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3~4번 기자간담회? 대전시의 이상한 업추비 내역
[신정섭 기자]
언론 본연의 사명은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일이다.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국민의 알 권리가 침해되고, 진실은 뒤로 숨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전시와 5개 자치구가 사용한 대언론 시책추진 업무추진비는 얼마나 될까?' 궁금해서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아홉 달 동안의 집행내역 전체를 살펴보았다.
▲ 2023년 1~9월 대전시와 5개 자치구의 '기자 간담회' 업무추진비 집행내역 비교표 |
ⓒ 신정섭 |
대전시는 총 596차례에 걸쳐 6200만 원을 썼다. 자치구에서는 동구청이 253회 2900여만원으로 가장 많은 업무추진비를 집행했고, 대덕구청이 54회 790여만원으로 지출이 가장 적었다. 중구청은 276회 1800여만원, 서구청은 171회 2500여만원, 유성구청은 221회 1900여만원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업무추진비 집행의 타당성을 따져보았다. 대전시는 올해 1~9월 아홉 달 동안 무려 596차례나 '기자 간담회'를 연 것으로 나와 있는데, 이는 평일을 기준으로 하루 평균 약 3회에 해당한다. 대전시 홍보담당관실은 보통 하루 서너 차례에 걸쳐 각기 다른 장소에서 적게는 2명 많게는 10여 명의 언론 기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했다. 홍보담당관 또는 소속 직원들이 식당을 나눠 시정 홍보를 위한 간담회를 열었다는 얘기다. 자치구의 집행 방식도 비슷했다. 시민의 눈높이로는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겉보기에는 '위법'이 아니지만...
▲ 지방자치단체 업무추진비 집행에 관한 규칙 [별표1] 중 기자간담회 관련 내용 |
ⓒ 국가법령정보센터 |
관련 규칙에는 '간담회를 개최할 경우' 식사를 제공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같이 식사를 한 경우' 간담회를 연 것으로 갈음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한 마디로, 각 기관의 홍보 담당자들이 언론 기자들에게 밥을 사주는 관행에 '시책 홍보'라는 명목을 얹은 행위가 아닐까란 의심이 든단 이야기다.
실상은 무늬만 '기자 간담회'?
이와 관련하여 익명을 요구한 한 인터넷 언론 기자는 "공식적인 간담회는 그리 많지 않다. 그냥 관리 차원에서 기자들에게 밥을 사주는 일이 훨씬 더 잦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기사를 발굴하고 좋은 정책을 널리 홍보할 목적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워낙 많아 '혈세 낭비'라고 볼 여지가 많다"고 덧붙였다.
기관의 언론 홍보 담당자는 이러한 관행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한 자치구 관계자는 '아홉 달 만에 2백 회 넘게 간담회를 연다는 게 상식에 부합하는 일이냐'고 묻자, "구청에 찾아오는 기자분들이 워낙 많아서 그렇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자님들 사이에서도 친분이 있는 분들이 따로 있다 보니, 부득이 우리 직원이 각기 다른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구정 홍보를 한다"고 해명했다.
다른 자치구의 홍보 담당자는 '기자 간담회를 통해 홍보할 시책이 그렇게 많냐'는 질문에, "솔직히 사전에 기자 간담회를 개최한다고 공지한 경우에만 같이 식사한다고는 말씀 못 드리겠다. 다만, 구정 홍보 목적인 것만큼은 분명하고, 축제나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는 평소보다 업무추진비 지출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대전의 다른 자치구나 타 시도 지방정부도 사정은 비슷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단체장 및 부서별 업무추진비는 매달 일정 시기에 전월 집행내역을 공개하는 게 원칙이지만, 제때 공개되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대전시 홍보담당관실의 1~4월 업무추진비는 지난 5월 30일 뒤늦게 하나로 묶여 공개되었고, 일부 자치구에서는 홍보실의 시책추진 업무추진비를 누리집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가 기자의 취재가 시작되자 부랴부랴 11월 3일과 6일에 올해 1~10월 해당분의 자료를 올리기도 했다. 신속하고 체계적인 정보공개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공공기관이 언론 기자들에게 밥을 사주는 관행은 대전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고, 이미 오래전부터 문제 제기가 이루어졌다. <미디어오늘>은 2019년 8월 4일 자 기사를 통해 7개 특별·광역시(세종 포함, 광주 제외) 2018년 업무추진비 중 식사 및 선물 구입 등의 명목으로 언론인에게 지출한 돈이 최소 7억 6천여만원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2018년 당시 대전의 경우 기자 식사비 지출이 928건으로 7개 지역 중 두 번째로 높았다. 1주 평균 17번, 하루 평균 3~4건씩 기자 식사비를 부담한 셈이다. 그로부터 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상황은 본질적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9월 아홉 달 동안 대전시가 총 596차례 기자 간담회를 핑계로 식사비를 지출했으니, 이를 1년으로 환산하면 약 795차례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악화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감사와 자정 노력 통해 잘못된 관행 고쳐야
대전광역시의회 및 각 구의회가 행정사무감사 등을 통하여 집행기관이 시책추진 업무추진비를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지 면밀하게 조사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또한, 각 자치구 감사실과 대전광역시 감사위원회가 나서서, 대전시와 각 자치구에서 주민 혈세인 업무추진비를 허투루 쓰는 일이 없는지 제대로 살펴본 후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언론사 및 기자의 자정 노력도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정진호 대전충남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운영위원장은 "언론을 상대로 한 시책 홍보는 필요하겠지만, 밥과 술을 사주면서까지 홍보해야 하는 건 아니다"라며 "주민의 혈세로 기자들을 대접하는 것보다, 어려움 속에 고통받는 주민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찾아 지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언론인들도 관공서가 밥이나 술을 통해 자신들을 관리하고 있는 데 대해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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