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대통령과 ‘놀라운 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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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임기 중이던 2016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전해 중간선거 패배 여파로 레임덕에 허덕였다.
박 대통령도 오바마처럼 치유, 화합, 통합의 모멘텀을 맞을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매번 놓쳤다.
보궐선거 패배 이후 윤 대통령은 "어떤 비판에도 변명해선 안 된다. 반성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에게도 오바마처럼 '놀라운 은총'의 모멘텀이 이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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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임기 중이던 2016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전해 중간선거 패배 여파로 레임덕에 허덕였다. 지지율도 추락했다. 그해 6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흑인교회에서 백인 청년의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오바마는 희생자들 추도식에 참석했다. 연설에서 “우린 놀라운 은총(어메이징 그레이스)을 통해 모든 걸 바꿀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돌연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에 어리둥절하던 희생자 유족들과 참석자 수천명이 이내 따라 불렀다.
찬송가 이후 추도식 분위기는 달라졌다. 슬픔, 분노로 가득했던 추도식장은 관용과 극복, 소통의 공간이 됐다. 희생자 유족은 용서를 얘기했고, 오바마는 위로와 상처를 거론하면서 행동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훗날 미 언론은 이 순간을 “오바마 재임 최고의 순간”으로 평가했다. 오바마는 2년 만에 지지율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정 운영의 동력도 되찾았다.
2년6개월간 박근혜정부 청와대를 출입하던 시절 두 가지 기억이 아직도 선연하다. 청와대 출입 첫날은 세월호 참사 한 달 뒤인 2014년 5월 19일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해경 해체 발표와 함께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만들겠다”고 했다. 희생자들을 거명하며 눈물도 흘렸다. 그는 사흘 전엔 세월호 희생자 유족을 만나 철저한 진상 규명을 약속했다. 그때만큼은 박 대통령에게 진정성이 있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 이후 여러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유족들과의 소통을 끝내 외면했다.
2015년 6월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풀(pool) 기자로 취재했다. 박 대통령은 “배신의 정치를 국민들이 심판해야 한다”는 폭탄 발언을 했다. 국무회의 성격과는 동떨어진 이 발언은 비박계 정치인을 심판하라는 메시지였다. 결과는 이듬해 총선 참패였다. 결국 심판의 메시지는 부메랑으로 자신에게 돌아갔다.
박근혜정부는 내내 개혁을 강조했지만 소통과 설득에는 실패했다. 그 대상이 야당이든 국민이든 상관없었다. 대통령 비서실장 김기춘의 취임 일성은 “윗분의 뜻을 받들어…”였다. 내부 소통이 제대로 이뤄질 리 없었다. 이따금 직언했던 후임 비서실장은 대통령과 몇 차례 충돌했고, 총선 뒤 사임했다. 박 대통령은 쓴소리를 싫어했다. 그러면서 야당 탓을 했다. 박 대통령도 오바마처럼 치유, 화합, 통합의 모멘텀을 맞을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매번 놓쳤다. 불통 이미지는 탄핵 때까지 이어졌다.
한동안 ‘공산전체주의’ ‘반국가세력’ 등 이념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던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보궐선거 패배 이후 윤 대통령은 “어떤 비판에도 변명해선 안 된다. 반성하겠다”고 했다. 내각과 참모들에겐 국민 소통, 현장 소통 강화를 주문했다. 예산안 시정연설에선 야당 대표를 먼저 언급하고, 국회에서 야당 의원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고개를 숙였다. 이후에도 윤 대통령은 연일 민생경제와 현장에 대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그 자리에서 여의도식 화법이 아닌 현장의 표현을 사용한다. 이런 모습은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처음부터 기대했던 것이다.
대통령의 모든 발언과 행동은 통치행위다. 대통령이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단순한 인기영합적 발표가 아닌 진정성 있는 소통과 설득은 국민들에게 감동을 준다. 윤 대통령은 시정연설 뒤 “취임 이후 가장 편안하고 기쁜 날”이라고 했다. 극단으로 치닫던 야당과의 갈등 역시 소통과 설득을 통해 해소되고 협치를 이루길 기대해 본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에게도 오바마처럼 ‘놀라운 은총’의 모멘텀이 이어질 수도 있다.
남혁상 편집국 부국장 hs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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