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 ‘묻지마’ 금융 지원, 독 될수도 [스토리텔링경제]

신재희 2023. 11. 6.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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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 지원 등 출구전략 마련도 중요


윤석열정부의 1호 공약 및 국정과제는 ‘소상공인·자영업자 살리기’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윤 대통령은 이 의제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코로나19 시기 선지급한 재난지원금 8000억원 환수를 백지화하고 저리 융자 자금 4조원을 내년 예산에 반영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자영업계가 국내 경제의 중요 기반이자 경제·사회적 안전망으로서 핵심 기능을 담당하는 것은 맞다. 국내 자영업자 비중은 다른 국가에 비해 유독 높다. 지난 2분기 기준 자영업자 비중은 19.9%로, 미국(2021년 기준 6.6%)·일본(9.8%)·독일(8.4%) 등 주요국 비중을 한참 웃돌았다.

다만 단순히 소상공인 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로 정부가 언제까지, 얼마만큼 도움을 줄 것인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찍힌다. 소상공인 사업체의 영업이익은 코로나19 전에도 꾸준한 하향 추세였다. 물론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자영업자 경영수지가 급격히 나빠진 것은 맞지만 자영업계 경영난은 장기간에 걸친 추세 속에서 진행돼왔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묻지마’ 금융 지원이 채무 부실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소상공인 연명에 이미 수십조 투입

코로나19 국면에서 소상공인에 투입된 국가 예산은 수십조원이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2년 8월까지 소상공인 회복 지원사업에 투입된 예산은 63조원이었다. 이후 투입된 예산까지 합치면 지원 규모는 훨씬 더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고금리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은 늘어만 가는 실정이다. 지난 2분기 기준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직전 분기 대비 9조5000억원 늘어난 1043조2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연체액(7조3000억원)과 연체율(1.15%) 상승세도 가파르다.

국내 자영업자 대출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지역별로는 수도권, 소득분위별로는 저소득층, 금융업권 별로는 비은행권, 대출금리 수준 별로는 고금리 대출을 중심으로 급증하고 있다는 점 등이다. 업종별로는 도소매업, 숙박·음식점업 등 대면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고위험 대출이 증가했다. 3곳 이상에서 대출을 받은 다중채무자 비중(56.7%)도 높은 편이다.


문제는 언제까지 부실 눈덩이를 계속 키울 것이냐다. 국내 자영업자·소상공인 정책은 여전히 ‘유지 및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2021~2025년 국가재정운용계획 지원단이 소상공인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중소벤처기업부의 중소기업 정책 101개를 검토한 결과 창업 특화사업에는 29%, 유지 및 성장 사업에는 54%의 예산이 책정돼 있었다. 포화 상태의 자영업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지만 늘 장기 과제로만 남겨두는 실정이다.

경기가 살아나 소상공인의 상환능력이 개선될 때까지 ‘묻지마’ 지원을 계속하기에는 경기 전망이 불투명하고 채무가 불어나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자영업자 대출이 부실화할 경우 업권 간 부실 전염이 빠르게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코로나19 이후 자영업자 대출의 증가세 및 채무상환위험 평가’ 보고서에서 “자영업자 대출 증가세 지속은 회생 불가 자영업자의 구조조정 지연 및 잠재부실의 이연·누적을 심화시키는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살리기’와 ‘출구 마련’ 병행돼야

소상공인 지원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형평성·도덕적 해이 논란도 뒤따른다. 고금리·고물가는 누구에게나 시련인데 소상공인·자영업자만 콕 집어 이자를 탕감해주고 저리로 대출해주는 특혜를 주는 게 공평하냐는 것이다.

자영업자 대출의 허점 및 부작용도 있다. 한은이 가계금융복지조사 통계를 이용해 자영업자 대출 활용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기간 저소득 가구는 주로 생활자금 확보를 위해 대출을 늘렸지만 고소득 가구는 사업 또는 부동산 등 투자를 위해 대출을 확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고소득 자영업자에 대한 대출 확대는 장기적으로 부동산업 대출을 증가시키는 문제점도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처럼 소상공인·자영업자 부채는 가계부채와 기업부채의 경계에 있고, 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을 망라하고 있어 더 정확한 통계 파악과 종합적인 차원에서의 정교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르지만 정작 분석은 미흡한 실정이다.

정부 지원에 기대 연명하고 있는 소상공인에게 출구 전략을 제때 마련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오윤해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자영업자 부채의 위험성 진단과 정책방향’에서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경영이 악화된 자영업자에게는 원활하게 폐업할 수 있도록 지원해 부채의 누적 증가를 방지하고, 이후 재기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폐업 사업주 일부는 근로 시장으로 진입하게 하고, 재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은 사업성 있는 시장에 진출하도록 지원해 자영업 과밀화 문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미국 등 일부 해외 국가는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재생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는 진단 프로그램을 통해 ‘맞춤형 지원’을 펼치고 있다. 김경민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국내 소상공인·자영업자는 스스로 판단해 신청한 그대로를 지원한다”며 “회복이 가능한 사업자가 폐업을 선택하거나 폐업이 더 유리한 사업자가 과도한 부채를 떠안은 채 사업을 계속하는 불합리한 사례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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