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수에게 유독 진하게 남은 '너와 나' [D:인터뷰]
박혜수가 2020년 '삼진그룹 영어 토익반' 이후 3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2021년 2월 학교 폭력(학폭) 논란에 휩싸였고 혐의를 부인했지만 활동을 중단했다. 그렇게 3년 만에 '너와 나'라는 영화로 돌아오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
자신에게 계속 '학폭 논란'이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겠지만, 자신의 삶의 일부분으로 생각하고 나아가겠다는 다짐이다. 현재 학폭 사건은 박혜수가 피해를 주장한 A 씨를 허위사실 적시해 명예훼손 혐의, 손해배상 청구로 고소한 상태다.
'너와 나'는 영화는 서로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마음속에 담은 채 꿈결 같은 하루를 보내는 고등학생 세미(박혜수 분)와 하은(김시은 분)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영화에는 표면적으로 여고생들의 사랑을 담았지만 2014년 일어난 세월호 사건에 대한 애도가 은유적으로 가득 담겼다. 박혜수가 주연인 만큼 '너와 나'는 영화 자체보다 박혜수의 복귀작으로도 관심을 끌었다.
조현철 감독은 남들의 시선과 구설보다는 자신이 경험한 박혜수를 믿기로 결정하고, '너와 나'를 박혜수와 함께 완성시켰다. 이에 박혜수는 어느 때보다 작품 속 세미가 돼 관객들에게 다가가야겠다는 각오가 컸다.
"조현철 선배님이 연기하는 걸 볼 뿐,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어요. '너와 나'라는 작품을 통해 서로 잘 알 수 있는 계기가 됐죠. 처음 만났을 때도 사실 말씀이 거의 없으셨어요. 영화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PD님이 대답해 주셨죠. 점점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정말 섬세한 분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이 작품에 참여하기로 한 이상, 조현철 감독님이 이 작품에 녹여낸 고민의 흔적들을, 배우로 손상시키지 않고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박혜수는 '너와 나'의 매력이 각자의 해석에 따라 과정과 결말이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첫 선을 보였고, 이후 정동진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 등에 초청되며 영화가 관객을 만나 더욱 풍성해지는 경험을 했다. 박혜수도 최대한 조현철의 의도대로 이해하고 연기하기 위해 집요하게 여쭤보고 답을 찾으려 한 장면도 있지만, 일부러 자신의 해석을 남겨놓기 위해 물어보지 않은 장면도 있었다.
"아이가 웅덩이에 빠진 공룡 장난감을 구하는 장면은 누구나 다 빠르게 비극적인 사건을 연상시킬 수 있잖아요. 저는 사건에 대한 연상도 가능하지만, 개인적으로 슬퍼하는 세미가 거기 앉아있고, 카메라가 그걸 멀리 지켜보고 있잖아요. 세미의 마음에 아이의 '구했어'라는 말이 본인에게도 구원의 손길이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개인적으로 그 장면을 읽으면서 치유 받는 느낌이었거든요."
박혜수가 '너와 나'를 촬영했을 당시 나이는 스물 여덞이었다. 서른에 가까워진 나이였지만 교복이 어색하지 않았고, 말투도 여고생의 것이었다. 무엇보다 김시은이 연기한 하은과의 애정 어린 투덕거림이 자연스러워 실제 여고생을 보는 듯한 인상을 줬다.
"저와 시은이가 세미 하은 자체가 돼 촬영했었어요. 리허설을 정말 많이 해서 같이 보내는 시간도 많았고 대사를 수정해나가면서 자유롭게 대화하다 보니 세미가 저에게 입혀지고, 시은이도 하은이가 됐죠. 우리는 세미와 하은이가 돼 서로를 바라볼 수 있었어요. 사실 제가 촬영장에서 언니의 포지션 경험이 많지 않아서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시은이가 하은이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케미스트리이지 않았나 싶어요."
가장 신경 쓴 장면은 세미가 비로소 자신의 마음을 하은에게 고백하는 장면이다. 눈물 범벅이 된 채 하은을 향한 말들은 서툴지만 절절했다. 박혜수는 집중력이 많이 요구되는 장면으로 연습을 거듭하며 완성했다.
"고백 장면은 처음 대본 받았을 때부터 중요한 장면이라고 인식했어요. 세미가 짜증을 많이 내고 모나게 보일 수 있는 모습들이 하은에게 고백을 함으로써 해소가 됐어야 했거든요. 대사가 길다 보니 자다가도 뱉을 정도로 계속 연습했어요. 제가 꾸는 꿈처럼 계속 상상하면서요. 그랬더니 정말 제가 꾼 꿈처럼 대사가 나왔어요. 정말 제가 세미가 된 것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감정도 많이 올라와서 콧물도 많이 나왔어요. 코를 먹는 게 신경 쓰였지만 훌쩍거리는 게 오히려 더 괜찮다고 감독님께서 말씀해 주셨어요."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하은을 향한 질투가 서운함이 가장 드러난 장면은 노래방에서 세미가 빅마마의 '체념'을 부르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이 노래는 실제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단원고등학교 정예진 학생의 18번으로 조현철 감독이 의도한 선곡이다. 세미가 이 노래를 부르면서 감정이 고조되는 장면을 관객들이 몰입시키도록 편집하지 않고 완곡으로 넣었다.
"감정이 박차다는 감정이 이런 느낌이었지 싶었어요. 하은이를 오해하는 동안 부르는 노래로 세미의 감정만을 생각했더니 우는 장면이 탄생했어요. 세미가 너무 절절하게 하은에게 푹 빠져 노래는 하는데, 우리는 모두 내일이 어떤 날인지 알잖아요. 또 부르면서 보니 가사도 너무 슬프더라고요. 그 신을 찍을 때 박혜수의 감정과 세미의 감정은 분명히 달라서 분리되어야 하는데, 비극적인 사건을 떠올리면 너무 슬퍼서 어려웠죠. 세미로 최대한 집중해서 부르려고 했어요."
'너와 나'는 조현철 감독이 리허설을 반복하며 배우들에게 표현의 자유를 줬다. 박혜수는 이 경험을 통해 스스로 한 꺼풀 나오게 됐다고 고백했다.
"저는 그 동안 성실하지만 유연성이 부족한 배우였던 것 같아요. 정말 집요하게 준비해서 현장에 가면 현장에서 준비한 것들을 꺼내 보여주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이번 현장은 감독님께서 자유롭게 열어주셨어요. 애초에 리허설을 반복하고 저희가 마음대로 연기하게 두셨죠. 이걸 가지고 좋은 대사를 뽑아서 수정하는 방식이었어요. 저희의 입에서 나온 대사로 신을 재구성하는 과정 속에서 저의 틀을 많이 깬 것 같아요. 낯선 것들도 도전하고 생각지 않았던 것들이 문득 떠오르면 현장에서 행동으로 옮기는 등의 방식으로요."
박혜수는 이 작품이 주는 메시지 중 가장 기본적이며 관통하는 건 '사랑'이라고 해석했다. 자신도 이 작품을 찍으며 이렇게나 단단한 사랑이 자리하고 이는지 몰랐다며, 사랑을 다른 사람들과 나눠야겠다는 일종의 사명감까지 생겼다고. 그렇게 사랑을 나누게 된 실천 하나가 반려견 부와 가족이 된 일이다.
"'너와 나'를 제주도 촬영 분을 마치고 두 달 정도 혼자 남아서 떠돌아다녔어요. 그 때 유기견 봉사를 처음으로 해봤어요. 그러다가 서울에 돌아왔을 때 유기견 임시보호를 하게 됐는데, 도저히 보낼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반려견을 키우게 됐죠. 영화 찍을 때 진식이 주인의 마음을 100% 이해를 못 했는데 반려견을 키우게 되니 알겠더라고요. 어찌 사람과 사람이 하는 것만이 사랑이겠나 싶어요. 사랑의 의미를 엄청나게 확장시켜준 경험을 했습니다."
배우로서, 인간 박혜수로서 '나와 나'를 향한 애정이 각별하다. 아직도 마음 속에서 세미를 놓아주고 싶지 않지만 관객들을 만나며 보낼 채비를 하고 있다.
"'너와 나'와 이별하는 시간을 이제 가져야 할 것 같아요. 원래 작품 끝나면 빠져나오는 데 오래 걸리는 편이긴 해요. 그런데 유독 '너와 나'는 진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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