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뒤 느낀 막막함, 이렇게 해보니 훨씬 살만해졌다

임경욱 2023. 11. 6.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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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티움, 살아갈 힘을 주는 나만의 휴식> 을 읽고

[임경욱 기자]

어디에선가 보고 읽어야겠다 메모해 둔 책 목록에 〈오티움〉이 있어 전자도서관에서 검색해 보니 다행히 대출이 가능하다. 저자 문요한은 정신과 전문의이자 작가로 마음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인간관계 심리학, 자기돌봄 심리학 등 심리치유 분야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연구해 온 전문가이며, 최근 〈나는 왜 나를 함부로 대할까〉라는 제목의 책이 발간되어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었다.

작가의 블로그에 방문하니 프런트에 그의 사진과 함께 'Cura sui, 너 자신을 돌보라'라는 타이틀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명언을 정신과 의사의 시각으로 해석한 게 그 전엔 그저 막연하고 추상적으로만 느껴졌던 문구가 훨씬 구체적이고 절실하게 마음에 와닿는다.

작가는 정신과병원을 운영하던 중 각종 스트레스와 과로로 인해 번아웃에 빠지게 되어, 고민에 고민을 거쳐 2014년 1년간의 휴식년에 들어가게 된다. 자영업자나 다름없는 병원 원장이 문을 닫고 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은퇴를 1년 미루기로 하고 미리 1년을 앞당겨 쉬기로 결단을 한다. 그의 삶은 이를 계기로 180도 바뀌게 된다.

나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휴식년제의 절실함을 많이 느꼈다. 대학교수들이 갖는 일정 주기의 안식년까지는 아니더라도 20~30년을 한 직장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에게는 1~2년의 휴식년이 반드시 필요하다. 똑같은 일을 반복해서 하면 능률도 창의성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휴식년제를 도입함으로써 일자리 숨통도 좀 트일 수 있을 것이고,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면 각종 질병이나 자살률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삶의 질이 향상되는 것 아니겠는가.

배움을 즐기는 여가시간
 
 살아갈 힘을 주는 나만의 휴식 오티움 책 표지
ⓒ 위즈덤하우스
  
라틴어 '오티움 ótĭum'은 배움을 즐기는 여가시간을 의미한다. 단순한 휴식을 넘어 자신을 재창조하며 내적 기쁨을 주는 능동적 여가 활동을 말한다. 작가는 휴식년을 거치면서 사람은 본래 완벽하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생을 살아가면서 오티움을 통해 사람으로 거듭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사람들에게 직장생활이 밥벌이를 위한 경제활동이라면, 여가의 시간이야말로 행복, 기쁨, 창조성, 몰입, 알아차림, 자존감 등 수많은 긍정적 심리 자원을 길러내는 삶의 터전임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여가를 외면하고 엉뚱한 곳에서 자아를 찾으려고 한다. 모든 게 불확실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서 스스로 만들어내는 작은 기쁨이 있다면 그래도 삶은 살 만하지 않을까.
 
대부분의 사람은 삶을 마치 경주라고 생각하는 듯해요. 목적지에 빨리 도달하려고 헉헉거리며 달리는 동안 주변에 있는 아름다운 경치는 모두 놓쳐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경주가 끝날 때쯤엔 자기가 너무 늙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 진 웹스터의 〈키다리 아저씨〉중에서

당신은 어떤 활동을 할 때 영혼의 기쁨을 느끼는가? 작가는 행복의 핵심이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고 보는 유심론적 태도를 경계한다. 행복은 좋은 경험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 시간에 온전히 몰두할 수 있고, 기쁨과 같은 좋은 감정을 안겨줄 수 있는 경험 말이다. 우리가 행복하려면 좋은 경험을 찾아내고 이를 늘려가는 게 중요하다.

행복은 기본적으로 기쁘고, 기다려지고, 하고 싶은 것이어야 한다. 아이들이 어른보다 행복한 건 잘 놀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행복을 신비의 영역으로 끌고 갈 뿐이다. 우리는 '잘 놀 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행복은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유다이모니아eudaimonia'를 행복이라고 이야기했다. '목적 지향적 행복eudemonics'이다. 주색잡기, 약물, 오락, 게임, 쇼핑, 음식 등과 같이 중독성이 있는 순간적인 쾌락이 아니라 자신의 잠재력을 행동과 통합시켜 자아를 최대로 발휘하는 상태를 말한다. 자신의 능력이나 자질을 갈고닦을 때 느껴지는 기분 좋은 만족감을 말하는 것이다.

나를 지키는 여가생활은 무엇이 있는가. 베이비부머들이 대부분 그렇듯 평생을 직장생활만 하다가 막상 퇴직하니 막막했다. 마음대로 여행이나 하면서 살려고 했는데,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나니 여행만 계속 다닐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경제적인 부담도 컸지만, 장기간 집을 비워놓고 다른 곳에서 산다는 게 제일 불편한 일이었다.

퇴직한 친구들을 보니 이제 알겠다 

퇴직하고 1년을 캠핑도 하고, 공부도 하고, 책도 읽고 참 열심히 살았다. 틈틈이 수채화도 배우고, 하모니카 연주도 하고, 몸 관리를 위한 걷기운동도 하면서 나를 지키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그러나 작가가 말하는 내게 행복과 선한 영향력을 주는 여가생활을 찾진 못하고 있다. 나를 기쁘게 하는 일들이 없지는 않으나, 의욕과 열정이 뒤따르지 않아 인플루언서가 되진 못하겠다.

그나마 1년간의 해외 봉사활동이 나를 온전히 돌아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 돼준 것 같다. 지금 인생의 가을쯤에 와 있지만 나는 살면서 더 성숙해질 것이며, 삶을 더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남은 인생을 더 행복하고 충만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주변에 퇴직한 친구들을 보면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 아직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퇴직하고도 다시 일자리를 찾아 나선 친구들이 절반이 넘는다. 나머지는 그냥저냥 지내며 종종 골프나 여행으로 무료함을 달래는 듯하다. 시골에 터전이 있어 농사를 거들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중년의 위기를 잘 넘어서는 이들은, 삶의 외부를 꾸미는 것으로부터 벗어나 삶의 내부를 가꾸는 데 치중하는 이들이었다. 그들에게 여가는 삶의 정원이고, 그들은 인생의 정원사다. 각자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정원으로 인해 삶의 고단함을 위로받고 삶의 기쁨을 맛보고 있다.

나의 정원은 어떤가? 100세 시대에 남은 생을 내 삶의 정원에 좋아하는 꽃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고 싶다. 이 세상에 내가 길러낸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들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다. 그것이 바로 오티움이 가져다주는 행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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