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부쟁이가 건네는 말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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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생김새가 비슷한 구절초나 벌개미취, 감국 등은 산야초로 분류되는데 반해 쑥부쟁이는 잡초로 취급받는다.
다른 꽃들이 지고 사라진 정원 한편에서, 활짝 핀 쑥부쟁이가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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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상 기자]
계절은 때마다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지나간 계절은 찬란한 빛깔과 향긋한 내음을 선사했다. 긴 겨울 지나 나어린 봄꽃은 얼마나 큰 탄성을 자아냈던가. 풍성한 햇볕 아래 건장한 여름꽃은 지천으로 향연을 펼쳤다. 초가을에도 온기는 남아 꽃들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찬 기운 내려앉는 요즘, 보랏빛 쑥부쟁이가 활짝 피었다. 원래 가을꽃 중에서도 가장 늦게 피는 녀석이다. 우리나라 각처의 산과 들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꽃인데 서리에 강해서 깊은 가을까지 계속 꽃을 피운다. 노지 월동도 잘하고, 척박한 땅도 아랑곳하지 않아 가꾸는 데 큰 수고가 필요 없다.
쑥부쟁이는 잎이 쑥을 닮은 데다 줄기가 부지깽이처럼 가늘고 검어 붙은 이름이라 한다. 이른 봄에 어린싹을 채취해 나물로 먹고, 꽃은 녹차나 모과차에 띄워 은은한 향을 즐기기도 한다. 다양한 질병을 치료하는 약초로 쓰이는데 특히 알레르기와 비만에 효능이 있다고 소개되고 있다.
그럼에도 생김새가 비슷한 구절초나 벌개미취, 감국 등은 산야초로 분류되는데 반해 쑥부쟁이는 잡초로 취급받는다. 놀라운 번식력으로 다른 식물들의 성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운 빛깔과 앙증맞은 꽃잎을 지녀 관상 가치를 높이 사기도 한다.
▲ 뒤뜰에 핀 쑥부쟁이 |
ⓒ 김은상 |
오는 11월 8일, 내일 모레가 입동이다. 절기에 맞춰 꽃에 대한 기대도 꺾인다. 하지만 잊힌 계절에도 꽃이 핀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인가? 쑥부쟁이는 세상 모든 꽃들이 같은 계절에 피지 않음을 알려주고 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지금, 어쩌면 이제 곧 당신이라는 꽃이 필 계절이 올지도 모른다.
마리야 이바시키나(Maria Ivashkina)는 그림책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에서 '에스프리 드 레스칼리에'(esprit de l'escalier)라는 프랑스 단어를 소개한다. 직역하면 '계단에서의 생각'이다. 자리를 파하고 계단을 내려오다가 "아까 그렇게 말할 걸!"하고 이마를 치는 순간을 말한다.
그러나 지나간 시간을 곱씹어봐야 돌이킬 수 없다. 현재의 내 발목을 잡을 뿐이다. 흔히들 내 능력을 일찍 꽃피우지 못했다고 실망한다. 남들과 같은 시기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해 낙담한다. 잃어버린 기회와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두려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은 식어버린 '라떼'(나 때는)만 곱씹는다.
다른 꽃들이 지고 사라진 정원 한편에서, 활짝 핀 쑥부쟁이가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한다. '조금만 젊었더라면' 혹은 '그때로 돌아간다면'하고 회한에 젖을수록 '지금'은 점점 더 멀어진다며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과거를 묻지 마세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 화양연화(花樣年華)는 지금부터라니까?"
아무래도 싹이 안보인다고? 혹시 모른다. 당신은 원래 꽃이 아니라 이 계절에 빨간 열매 주렁주렁 열리는 남천, 달꿩나무, 낙상홍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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