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학교가 공립학교로 바뀐 사연

정만진 2023. 11. 6.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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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옥장학회, 2023학년도 장학금 수여식 및 전기 발간

[정만진 기자]

 금옥장학회 2003학년도 장학금 수여식(2023.11.4. 대구교대)
ⓒ 금옥장학회
 
지난 11월 4일 10시 대구교육대학교 인문관에서 금옥장학회(이사장 심원필) 장학금 수여식이 열렸다. 이날 대구 시내 고등학생 75명은 1인당 50만 원씩의 장학금을 받고, 정기숙 계명대 명예교수와 홍우흠 영남대 명예교수의 격려를 받았다.

금옥장학회는 1979년 창립 이래 45년 동안 모두 9255명의 학생에게 총액 30억 30만 5천 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1979년은 금옥여중·고 설립자 백금옥 여사가 타계한 연도이다(금옥여중은 2002년 남녀 공학 금옥중학교로 바뀌었다).

금옥중·여고는 서울에 있는 공립학교인데 설립자가 개인이라는 점이 몹시 궁금하게 여겨졌다. 장학금 수여식 때 배부된 백금옥 전기 <참사람 백금옥>을 꼼꼼하게 읽어보았다. 
 
 <참사람 백금옥> 표지
ⓒ 금옥장학회
 
학교를 세워서 국가에 기부한 백금옥

1978년 당시 백금옥 여사는 학교 부지가 3만 3001㎡나 되는 금옥여중·고 설립에 착수했다.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 5학년밖에 못 다닌 평생의 한을 기부 행위로 갚으려는 선한 마음의 발로였다. 하지만 학교 설립 인가가 난 지 6개월 만에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고, 그로부터 다시 6개월 뒤 학교 개교도 못 본 채 타계하고 말았다.

백금옥 여사는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 삶을 앞두고 "내가 죽고 나면 학교를 국가에 기부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래서 1981년에 개교한 사립 금옥여중·고가 1982년에 공립 금옥여중·고로 바뀐 것이었다.

백금옥 여사의 생애를 요약해서 소개드립니다

백금옥은 1918년 1월 1일 대구 대신동에서 아버지 백경철(白慶喆)과 어머니 박분이(朴紛伊)의 맏딸로 출생했다. 1922년 겨우 4세 때 아버지 백경철이 세상을 떠나고,  아무 재산도 없는 상태였으므로 어머니 박씨 부인 혼자서 삯바느질로 세 딸의 생계를 책임지게 되었다.

1924년(6세) 어머니 박분이의 자녀교육열 덕분에 보통학교(현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1929년(11세) 어머니 박분이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져서 가정 경제를 꾸려갈 사람이 없어졌다. 맏딸인 금옥이 학교를 5학년에서 중퇴하고 사과 행상 등 장사를 시작했다. 이때부터 가난한 집 아이들을 무상으로 공부시킬 수 있는 학교 설립을 꿈꾸었다.
 
 초등학교를 5학년 중퇴하고, 길에서 과일을 팔고 있는 11세 백금옥
ⓒ 금옥장학회
 
1931(13세)∼1935년(17세) 일본인이 경영하던 대구 일신당백화점에 취업해서 회사 생활도 하고, 당구장 직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임파선 결핵(속칭 연주나래)으로 수술을 받게 되면서 저축했던 돈을 모두 치료비로 쓰고 큰 빚까지 지게 되었다.

1936년(19세) 작은 식당을 차렸다. 맛, 친절, 값 등에서 호평을 받아 대구의 유명 식당으로 성장했다. 1941년(23세) 대구 대신동 153번지 한옥을 구입해 가족이 처음으로 '내 집'에서 살 수 있었다. 결혼하라는 어머니의 권유가 이어졌지만 "어머니와 평생 살겠다"는 대답만 계속해서 되풀이했다. 

학교 설립을 꿈꾸며 결혼도 하지 않은 백금옥

1942년(24세) 대구 서문시장에 해산물 매장을 차려 식당과 함께 운영하고, 1945년(27세) 양곡 도매상도 차렸다. 1954년(36세) 식당 경영을 그만두었는데, 어머니 박분이가 식당 판매한 돈을 학교 설립 기금으로 쓰라는 유언을 남기고 별세했다.

1958년(40세) 서울 종로구 관철동 11-24번지로 이사해서 1979년 타계할 때까지 21년 동안 이 집에서 거주했다. 1958(40세)∼1979년(61세) 사이 20여 년 동안 부동산 대여업, 주식 투자 등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

1975년(57세) 민관식 문교부장관(현 교육부장관)을 방문해 학교 설립 계획을 밝혔다. 1978년(60세) 1월 31일 박정희 대통령에게 학교 설립 희망 진정서를 제출했고, 4월 29일 학교법인 금옥여중·고 설립 허가를 받았다.

5월, 대구 법성사에 모셔져 있는 어머니 영정 아래에서 학교 설립을 보고 드리고,  금옥장학회 설립 구상을 발표했다. 그러나 6개월 뒤인 11월 13일 간암 말기 판정이 내려져 서울대학교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6개월 시한부 인생 판정을 받아 병원에서 학교 설립을 지휘하게 된 백금옥 여사
ⓒ 금옥장학회
 
1979년(61세) 2월 21일 금옥여중·고 기공식이 있었다. 백금옥은 이때 이미 죽음을 눈앞에 둔 시점이었지만 평생 소망이던 학교 설립의 첫 삽을 뜨는 일이라 기쁘게 참석했다. (《참사람 백금옥》 중 기공식 때 백금옥 여사의 발언 부분을 아래에 소개합니다.)

"저는 보통학교 5학년을 중퇴한 것이 학력의 전부인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 가난으로 말미암아 배우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학교 설립의 꿈 실현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습니다. 학교 설립은 또 저와 평생을 함께하신 홀어머니의 유훈이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구두쇠라느니, 돈 모으는 일밖에 모른다느니, 여러 좋지 않은 말을 들으면서도 입는 것, 먹는 것까지 절약하였는데, 드디어 그 소망을 이룰 수 있는 첫 발을 오늘 당당하게 내딛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곧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금옥여자중 · 고등학교와 금옥장학회에 이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금옥학술문화재단도 설립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저의 남은 재산은 단 한 푼도 남김없이 국가와 사회에 기부됩니다.

다만 인간으로서 삶의 끝에 이루고 싶은 마지막 소망 하나가 남아 있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여러분들께서 꼭 도와주셔서 저의 최후 꿈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모두들 백금옥을 집중해서 쳐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죽음을 앞둔 사람으로서 모든 여력을 다해 간신히 말을 이어가느라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본인 스스로도 평생에 점철된 감회를 되새기느라 눈물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그것은 지켜보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이었다. 어느 누구도 꺼져가는 생명의 불꽃이 이처럼 아름답게 산화하는 광경을 일찍이 경험한 바 없었다. 게다가 백금옥의,

"여러분! 제가 죽으면 학교는 국가에 헌납되어 공립이 됩니다. 더 이상 백금옥 개인이 만든 사립학교가 아닙니다. 그래서 감히 욕심을 부리고자 합니다. 어찌 이런 욕심을 부리느냐고 꾸짖으실 분도 계시겠지만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저의 마지막 소망은 죽어서라도 아이들이 이 학교에 다니면서 해맑은 얼굴로 공부하고 뛰어노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입니다. 여러분! 저의 작은 무덤을 학교 부지 안 어느 구석에 조그맣게 만들어 주실 수 있을까요?"

라는 마지막 말은 그녀만이 아니라 참석자 모두의 마음과 얼굴을 눈물 바다에 빠뜨렸다. 모두가 눈물을 흘리면서 고개를 떨구거나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았지만, 땅도 하늘도 어쩌면 그토록 무심할 수 있는지 지금까지와 조금도 바뀌지 않은 빛깔로 사람들을 응시할 뿐이었다. '하늘도 알고 땅도 안다'고 했는데 어찌 천지는 이렇게나 천하태평이란 말인가! 그것이 슬퍼서 참석자들은 또 눈물을 흘렸다.

1979년 5월 1일 (기공식을 마치고 겨우 69일째에) 백금옥은 세상을 떠났다. 학교는 1981년 1월 15일 완공을 보고 3월 5일 개교도 했지만 백금옥은 이미 고인이었으므로 그 멋진 광경을 조금도 눈에 담지 못하였다.

사람들은 고인의 마지막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학교 교정에 그녀의 무덤을 썼다. 그 후 동상도 세워 금옥여중·고 학생들이 맑고 밝게 생활하는 정경을 고인이 영원토록 지켜볼 수 있게 조치했다.

곤륜산 계곡 속에 깊이 숨긴 옥, 백금옥

이은상은 백금옥이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인 1979년 4월 그녀에게 곤계(崑溪)라는 호와 시조 '곤계송(崑溪頌)'을 지어 선물했다. 

곤륜산 계곡 속에 깊이 숨긴 옥이러니
나타나 햇빛 아래 그 모습 눈부시다
받들어 만인의 보배로 길이 지니오리다

이은상은 이때 "곤륜산은 아시아에서 가장 큰 산맥의 하나로써 예로부터 옥이 나오는 산이라 하여 수많은 이들이 예찬의 시를 읊은 곳이다. 그래서 옥같이 귀한 인물을 곤륜의 옥이라 칭송해 왔거니와, 백금옥 여사야말로 옥 같은 여성으로서 옥 같은 뜻을 지닌 분이므로 옥을 산출하는 곤륜산 계곡에 비길 수 있어 곤계(崑溪)의 아호를 드립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1987년 처음 발간된 이래 약간씩의 수정을 거쳐 새로 나온 <참사람 백금옥>을 모두 읽은 뒤 진심으로 그녀의 명복을 빌어본다. 백금옥, 보기드문 '참사람'이다.  그녀를 닮은 사람이 많아질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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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참사람 백금옥>(금옥장학회)는 1987년 첫 발간 이래 2023년 11월 3일 세 번째로 발간되었으며, 비매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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