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벤투스 '재앙의 날'…월드클래스 수비수가 탄생했다 [트랜스퍼마켓]
(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2000년 5월14일 이탈리아 중부 페루자의 레나르토 큐리 경기장.
그 곳에서 벌어진 한 경기는 지금도 이탈리아 세리에A 역사에서 우승팀이 뒤바뀐 가장 극적인 승부 중 하나로 꼽힌다.
이날 경기장엔 홈팀 페루자와 원정팀 유벤투스가 1999/2000시즌 세리에A 최종 34라운드 경기를 앞두고 나란히 섰다. 경기 전엔 해가 내리쬐던 경기장엔 전반 중반이 되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천둥 번개까지 치면서 레나르토 큐리 경기장의 분위기를 음산하게 만들었다.
이날 페루자-유벤투스는 그냥 한 경기가 아니었다. 이날 유벤투스는 이기면 1998/99시즌 AC밀란에 내줬던 '스쿠데토(세리에A 우승팀이 다음 시즌 유니폼에 붙이는 방패 모양 마크)'를 2년 만에 탈환할 수 있었다. 유벤투스는 페루자와의 경기 전까지 승점 71을 기록하며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당시 세리에A는 지금 프리미어리그처럼 세계 최고 선수들이 모여 겨루는 유럽 최강 리그였는데 특히 유벤투스, AC밀란, 인터 밀란, AS로마, 라치오, 피오렌티나, 파르마는 '7공주'라는 닉네임이 붙을 정도로 치열하게 경쟁했다.
유벤투스는 마침 리그 막판 '7공주'들과 몰아서 싸웠다. AC밀란, 라치오에 연달아 져 위기에 빠졌으나 인터 밀란, 피오렌티나를 연파하며 다시 우승에 다가섰다. 중하위권 엘라스 베로나에 졌지만 직전 33라운드에서 역시 '7공주' 중 하나인 파르마를 1-0으로 이겨 자력 우승 가능성을 계속 살렸다.
반면 같은 시간 로마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선 승점 69를 기록 중인 2위 라치오가 실낱 같은 역전 우승 희망을 안고 레지나와 싸우는 중이었다. 다만 유벤투스가 17라운드 홈 경기에서 페루자를 3-0으로 완파한 터라 라치오의 우승을 예상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세리에A 사무국도 진품 트로피를 페루자에 갖다 놓고 추이를 지켜봤다.
하지만 페루자에 폭우가 쏟아지면서 경기는 알 수 없이 흘러갔고, 특히 유벤투스는 주포 필리포 인자기가 골문 앞 절호의 찬스를 날리는 등 이탈리아 최강과 어울리지 않는 골결정력을 선보였다. 비 때문에 그라운드 배수 상태가 엉망이 되면서 경기가 수십분 중단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급기야 후반 5분 일이 터졌다. 페루자 34살 노장 미드필더 알레산드로 칼로리가 세트피스 상황에서 선제골을 터트린 것이다. 비겨도 우승이 물거품 되는 상황에서 한 골 내준 유벤투스는 이후 사력을 다해 동점골, 역전골을 차례로 노렸으나 페루자의 철통 같은 수비라인에 막혀 좀처럼 찬스를 잡지 못했다. 당시 유벤투스엔 프랑스를 1998년 월드컵 우승으로 이끈 지네딘 지단도 있었다. 하지만 지단도 폭우 속에선 힘을 쓰지 못했다.
결국 주심이 휘슬을 불어 종료를 알렸다. 페루자 선수들은 마치 원정팀 선수들처럼 간단한 인사 뒤 빠르게 홈구장을 빠져 나갔다. 그라운드엔 주저 앉은 유벤투스의 스타플레이어들이 허탈한 표정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같은 시간 로마에선 라치오 선수와 구단 관계자, 그리고 팬들이 비 때문에 중단돼 아직 한창 후반전이 진행 중인 페루자-유벤투스 경기를 텔레비전 혹은 라디오로 듣고 있었다. 라치오는 이미 레지나를 3-0으로 완파해 승점 72를 찍은 뒤였다.
페루자의 극적인 1-0 승리가 확정되자 라치오 선수들은 맑은 하늘 아래 천천히 '가짜' 우승 트로피를 받기 위해 단상에 섰다.
세계적인 미드필더로 이름을 날렸던 세바스티안 베론은 환하게 웃으며 앞장 섰다. 역시 월드클래스 미드필더로 명성을 날렸던 파벨 네드베드를 비롯해 칠레 간판 공격수 마르셀로 살라스, 맨시티와 이탈리아 대표팀을 거쳐 지금 거액을 받고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을 지휘하는 로베르토 만시니, 유럽 최강 센터백 듀오 알레산드로 네스타와 시니사 미하일로비치 등 당대 최고의 선수들이 26년 만의 스쿠데토를 라치오에 안긴 뒤 환호했다.
이렇게 유벤투스와 라치오가 펼친, 세리에A 최고의 드라마 같은 우승 경쟁에 큰 변수가 된 인물이 하나 있었다.
바로 페루자의 27살 중앙 수비수 마르코 마테라치였다. 193cm로 당시 꽤 큰 키였던 마테라치는 페루자 수비라인을 진두지휘하면서 유벤투스 파상공세를 차단하는 중심에 섰다. 날씨가 멀쩡할 때 페루자를 거세게 몰아붙이던 유벤투스는 그라운드에 물웅덩이까지 생기면서 공중볼에 상당히 의존했는데 마테라치는 제공권에서 상대팀 월드클래스 선수들을 압도했다.
마테라치는 당시만 해도 그렇게 유명한 수비수는 아니었다. 1997년부터 1년 반 페루자에서 뛰다가 프리미어리그 에버턴으로 이적했으나 1년 만에 퇴출당하고 다시 페루자로 온 상태였다. 세리에A 강등권인 페루자에서도 확고한 주전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1999/2000시즌 후반기부터 주전으로 뛰며 페루자의 수비라인을 이끌더니 유벤투스가 주저 앉은 시즌 마지막 경기를 통해 이탈리아가 주목하는 수비수로 급부상했다.
자신감을 얻은 마테라치는 안정환이 이적했던 2000/01시즌 수비수임에도 30경기 12골(페널티킥 7골)이라는 엄청난 득점력을 폭발하며 세리에A 수비수 한 시즌 최다골을 경신했다. 페루자와 계약 종료 수개월 전 일찌감치 인터 밀란 이적을 확정지으면서 30살 다 되어서야 명문 구단에 합류했다. 2001년엔 이탈리아 국가대표로도 뽑혀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그 유명한 '지단 박치기 사건'의 주역이 되는 등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2000년 마테라치 앞에서 비극의 주인공이 됐던 지단이 6년 뒤 월드컵에서 다시 마테라치에 당한 셈이었다.
유벤투스에 재앙과 같았던 2000년 5월14일, 거꾸로 마테라치라는 빗장 수비의 본고장 이탈리아가 눈여겨보는 수비수로 올라섰다. 인터 밀란이라는 꿈의 구단으로 가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마테라치도 파란만장한 축구 인생을 보냈지만 그 경기 만큼은 아직도 똑똑히 기억한다. 그는 지난 2020년 5월 페루자-유벤투스 경기 20주년을 추억하는 한 동영상 채널에 나왔다. 그는 "당시 꽤 추웠다. 햇빛이 있었을 때 유벤투스는 4골을 넣을 수 있었지만 전부 빗나갔다"며 "후반전 유일한 코너킥 상황에서 칼로리가 득점했다. 이후 우린 우리의 할 일을 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런데 인터 밀란으로 이적한 뒤 똑같은 일을 나도 (유벤투스처럼)겪었다. 그래서 페루자 시절 유벤투스와의 그 경기가 더 기억 난다"고 했다.
사진=연합뉴스, 마르코 마테라치 SNS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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