가격이 구매했을 때보다 올라 재고평가이익이 발생한 것이다.
오는 9일 실적을 발표하는 롯데케미칼도 5분기 연속 적자에서 벗어날 전망이다. 롯데케미칼은 작년 2분기 적자(-214억원)로 돌아선 후 같은 해 3분기와 4분기 총 8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냈고 올해 2분기까지 영업손실이 이어졌다. 이 기간 적자는 1조원에 육박한다. 이동욱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전 분기 일회성 비용이 제거된 가운데 주요 원재료 가격 상승으로 재고 효과가 추가될 전망”이라며 “범용 유화 제품의 스프레드(원료와 최종제품 가격 차이)도 전 분기보다 소폭 개선됐다”고 했다. IBK투자증권은 204억원, SK증권은 41억원의 영업이익 전망치를 내놨다.
한화솔루션 케미칼부문은 올 3분기 영업이익 559억원을 거뒀다. 전년과 비교하면 절반 넘게 감소했으나 폴리에틸렌(PE)과 폴리염화비닐(PVC) 등 주요 제품 판매마진이 늘면서 전 분기보다는 13.6% 증가했다. 석유화학업계는 정부와 '석유화학 비상 대응 협의체'까지 만들 정도로 업황 악화에 시달렸다. 지난해 여름부터 중국 공급 과잉과 고유가 여파로 고전을 거듭했다. 하지만 중국 수요 회복과 증설 규모 축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도 예상보다 안정적인 국제유가로 업황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LG화학은 지난 4월 가동 중단으로 매각설까지 불거졌던 여수 NCC 2공장을 최근 재가동했다. 일부 제품의 시장성이 개선되면서 에틸렌을 추가 생산하기로 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업계 수익성 기준이 되는 에틸렌 스프레드(에틸렌 가격에서 에틸렌의 원료인 나프타 가격을 뺀 값)가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당초 중동 사태 때문에 국제유가가 상승해 업황이 나빠질 것으로 예상했으나, 지난 8월부터 계속 오르던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지난 9월 말 94달러를 찍은 뒤 현재 80달러까지 떨어졌다”고 말했다. ”동시에 나프타 가격이 많이 하락했는데 제품 가격은 이보다 덜 떨어졌다”는 설명이다.
실적 전망도 양호하다. 최근 일주일간 석유화학업계 실적 전망을 한 증권사 10곳 중 8곳은 LG화학 석유화학부문이 올 4분기 245억원(평균)의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봤다. 한화솔루션 케미칼에 대해선 증권사 10곳 중 7곳이 389억원(평균)의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했다. 롯데케미칼 4분기 추정 영업이익은 485억원으로 흑자전환할 전망이다. 내년엔 LG화학 석유화학 부문과 롯데케미칼이 올해 대비 흑자 전환하고,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은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 1615억원(증권사 10개사 평균) 대비 45% 늘어난 2411억원을 기록할 전망이다.
다만 불안요인도 존재한다. 본업(화학) 수요 불확실성, 비화학(배터리소재·신재생 등) 부진, 비우호적인 거시경제 환경 등이다. 이진명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화학 시황에서 중국 영향력이 여전히 막대한 반면 국내 업체들의 글로벌 입지는 점차 약해지는 추세”라며 “생존의 갈림길에서 전략 변화가 절실하다”고 했다. 우리 대표 수출산업인 석유화학업종은 지난 20년간 대(對)중국 수출에 50% 이상 의존해 왔다. 하지만 중국이 공격적인 증설로 범용 제품 자급률을 높이면서 대중국 수출 비중은 올해 40%까지 감소했다.
석유화학업계는 이런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신사업을 통해 수익성 개선을 꾀하고 있다. LG화학은 배터리 소재·친환경 소재·신약을 3대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2025년까지 10조원을 투자한다고 2021년 7월 밝혔다. 사업 재편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충남 대산 SM공장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2028년까지 생분해성 플라스틱 등 친환경 제품 공장을 신설하기로 했고, 수익성이 저조한 OLED 편광판 사업을 지난 9월 1조1000억원에 매각했다. 롯데케미칼도 전지소재(동박, 양극박, 전해액, 분리막) 분야로 사업을 확대하면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중국, 파키스탄 자회사 등 비핵심 해외사업을 매각해 자금을 확보, 고부가 제품과 친환경 소재 사업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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