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나의 행복한 북카페] 우리가 원시인에게 빚진 것
옛날엔 빠진 이를 지붕 위로 던지며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라고 말하면 튼튼한 이가 생긴다고 믿었다. 병이 나면 벌 받는 거라 생각했고, 인형을 만들어 찌르면 그 사람이 앓다 죽는다고 믿었다.
100년 전만 해도 서양 사람들은 각 나라의 민속·풍습을 보고, 민족 간 도덕·문화적 우월성과 야만성을 평가했다. 하지만 전 세계 풍습이 같은 뿌리에서 나왔음을 집대성한 책 『황금가지』(1890)가 유럽의 편견을 흔들어 놓았다. 저자 제임스 프레이저는 문화간 비교 상대주의 위험성을 통찰하며, 인간의 본질은 같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원시시대의 주술이 종교가 되고, 근대의 과학으로 진보하며, 지식의 진보가 도덕의 진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일례로 겨울에 죽은 듯했던 식물이 봄에 다시 살아나는 대지의 부활은 모든 농경 문화의 봄 축제에서 볼 수 있다. 원래 동지를 기념했던 크리스마스 축제는 이교도 축일과 일치하는 태양의 탄생일이었고, 또 많은 나라에서 새해 첫날이었다. 켈트족 설날인 11월 1일 전날 밤인 핼러윈은 유령과 귀신을 몰아내 안녕을 기원하는 행사로, 우리나라 설 전날 밤 청소를 하고 자지 않는 풍습과 유사하다. 의미는 잊히고 형식만 남은 풍습은 왜곡을 낳는다. 또 ○○엄마, ○○댁이라는 호칭은 여성의 이름이 없던 때의 얘기보다 이름을 부르면 행여 악운이 따르지 않을까 하는 애틋한 마음이 담긴 터부에 가까웠다.
조선시대 『심청전』이나 그리스 신화에서 안드로메다를 구하는 페르세우스 영웅담도 바다에 대한 인신공양이란 점에서 닮았다. 그런 면에서 삼손이 머리카락을 고수한 것과 구한말 단발령에 대한 반발도 짝지을 수 있다.
원시인의 사유와 관습에 많은 빚을 진 우리는 오늘날의 지혜와 번영에 이르렀다. 낯선 풍습과 미신은 무지와 야만이 아닌, 인류가 삶을 소중히 지켜온 아주 오랜 지혜이며 기도였다. 우린 그토록 정성을 다해 살아본 적 있던가.
이안나 성형외과 전문의·서점 ‘채그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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