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가 되어버린 탐정이 풀어낸 전쟁의 상흔

이정희 2023. 11. 6.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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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

[이정희 기자]

개인적으로 케네스 브래너라는 인물이 처음 시선을 끈 것은 영화 <덩케르크>에서 맡은 볼튼 사령관 역이었다. 하지만 이건 어찌보면 뒷북 중의 뒷북이다. 1960년 태생의 그는 20대부터 <헨리 5세> <컨스피러시> <작전명 발키리> <해리포터> 최근작 <테넷> <오펜하이머>에 이르기까지 선과 악의 다양한 얼굴로 대중을 만났다.
 
 <베니스 유령 살인 사건> 스틸 이미지
ⓒ 디즈니 플러스
하지만 케네스 브래너라는 인물을 배우로만 인식하는 것 역시 그의 한 면만을 보는 것이다. 일찌기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의 배우로 자신이 공연했던 <헨리 5세>를 영화화한 이래 그는 각본가이자, 감독으로 자신의 필모를 만들어 왔었다. 특히 자전적인 이야기 <벨파스트>로 아카데미상을 비롯한 각종 영화제에서 각본상과 감독상을 수상했다.

그렇게 감독으로 활약해온 케네스 브래너는 2017년부터 아가사 크리스티의 에르큘 포와로 시리즈를 영화화하고 있다. 조니 뎁, 페넬로페 크루즈 등 화려한 출연진을 끌어모은 <오리엔트 특급 살인>(2017), 갤 가돗을 앞세운 <나일 살인 사건>(2022)에 이어 2023년 9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양자경이 등장하는 <베니스 유령 살인 사건>으로 돌아왔다.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이 영화를 만나봤다. 

<핼러윈 파티> <마지막 교령회> 두 작품을 합쳐 각색한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은 전작들과 달리, 유명세를 덜 탄 작품이다. 그러기에 작품의 외연을 떠나 온전히 작품 자체에 몰입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또한 두 작품을 합쳐 각색한 작품답게 중층적인 서사들이 쌓여 영화의 볼거리를 선사한다.
 
 <베니스 유령 살인 사건> 스틸 이미지
ⓒ 디즈니 플러스
 
베니스의 깊은 밤, 으스스한 건물에서 발생한 살인

황갈색 지붕과 파란 바다의 대비가 아름다운 도시 베니스 아름다운 물의 도시라는 관광지로서의 명성이 앞선다. 하지만 해가 지자, 낡고 오래되어 무엇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음침한 분위기로 바뀐다. 더구나 하필 그 날이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무너진다는 핼러윈이라니.

'탐정'으로부터 은퇴한 에르큘 포와로, 그는 베니스에 칩거 중이다. 언제나 추리물에서 그렇듯, 탐정이 은퇴하면, 사건이 그를 찾아온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포와로의 활약을 작품으로 만들어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된, 마치 아가사 크리스티를 연상시키는 아드리아네 올리버(티나 페이 분)가 찾아온다. 레이놀즈(양자경 분)라는 영매가 벌이는 교령회의 속임수를 밝혀달라는 것이다.

교령회를 여는 이는 로웨나 드레이크(켈리 라일리 분), 유명한 소프라노인 그녀는 몇 년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딸이 그리워 심령회를 연다는 것이다. 고아원 아이들이 한바탕 사탕 잔치를 벌이고 난 저택에는 흑사병의 습격 속에 어린 고아들을 감금해 죽였다는 비극적 전설만이 메아리치고, 그곳에 자칭 영매 레이놀즈 양자경이 짧지만 강렬한 교령회를 펼친다.
 
 <베니스 유령 살인 사건> 스틸 이미지
ⓒ 디즈니 플러스
 
귀신을 보는 탐정이라니

영화는 은퇴했지만, 여전히 그 회색 뇌세포를 번뜩이는 에르큘 포와로와, 호러적 분위기 속에서 스스로 혼돈에 빠져드는 탐정의 갈등을 기본적 갈등의 구조로 한다.

대번에 굴뚝 속 인물을 끄집어 내며 영매의 예언을 치는 타자기의 트릭을 간파하는 포와로, 하지만 그런 그의 기지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의 눈 앞에서 영매의 의자가 돌고, 그의 눈에만 어떤 소녀가 보인다. 원작에 등장하는 회색 뇌세포의 탐정에 매료된 이라면 케네스 브래너 식의 감성적인 에르큘 포와로가 낯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03분의 런닝 타임의 결말에서 맞이한 추리극으로서의 영화의 묘미를 따지자면 아쉽다. 그런데, 지금도 인기를 끌고 있는 <명탐정 코난>, 기승전 코난의 일장 연설로 끝나는 코난의 묘미가 명쾌한 추리라고만 볼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 개인적으로는 앞서 <오리엔탈 특급 살인>이나, <나일 살인 사건>에 비해, <베니스 유령 살인 사건>은 사건이 가진 시대적, 공간적 분위기의 맛을 잘 보여준 작품이 아닐까 싶다. 영화는 시대적 배경이 되는 2차 대전이 끝난 1947년, 그 시대를 말하고자 한다. 왜 잘 나가던 탐정 에르큘 포와로는, 한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아빠인 의사는 칩거하게 되었을까?  영매의 비서가 된 두 남녀의 절박한 사연은 무엇일까? 영화 <벨파스트>처럼 한 아이를 매개로 그들이 겪은 전쟁의 비극을 통렬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즉 케네스 브래너가 <베니스 유령 살인 사건>을 통해 보여주고픈 건 또 한 편의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극이라기 보다는, 그 전형의 구조를 통해 보여진 인간사의 비극이다. 전쟁 통에 웃자란 아이가 만든 트릭에 한바탕 칼춤을 추고마는 어름들, 그 아이는 흑사병에 떠밀려 버려진 건물 지하의 해골 아이와 다를까. 추리극으로서는 아쉽지만 케네스 브래너가 보여준 부조리 시대극으로서의 잔향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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