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보다 연봉 높았지만 제가 퇴사했습니다

남지영 2023. 11. 6. 13:4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평] 클라우디아 골딘의 <커리어 그리고 가정> 과 '탐욕스런 일자리'

[남지영 기자]

 수없이 인덱스를 붙인 <커리어 그리고 가정>. 정확히 우리 집에 20년 동안 일어난 일을 연구 결과로 증명해서 보여주는 책이었습니다.
ⓒ 생각의힘
 
저는 서울 서대문구의 독립 서점인 '밤의서점'에서 폭풍의점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최근 서점 소식지를 통해 소개한 책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려 이 글을 씁니다('밤의서점'에는 두 명의 점장이 있는데 그 중 제가 '폭풍의점장'이고, 다른 한 명은 '밤의점장'으로 불립니다).

처음 이 책을 집어든 뒤 저는 앉은 자리에서 바로 다 읽어버렸습니다. 멈출 수가 없더라고요.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와, 우리 집에서 20년 동안 일어난 일이 이 책에 정확히 나와 있네!"

책의 제목은 <커리어 그리고 가정>입니다. 하버드대 경제학과 종신교수인 클라우디아 골딘이 저자인데, 이 분은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지요. 하버드 최초의 여성 종신교수이기도 합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멋진데, 저자가 더 멋진 이유는 또 있습니다.

<커리어 그리고 가정>이라는 책 제목처럼, 여성들이 가정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노동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진화를 거쳐 왔는가를 연구하기 위해 저자가 1878년~1978년 태어난 여성들을 5개 집단으로 분류해 통시적으로 들여다봤다는 점에 있습니다(이건 미국 사례이지만, 앞서 말한 대로 한국 여성들에게도 그 기제는 똑같이 적용됩니다).

책의 부제는 '평등을 향한 여성들의 기나긴 여정'입니다. 책 띠지에는 잘 보이는 주황색으로 '2023 노벨경제학상 수상'이 쓰여 있네요.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는 그 자리에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대체, 왜, 여전히 여성은 남성보다 적게 버는가?".

읽자마자 저도 궁금했습니다. 여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은 미국에서도 우리나라에서도 남성보다 높습니다. 그런데 왜 기업 임원들 얼굴을 떠올려보면 여성이 그렇게 적은걸까요? 학업성취도 면에서도 떨어지지 않는데도요.

보통 우리는 대부분 '남성 위주의 경기장이어서', '여성이 차별 받아서' 그렇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건 대한민국에서는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2022년 KB국민은행 채용 성차별 사례 등, 실제로 채용 시 성차별이 아직도 공공연히 남아 있는 사회니까요. 그런데 그것이 핵심 원인만은 아니라고 이 연구는 말해 줍니다.

우리나라보다 구조적인 문제를 많이 해결한 선진 국가에서도 남녀 성별에 따른 임금 차이는 여전합니다. 저자는 그 이유가 '온콜(on-call)'과 '시간'의 문제라고 밝혀내고 있습니다. 이 연구가 규명하려고 한 문제인 성별 소득 격차의 근본 원인을 찾기 위해, 저자는 연구의 대상을 대졸 유자녀 기혼 여성으로 잡았습니다. 또 백인 여성을 기본값으로 말하고 있습니다(사실 이 부분에 비판이 있기도 한데, 저는 인종이나 나라별 후속 연구는 따로 진행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온콜', 5분 대기조는 왜 항상 여성인 걸까

여기서 '온콜'이란 한마디로, 가정과 자녀 문제에 있어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항상 대기 상태에 있을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부 중 누군가는 가정의 '온콜' 상태여야 하는데 결과적으로는 그 일을 항상 '여성'이 맡게 된다는 말이죠(관련 기사: 30대 부부들의 흔한 일상... 그 전화는 왜 아내가 받아야 할까 https://omn.kr/265c6 ).

둘 다 온콜 상태에 있다는 얘기는 둘 다 '시간적으로 유연한' 직장을 가져야 한다는 말인데, 그러면 소위 가성비가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돈 버는 데에 더 올인하고 여성은 유연한 직장, 즉, 파트타임 직장이나 야근이나 잔업이 별로 없는 직장에 다니게 된다는 것이죠.
 
 유자녀 기혼 여성이 가정과 커리어를 모두 유지하고자 한다면, 태어난 아기를 장기간 안정적으로 돌보아줄 검증된 인적자원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 픽사베이
 
생각해볼까요? 유자녀 기혼 여성이 가정과 커리어를 모두 유지하고자 한다면, 신생아가 태어났을 때 이 아기를 장기간 안정적으로 돌봐줄 검증된 인적자원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일어납니다. '장기간', '안정적으로', '검증된' 이 부분을 모두 만족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제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당 근무시간이 세계적으로 높은 한국 사회에서, 야망 있는 유자녀 기혼 여성이 기업에서 성공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죠.

이 책은 일단, 재미있습니다. 성별 임금격차라는 문제가 대졸 기혼 유자녀 여성 독자에게 어필하는 주제이기 때문에 재밌기도 하지만,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연구자의 지적 여정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따라가다 보면 쾌감이 느껴집니다. 저는 책을 펼친 그 자리에서 한 챕터씩 완독해 한 번도 쉬지 않고 읽었네요. 저자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마치 범인을 찾는 탐정의 과정처럼 느껴졌거든요.

책 속의 그런 부분을 공유해 보겠습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른 친엄마의 자책, '공평성의 포기'

"성별 소득 격차 이야기에서 범인은 두 군데서 찾아야 한다. 하나는 부부가 육아의 책임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와 관련해 내리는 의사결정이다.(이자벨과 루카스 사례를 생각해 보라.) 다른 하나는 일시적으로 일터에서 유연성을 갖는 것이 야기할 금전적인 비용이다. 모든 부부에게 이 비용은 선택에서 중요한 제약 조건이 된다. 이 비용이 클수록 부부는 공평성을 포기하고, 한 명이 가정에서 책임을 떠맡는 쪽으로 결정하게 될 것이다."

"저넷 랭킨에서부터 출발한 여정을 살펴보면서 여러 혼란스러운 논의들이 명료해지자 매우 고학력인 여성도 남성만큼 커리어의 진전을 이루는 데 여전히 고전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 하나가 우리 눈앞에 명확하게 드러났다. 아동 돌봄, 노인 돌봄, 가족 돌봄을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이 떠맡아야 하는데 직장의 일은 탐욕스러운 구조여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것을 얻게 되어 있다. 그리고 아기가 있는 부부들은 젠더 역할 규범이 여전히 적용되고 있는 세계에서 나름의 최적화를 위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 책을 읽고 저는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후회하시며 자책하셨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내용인즉슨, 당신이 똑똑한 딸을 자신이 제대로 지원을 해주지 않아서 이렇게 살게(?) 만들었다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현재 제 생활에 만족하고 있고 어떻게든 분투하며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지만, 과거 회사를 그만둘 때에는 정확히 저자가 말한 '비용에 따른 공평성의 포기' 기제가 작동한 것이 맞습니다. 

즉 지금의 저는, 당시 결정에 따라 공평성을 포기한 뒤 산물인 거죠. 제가 회사를 관둘까 고민하던 시기 남편의 연봉은 저보다도 낮았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저보다는 남편이 연봉상승률이 더 높은 직종에 있었기에, 결국 제가 아닌 남편의 커리어만 살아남았습니다.
 
 과거 회사를 그만둘 때 저는 정확히 저자가 말한 '비용에 따른 공평성의 포기' 기제가 작동한 것이 맞습니다. 당시 남편의 연봉은 저보다도 낮았지만, 남편이 연봉상승률이 더 높은 직종에 있었기에 결국 남편만 살아남았습니다. <커리어 그리고 가정> 책에선 이를 '탐욕스런 일자리'라고 부릅니다.
ⓒ 픽사베이
 
이 책에서는 그런 직종을 '탐욕스런 일자리'라고 부릅니다. '탐욕스런 일자리'는 시간을 더 많이 투여할수록 돈을 '더 버는' 게 아니라 '훨씬 더 많이 버는' 일입니다. 그러나 통상의 기혼 유자녀 여성은 그런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공평성을 포기하고 주로 남편이 그 자리에 남습니다.

이렇게 한 번 돌봄 노동으로 가정으로 들어온 여성은, 거의 높은 확률로 계속 돌봄 노동을 떠맡게 됩니다. 아이를 돌보고 늙어가는 양가 부모님들을 돌보는 데에 차례차례 투입됩니다. 이 문제는 개인적인 것 같아 보이지만 실은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아기만 좀 크면 꼭 현업에 복귀해야지' 하면서 커리어를 누덕누덕 이어가고 있던 과거의 야망 있던 대졸 여성인 저. 그런 저는 아이 돌봄양육 뒤 차례 차례 몰아치는 돌봄 노동에 발목이 잡혔고, 나이가 들어가는 지금은 이렇게 말합니다.

'미뤄둔 꿈을 이루려면 오래 사는 수밖에 없겠군. 아마 136살 정도까지만 살면 만회할 수도 있을 거야.'

그러나 그러는 사이, '일하는 기계'로 특화되어 커리어 정점을 찍은 남편은 자녀들과 친해지지도 못한 채 병이 나기 시작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다시 아내는 돌봄노동에 투입돼 배우자를 돌봐야 합니다. 과연 그녀가 136세까지 살면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취업 준비생 모두가 선망하는 탐욕스러운 일자리는, 물질적 풍요는 주겠지만 남녀 모두에게 해로울 지도 모릅니다.

자, 이것이 가정과 커리어를 지키고자 분투해오던 대졸 유자녀 여성의 결혼지옥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시스템을 바꾸고자 사회는 노력해 왔습니다, 비록 여성들에게 그 변화는 정말 더디게 느껴지지만요.

저는 우울한 전망을 말했지만 이 책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코로나 시기 재택 업무의 가능성과 필요를 확인했으므로, 이제 앞서 말한 '탐욕스러운 일자리'를 시간 유연성이 있는 일자리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노동과 돌봄의 시스템을 바꿔야 남녀 모두 행복한 사회로 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덧붙여, 저자는 이 불합리한 시스템에 대한 분노보다는(당연히 분노도 깔려 있지요) 100년의 역사에 걸친 여성들의 '고군분투' - 가정과 커리어를 모두 지켜 나가고자 하는 - 에 힘을 실어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읽고 나면 이런 여성의 일원이라는 게 기쁘고 마음이 웅장해집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커리어 그리고 가정>에는 제가 앞서 겪은 20년 간의 이야기가 담겨있지만, 현 시대를 사는 남녀라면 분명 공감할 부분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책에 대해선 정말로 할 말이 많기에, 향후 서점 독자분들과 함께 책모임을 해야 될 것 같은 생각도 드네요. 모든 분들께 '강추'합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밤의서점 독자 소식지 <나이트북스소사이어티> 175호에도 실렸습니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동네서점 ‘밤의서점’은 곧 이화여대 인근 대신동으로 이전 예정입니다. 책모임 등 서점 근황은 인스타그램(@librairie_de_nuit)과 트위터(@librairie_nuit)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