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키우고 불교 병원 세운 녹원 큰스님…27명의 회고
"해가 바뀌면 나이 어린 사람에게는 한 해가 보태지고, 나이 많은 사람에게는 한 해가 줄어든다고 한다. 그러나 보태지고 줄어드는 일에 상관이 없는 사람이 있으니, 그는 세월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는 출격장부(出格丈夫)다."
무소유 철학을 강조했던 법정(法頂, 1932~2010) 스님이 영허녹원(暎虛綠園, 1928~2017) 대종사에게 바친 글 '직지사와 녹원 스님'의 일부다. 글은 이어진다.
"우리 녹원 스님께서 올해 고희를 맞이한다고 아랫사람들은 말하지만, 초록의 동산에 어찌 누런 잎이 끼어들 수 있으리. 살아 있는 빛깔인 그 초록의 동산에는 늘 팔팔하고 청청한 기상이 감돌 뿐이다."
"초록의 동산"은 대종사의 법명 '녹원'을 가리킨 게 확실하다. 법정이 이런 글을 바친 녹원 스님은 생전 매사에 철두철미하고 공사가 분명한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학문에 대한 갈증, 보람된 삶에 대한 열망에서 열세 살에 출가, 30대 초반 직지사의 초대 주지를 맡아 이후 30년간 대대적인 불사를 벌여 대가람으로 키웠다. 1985년 총무원장에 추대된 이듬해에 "이제 원장 자리를 내놓겠다"며 미련 없이 그만뒀고 16년간 동국학원 이사장을 맡아 학교를 키웠다. 80년대 중반 사경을 헤맨 경험 끝에 "아파도 기독교 병원에 신세 질 수밖에 없는 게 한국불교의 현실"이라며 동국대에 의과대학을 세워 경주·포항·일산 등에 대형 불교종합병원을 세웠다.
최근 출간된 『허공에 가득한 깨달음 영허녹원』(조계종출판사)은 갈수록 '도인'을 찾기 어려운 세태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27명 후학들의 녹원 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모았다. 녹원스님의 손상좌 묘장스님(조계종 사회복지재단 대표이사)이 기획하고 유철주 작가가 27명을 인터뷰해 정리했다.
평생 도반이었던 조계종 전 원로의장 도원 스님은 박정희 대통령과 녹원 스님의 인연을 소개했다. 국회 정각회 의장을 맡고 있는 주호영 의원도 일찌감치 녹원 스님을 마주쳤다.
책에는 추모글도 들어 있다. 미당 서정주 시인은 이런 작품을 썼다.
"이 고요에/ 묻는/ 나의 손때를// 누군가/ 소리 없이/ 씻어 헹구고,// 그 씻긴 자리/ 새로/ 벙그는// 새벽/ 지샐녘/ 난초 한 송이." '녹원 큰스님'이라는 작품의 전문이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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