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우먼톡]임신중지 입법 공백‥여성 건강권 지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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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부터 형법에 자리하던 낙태죄가 2019년 4월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았다.
의료 현장도 입법 공백으로 인한 혼란을 호소하고, 임신 중지 시술 비용 문제로 곤란을 겪는 여성들도 있다.
합법적 임신 중지 기간에 대한 견해 차이가 커서 쉽게 합의가 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여성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 여성·민생 문제를 이토록 오래 내버려 둘 것이라고도 예상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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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부터 형법에 자리하던 낙태죄가 2019년 4월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았다. 무려 66년 만의 일이었다. 여성들에겐 호주제만큼이나 강력했던 전근대적 규정이 또 하나 풀린 셈이었다. 그런데 빠른 후속 입법으로 법령이 제·개정됐던 호주제 폐지와는 달리, 낙태죄 폐지 후속 입법은 4년 반이 지난 현재까지도 일말의 진전이 없다. 헌법재판소가 주문한 입법 시한 2020년 12월31일도 오래전에 지났다.
이로 인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는 유산유도제가 인터넷상에 불법으로 홍보, 유통되면서 여성의 건강권이 침해받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법의 공백 속에서 미프진으로 여성을 도와주던 국제 민간단체 사이트가 국가에 의해 차단당한 상태이기도 하다. 미프진은 세계보건기구(WHO)가 핵심 필수의약품으로 인정하고 95개국에서 합법적으로 허가받은 약물이다. 의료 현장도 입법 공백으로 인한 혼란을 호소하고, 임신 중지 시술 비용 문제로 곤란을 겪는 여성들도 있다. 그럼에도 국회와 정부는 무법의 상태를 내버려 둔 채 여성 개인들이 감당하도록 하고 있다. 헌법불합치 판결 직후 국회에서는 형법과 모자보건법을 개정하기 위해 토론회, 간담회가 열리고 이를 토대로 여러 성격의 법안들이 제안되긴 했지만, 법제사법위원회, 보건복지위원회 모두 답보 상태다. 합법적 임신 중지 기간에 대한 견해 차이가 커서 쉽게 합의가 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여성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 여성·민생 문제를 이토록 오래 내버려 둘 것이라고도 예상치 못했다. 다만 지난 9월 보건복지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있었던 현실적인 논의, 즉 약물 이용과 상담 지원만이라도 우선 처리하자는 의견을 한줄기 가능성으로 기대하고 있다.
논의의 진전을 위해서는 앞서 오랜 길을 걸어 온 여러 나라들, 특히 프랑스를 참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프랑스는 합계출산율이 1.8로 높은 편에 속한 나라면서 동시에 임신 12주까지는 여성들이 조건 없이 자유로운 결정을 할 수 있는 나라다. 1974년 프랑스 보건부 장관으로 일했던 시몬 베유의 저서 ‘국가가 아닌 여성이 결정해야 합니다’에서 잘 알 수 있듯이 프랑스는 자기 결정권 보장 관점에서 40년 넘는 기간에 걸쳐 일관되게 법 개정을 해왔다. 1975년 임신 중지 허용 5년 한시법으로 시작해 1988년 임신 중지 약물인 미페프리스톤(RU 486)이 시판 허가됐고, 이후 임신 중지 수술비가 보험 처리됐다. 국가가 임신 중지 웹사이트를 개설해 바른 정보를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서 임신 중지를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 엄격하게 처벌하는 규정까지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또 최근 보도에 따르면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임신을 중지할 자유에 관한 헌법 개정안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나라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외국의 좋은 입법례들을 한꺼번에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입법 지연으로 인해 국가가 여성의 건강권을 침해하고 있는 현 상황은 빨리 정리될 필요가 있다. 총선 전에 남은 정기국회 기간 내에 헌법재판소의 판결 내용을 기준으로 삼아 한조각의 입법 성과라도 여성들 앞에 내놓아야 한다.
내년 4월10일은 새 국회 구성을 위해 투표하는 날이다. 여성 투표율은 상승 추세고, 50대 이하 여성의 투표율은 남성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다. 여성들은 이제 자신들의 요구를 투표로 말한다. 여성들의 건강권 요구에 귀 기울일 때 여성들의 표가 응답할 것이다,
차인순 배재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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