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면 한전보다 더 심란한데…요금인상 타이밍 놓친 가스公
찬바람이 불면 여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 난방비 고지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올겨울엔 가스요금을 올리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연중 ‘뜨거운 감자’인 전기요금과 달리 가스요금 인상 논의는 수면 아래 잠잠하다. 최연혜 한국가스공사 사장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쏟아진 가스요금 인상 관련 질의에 대해 “가스요금 인상은 필요하다”면서도 “한겨울에 난방비가 많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연착륙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가스요금 조정은) 상시 협의하고 고민 중인 최우선 현안”이라며 “언제 조정하느냐가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은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요금을 올리고자 했다면 진즉 움직였어야 했기 때문이다. 가스공사는 지난해 4·5·7·10월에 걸쳐 가스요금을 MJ(메가줄)당 5.5원(약 38.7%) 올렸다. 하지만 올해는 지난 5월 한차례 인상(MJ당 1.04원)하는 데 그쳤다. 동절기(12월~3월)는 가스 난방 수요가 몰리는 시점이다. 물가 잡기 총력전에 나선 정부가 가스요금 인상 카드를 꺼내 들기 어려운 여건이다.
문경원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겨울 난방 성수기 직전에 가스요금 인상이 부담스럽다는 점, 한전과 달리 가스공사의 손익계산서는 흑자를 유지해왔고, 사채 발행 한도에 여유가 있다는 점 때문에 (전기요금과 달리) 가스요금 인상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가스 요금 인상은 내년 4월 총선 이후에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도시가스용 천연가스 수입을 독점하는 가스공사의 경영 실적만 보면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가스공사는 자본잠식 상태다. 지난해 기준 부채비율이 500%에 달한다. 산업부 산하 공기업 중 1위다. 한전 부채비율(460%)보다 심각하다. 부채만 200조원을 넘긴 한전에 가려서 그렇지 가스공사의 경영 악화도 만만치 않다는 얘기다.
원인은 한전과 비슷하다. 가스공사가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원가보다 낮은 가격(원가보상률 78%)에 가스를 팔고 있어서다. 민수용(주택용·일반용) 도시가스 미수금은 2020년 1조2100억원에서 지난해 12조200억원까지 불었다. 올해 상반기 기준 15조3600억원에 달한다. 미수금은 천연가스를 원가 이하로 팔아서 생긴 일종의 영업 손실이다. 가스요금 인상으로 회수하지 못한 돈이다.
가스공사의 부실은 결국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한전만 해도 잇따른 전기요금 인상으로 하절기(6~8월)에 원가보다 높은 가격에 전기를 팔았다. 3분기 실적은 흑자를 예상한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이 상황대로 간다면 미수금을 해결하는 데만 7~8년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다급한 가스공사가 가스요금 인상 대신 의존하는 건 회사채다. 올해 3분기 기준 가스공사의 사채 발행 한도는 39조8901억원이다. 3분기 기준 사채 발행 잔액은 29조4010억원이다. 지난해 12월 가스공사법을 개정해 회사채 발행 한도를 자본금·적립금의 4배에서 5배로 늘렸지만 1년 만에 한도가 턱밑까지 찼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올겨울 난방용 LNG 구매가 늘 경우 사채 발행, 은행 차입이 늘어날 것”이라며 “고금리 장기화 상황에서 재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도 “가스요금 동결로 물가 충격을 흡수하는 것도 한계에 다다랐다”며 “4분기 가스 요금을 동결하면 결국 내년 초에 큰 충격을 받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에너지를 전량 수입하는 만큼 가스요금을 조금이라도 올려서 소비 감소를 유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취약계층이 한파에 특히 취약한 만큼 가스요금 인상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국장은 “난방·취사에 쓰는 가스는 공공재 성격이 크다”며 “국제 가격이 요동친다고 판매가격에 그대로 반영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공기업이 공공요금 인상 충격을 일정 부분 흡수해야 한다는 취지다.
가스공사는 이날 도시가스를 쓰는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동절기(10~3월) 가스요금을 4개월간 분할 납부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밝혔다.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등은 동절기 가스요금을 최대 59만2000원까지 감면한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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