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상 읽기] 스코세이지의 고집
할리우드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의 새 영화 ‘플라워 킬링 문’ 앞부분에 감독이 직접 나와 영화의 의의를 설명하는 장면이 짧게 등장한다. 형식도 특이하지만, 그 장면 속 스코세이지가 영화관 객석에 앉아있는 게 눈에 띈다. 스코세이지는 점점 더 많은 영화가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겨냥해 만들어지고, 극장은 마블 같은 수퍼 히어로 영화가 독차지하는 최근 추세를 비판해 왔다. 따라서 그가 영화관에 앉아 있는 모습은 전통적인 영화 문화를 회복하자는 무언의 호소로 읽힌다.
스트리밍을 싫어하는 그도 넷플릭스의 신세를 진 적이 있다. 2019년에 나온 ‘아이리시맨’은 3시간 반이나 되는 길이와 엄청난 제작비 때문에 넷플릭스가 제작비를 대겠다고 나서서 완성할 수 있었다. 넷플릭스는 그 정도 길이면 8편의 에피소드로 쪼개는 것을 선호했겠지만, 영화의 ‘콘텐트화’를 싫어하는 거장을 붙잡기 위해 스트리밍에 어울리지 않는 장편 대작이 나오게 됐다.
‘플라워 킬링 문’도 세 시간이 훌쩍 넘는다. 논픽션 원작이 워낙 방대한 스토리를 담고 있어서 시리즈로 만들면 훨씬 더 많은 내용을 전달할 수 있었겠지만, 스코세이지에게 이런 대작 영화를 8부작 스트리밍 시리즈로 만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는 차라리 내용을 압축해서라도 극장용 영화를 만들 감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코세이지는 이번에도 스트리밍업체에서 제작비를 받았다. 애플TV 플러스가 스트리밍 권리를 받는 조건으로 이 영화를 지원했다. 물론 영화관에서 상영한 후에 스트리밍하는 조건이었지만, 이제 대작 영화는 디즈니의 수퍼 히어로 영화가 아닌 이상 제작사를 찾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스코세이지 같은 거장조차도 말이다.
박상현 오터레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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