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상인…그리고 은행들 [김선걸 칼럼]

김선걸 기자(sungirl@mk.co.kr) 2023. 11. 6.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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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걸 주간국장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에는 샤일록이라는 고리대금업자가 나온다.

16세기 기독교 사회는 이자를 터부시했다. 그런 가운데 샤일록은 욕을 먹으면서도 고리를 받는 유대인이다. 그런데 주인공 측인 안토니오에게는 이자를 안 받고 돈을 빌려주겠다고 제안한다. 대신 만기가 지나면 살 1파운드를 잘라내겠다는 것이다. 이 대목은 ‘안토니오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교활한 샤일록의 제안’으로 해석되고는 한다. 안토니오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돈 거래 때 이자를 주고받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인인 한 은행 임원은 이를 다르게 해석한다. 샤일록은 깨어 있는 금융업자였고, 경제에 무지한 안토니오에게 돈(대출)에는 공짜가 없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이란다. 결과적으로 유대인들은 이렇게 돈을 벌어 세계 금융을 지배하게 됐다는 것이다. 작품 내 문맥상으로는 설득력이 없지만, 직업에 따라 세상을 보는 시각도 참 다르구나 싶어 흥미로웠다.

요즘 유난히 은행 욕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기업인, 소상공인, 샐러리맨들로부터 공적이 됐다. 특히 사업하는 사람 열에 아홉은 은행을 욕한다.

며칠 전 윤석열 대통령도 나섰다. 윤 대통령을 만난 소상공인들은 눈물을 흘렸다. 이어 “죽도록 일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에 ‘마치 은행 종노릇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우리나라 은행은 갑질을 많이 한다. 너무 강한 기득권층”이라고 질타했다. 파장은 크다. 예를 들어 야당이 발의했던 ‘횡재세’는 정부 여당 쪽에선 평가 절하해왔다. 그런데 원성이 높아지니 정부도 ‘고민해보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한마디로 은행 자업자득이다. 고금리 시대에 은행은 비난받기 쉽다. 그런 점을 감안해도 요즘 은행이 서민들 목줄을 쥐고 흔드는 사례가 많다.

계약금을 송금하기로 해놓고 이유 없이 ‘기표(대출 실행)’를 안 해 망연자실한 기업, 사연도 한마디 듣지 않고 대출을 회수해버려 냉가슴을 앓는 자영업자 등이 차고 넘친다. 요즘처럼 원자잿값이 오르고 인력난일 땐 중소기업이 납기보다 두세 달 늦는 건 예삿일이다. 한 달만 기다려주면 되는데 눈 하나 깜박 않고 돈을 회수해 벼랑 끝에 몰리는 경우도 있다.

물론 안 그런 은행원도 많다. 은행마다 다르고 기업마다 다르다. 그러나 최근 시스템 자체가 국민의 피땀을 짜서 은행원만 배불리는 것으로 굳은 건 아닌가 싶다.

지난해 5대 은행 직원 1인당 평균 연봉은 1억1006만원이다. 임원 평균이 아니고 신입 포함한 직원 평균이다. 올해 퇴직자 중에는 퇴직금 총액이 11억원을 넘기도 했다. 기본급의 300% 수준의 성과급을 누렸다. 사실상 독과점인 은행이 고금리로 서민들의 피땀을 짜고 성과급 돈잔치를 한다. 국민들이 분노하는 이유다.

최근 만난 한 기업인은 “금융지주 기사를 언론에서 볼 때마다 화가 난다. 실적 운운하는데 고리로 자기 이익 챙긴 것 말고 국민이나 기업에 한 일이 뭐냐”고 일갈했다. 감독당국이 샅샅이 봐야 한다. 외국 자본과 모험 자본에 은행을 파격적으로 열어야 한다. 경쟁시키고 문턱을 낮춰야 국민이 혜택을 본다.

‘베니스의 상인’ 결말은 이렇다. 빌린 돈의 3배를 주겠다는데도 샤일록은 엄격한 법 집행으로 살을 도려내겠다고 호기를 부린다. 그리고 반전이다. 재판관은 피를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사형에 처하겠다고 판결을 내린다. 결국 이행을 못하게 된 샤일록은 오히려 재산을 몰수당하고 쫓겨난다.

지난 400년간 독자들은 이 대목에서 셰익스피어에게 박수를 보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3호 (2023.11.08~2023.11.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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