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한국 다이프’는 사우디·카타르의 ‘바라카’

2023. 11. 7.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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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아랍인들은 ‘다이프(손님)’를 ‘바라카(축복)’라며 3일간 융숭히 대접한다. 사막과 초원에서 오랜 기간 고립된 생활을 하는 유목민에게 다이프는 바깥세상의 소식을 전해주는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이다. 아랍에미리트(UAE)에서 가동 중인 한국 최초의 수출 원전 이름도 바라카다. 올해는 우리 기업이 중동 최초로 건설 신화를 써나간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UAE에 이어 지난달 말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를 국빈방문했다. 한 해에 중동의 ‘빅3 국가’를 모두 방문한 것이다. 얼마 전 이스라엘·하마스 간 무력 충돌로 불안한 중동 정세 속에도 사우디와 카타르는 한국이라는 다이프를 예정대로 맞이하기 위해 치밀한 준비를 했다.

지난 9월 말 알 카비 카타르에너지공사 최고경영자(CEO) 겸 에너지국무장관이 방한해 액화천연가스(LNG) 도입 및 운반선 수주 협상, 무탄소에너지(CFE) 협력 등 양국의 새로운 에너지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지난달 중순에는 사우디의 칼리드 알팔레 투자부 장관이 방한해 양국이 진행 중인 협력 사업을 하나하나 챙겼다. 사우디 석유장관과 아람코 회장을 역임했던 그는 윤 대통령의 국빈방문을 성심껏 준비 중이라고 귀띔해주기도 했다.

순방 첫날 사우디 영공에 진입한 공군 1호기는 2대의 F-15기 호위를 받았고,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자신의 차 옆자리에 윤 대통령을 태우고 직접 리야드 시내를 운전하는 친근감을 보였다. 카타르에서도 기마·낙타 부대가 호위하는 환영식과 함께 타밈 빈 하마드 알 사니 국왕 내외가 정상 내외를 만찬에 초청해 중동 문화권에서 보기 힘든 파격적인 의전을 보여줬다.

이들에게 한국은 단순한 손님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라피크(동반자)’였다. 실크로드를 주도하던 아라비아 상인에게 ‘신뢰’는 목숨과도 같은 덕목이다. 사막을 함께 횡단하는 라피크는 보통의 친구와는 차원이 다른 의미다. 반세기 동안 우리 기업이 계약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해 온 모습이 일궈낸 관계다.

이번 국빈방문은 ‘중동 2.0 협력 시대’를 여는 비즈니스 분야에서 가장 빛났다. 정상회의에서 무함마드 사우디 왕세자는 ‘비전 2030’ 실현을 위해 한국과 첨단산업, 콘텐츠, 국방 등 더 많은 분야에서 협력하기를 원했다. 타밈 카타르 국왕도 투자,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항만·공항, 농업기술, 에너지 등 6대 분야에서 한국과의 긴밀한 협력을 희망했다. 정부와 경제단체, 스타트업과 대기업 등의 130여명 기업인이 ‘원 팀’이 돼 사우디에서 156억 달러, 카타르에서 46억 달러 규모의 경제 협력 성과를 거뒀다. 한국석유공사는 사우디 아람코와 원유공동비축계약을 체결해 에너지 공급 불안을 해소했고 현대차는 사우디에 중동지역 첫 완성차 생산 거점을 확보했다. HD현대중공업은 카타르와 17척의 LNG운반선 건조 계약을 체결해 반년치 일감을 마련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사우디 에너지부가 ‘수소 오아시스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해 2030년 세계 최대 수소 수출국을 목표로 하는 사우디와 청정수소의 생산, 유통, 활용 등 밸류체인 전반을 협력하기로 한 점도 주목할 성과다. 앞으로도 진행 중인 사업들이 향후 수출, 수주 계약으로 이어져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사우디의 왕자인 압둘아지즈 빈 살만 에너지부 장관은 필자와 면담 후 배웅하는 길에 손을 꼭 잡고 다시 사우디를 방문해 달라고 요청했다. 카타르 재정의 80% 이상을 책임지는 알카비 에너지국무장관도 다음 기회에는 카타르 산업 현장을 함께 방문해 더 많은 협력 프로젝트를 발굴하자고 했다. 이들의 따뜻한 손길에서 이번 정상외교의 진정한 성과는 동반자로서 새로운 여정의 첫걸음을 디딘 것이라는 점을 실감했다. 한국과 중동의 라피크로서의 여정은 이제 시작이다.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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