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방화범에 맞선 소방관들의 사투, 이게 아쉽다

양형석 2023. 11. 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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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재난 스릴러 <리베라 메>

[양형석 기자]

헤비급 최초로 3차 방어에 성공한 UFC 전 헤비급 챔피언 스티페 미오치치는 2021년 프란시스 은가누와의 경기를 끝으로 2년 넘게 옥타곤에 오르지 않았음에도 여전히 헤비급을 대표하는 인기 파이터 중 한 명이다. 미오치치는 레슬링과 타격이 적절히 조화된 뛰어난 실력과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던 깨끗한 사생활의 소유자지만 미오치치가 격투팬들의 존경을 받는 결정적인 이유는 그의 또 다른 직업이 바로 '소방관'이기 때문이다.

소방관은 세계적으로 가장 존경 받는 직업군 중 하나다. 특히 미국에서 소방관들은 임금과 수당이 높고 사회적으로도 명예로운 직업이라 배우자로서 인기도 무척 높다.

한국에서는 소방관들이 그저 공무원의 한 종류로만 인식될 때도 있지만 한국의 소방관들 역시 세계 그 어느 나라의 소방관들 못지 않게 시민의 안전을 위해 많은 일을 한다. 그리고 지난 2000년에는 어린 시절에 당한 학대로 세상을 불태우려는 야욕을 갖게 된 연쇄방화범과 이에 맞선 소방관들의 사투를 그린 한국영화가 개봉했다. 최민수와 차승원, 유지태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화제가 했던 양윤호 감독의 <리베라 메>였다.
 
 유지태는 영화의 포스터를 장식했음에도 중·후반부에 허무하게 생을 마감한다.
ⓒ (주)시네마서비스
 
'현실 히어로' 소방관이 나오는 한국영화들

할리우드에서는 1975년 아카데미 영화제 3개 부문을 휩쓸었던 <타워링>과 1992년 아카데미 시상식 3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분노의 역류>, 호아킨 피닉스가 출연했던 <래더49> 등 소방관들이 등장하는 재난영화들이 꾸준히 만들어졌다. 

지금은 스타배우가 된 여진구의 영화 데뷔작이기도 한 2005년에 개봉한 옴니버스 영화 <새드무비>는 정우성과 임수정, 차태현, 염정아, 신민아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새드무비>에서 정우성이 연기한 이진우의 직업이 바로 소방관이었다. 물론 제목처럼 <새드무비>는 슬픈 결말로 막을 내리지만 극장을 찾은 여성 관객들은 영화의 결말과는 별개로 "세상에서 가장 잘 생긴 소방관을 봤다"며 만족했다는 후문이 있었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한 한국영화 중에도 소방관이 등장하는 작품이 있다. 지난 2009년 쓰나미를 소재로 전국 1145만 관객을 동원했던 윤제균 감독의 <해운대>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해운대>에서는 주인공 만식(설경구 분)의 동생 형식(이민기 분)의 직업이 바로 수상구조 업무를 주로 담당하는 소방관이었다. 서울에서 온 희미(강예원 분)와 러브라인이 있었던 형식은 폭풍우 속에서 희미를 구조하고 망망대해로 빠진다.

한국영화에서는 멜로 장르의 영화에서도 소방관들이 등장하고 소방서가 주요배경으로 나오기도 했다. 2012년 12월에 개봉해 247만 관객을 동원했던 정기훈 감독의 <반창꼬>였다. <반창꼬>는 의료사고를 저지르며 119 구조대 의용대원으로 오게 된 의사 미수(한효주 분)가 아내를 구하지 못한 상처를 안고 있는 소방관 강일(고수 분)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그린 멜로 영화다. <반창꼬>는 2012년 연말 '데이트 무비'로 연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소방관과 의사의 썸과 사랑을 담은 멜로영화 <반창꼬>가 개봉했던 2012년 겨울에는 소방관이 등장한 또 한 편의 영화가 또 개봉했다. 바로 소방관의 본분에 충실한 재난 어드벤처 영화 <타워>였다. 설경구가 여의도소방서의 119구조대장 강영기를 연기했고 안성기가 소방관들을 지휘하는 센터장 역을 맡았다. 그 밖에 손예진과 김상경 같은 유명배우들도 출연했지만 재난영화라는 점이 강조되면서 이들의 출연 사실은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화려한 캐스팅과 큰 스케일의 재난 스릴러
 
 완성도의 아쉬움과 별개로 소방관 역을 맡은 배우들은 실전을 방불케 하는 혼신의 연기를 선보였다.
ⓒ (주)시네마서비스
 
1996년 박신양 주연의 불교영화 <유리>로 데뷔한 양윤호 감독은 1997년 김혜수,김호진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미스터 콘돔>을 만들었고 1998년에는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짱>을 연출했다. 1999년 발렌타인 데이를 겨냥한 멜로영화 <화이트 발렌타인>을 선보였을 때만 해도 양윤호 감독이 '파이어 블록버스터'를 표방한 재난영화를 만들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양윤호 감독은 2009년 KBS드라마 <아이리스>를 연출하기도 했다).

<리베라 메>는 어린 시절 아동학대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던 여희수(차승원 분)가 누나의 몸에 불을 붙여 살해했다는 혐의로 12년 간 수감됐다가 출소 후 연쇄방화범이 된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화재현장에서 동생 인수(허준호 분)를 잃은 후 죄책감을 안고 살아온 소방관 상우(최민수 분)는 시내 곳곳에서 터지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우연이 아님을 감지하고 희수를 잡기 위해 발 벗고 뛰어든다.

<리베라 메>는 당시 한국영화로서는 상당히 높은 45억 원의 제작비를 투입했고 할리우드 영화 <분노의 역류>를 만들었던 특수효과 팀의 도움을 받아 실감나는 화재장면을 연출했다. 물론 특수효과와 CG, 촬영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2023년 기준으로 보면 다소 어설프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당시 <리베라 메>에서 보여준 화재 및 폭발 장면은 그동안 한국영화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큰 스케일이었다. 

하지만 <리베라 메>는 스케일 큰 몇몇 화재 장면을 제외하면 액션 스릴러 영화로서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 중반까지 소방대원들의 고충과 화재진압장면에 집중하던 영화는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여희수와 조상우의 대결구도로 바뀌어 버린다. 영화의 색깔과 진행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면서 영화 중간 양윤호 감독이 넣고 싶었을 것으로 보이는 소방관들의 처우에 대한 사회적 메시지는 관객들에게 크게 와닿지 않았다. 

<주유소 습격사건> 배우들 대거 출연
 
 정준은 <주유소 습격사건>의 아르바이트생에 이어 <리베라 메>에서도 소방관 이준성 역으로 출연했다.
ⓒ (주)시네마서비스
 
1990년대 중반부터 한석규와 박신양, 최민식, 송강호, 설경구 같은 '연기괴물'들이 차례로 등장하면서 입지가 다소 좁아졌지만 최민수는 2000년대 초반까지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던 최고의 배우 중 한 명이었다. 봉준호, 장준환 감독이 각본에 참여한 <유령>으로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최민수는 <리베라 메>를 통해 2001년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1998년 영화 <바이준>으로 데뷔해 이듬 해 <주유소 습격사건>의 뻬인트 역으로 흥행배우가 된 유지태는 2000년에만 세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자신의 시대가 열렸음을 알렸다. 5월에 개봉한 <동감>은 작년 서은영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됐고 여름에는 안병기 감독의 호러영화 <가위>에서는 조연으로 출연했다. 그리고 11월에는 <리베라 메>에서 젊은 소방관 현태를 연기했는데 영화 중반 여희수의 함정에 걸려 다소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다.

배우 김규리는 <리베라 메>에서 소방대 소속으로 화재의 원인을 조사하는 조사원 현민성 역을 맡았는데 그나마 히로인 포지션에 있는 여성배우로 영화 후반 여희수에 의해 납치된다.

1999년에 개봉했던 <주유소 습격사건>과 같은 시네마서비스에서 배급한 <리베라 메>에는 <주유소 습격사건> 출연 배우가 상당수 출연했다. 차승원은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폭주청년 역할로 나왔고 유지태는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뻬인트를 연기했다. <리베라 메>에서 소방대원으로 출연한 정준과 김수로도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주유소 알바와 중국집 배달직원으로 출연해 관객들에게 웃음을 안긴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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