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승 후 4연패' 페퍼저축은행, 여전히 꼴찌
[양형석 기자]
정관장이 광주원정에서 페퍼저축은행을 완파하고 3위로 1라운드를 마감했다.
고희진 감독이 이끄는 정관장 레드스파크스는 5일 광주 페퍼스타디움에서 열린 도드람 2023-2024 V리그 여자부 1라운드 페퍼저축은행 AI페퍼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0(27-25,25-17,25-16)으로 승리했다. 페퍼저축은행이 창단 후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유일한 팀인 정관장은 이번 시즌 첫 맞대결에서도 페퍼저축은행에게 무실세트 승리를 거두며 현대건설 힐스테이트를 제치고 3위로 올라섰다(4승2패).
정관장은 메가왓티 퍼티위가 57.5%의 성공률로 25득점을 기록했고 지오바나 밀라나도 51.52%의 성공률로 18득점을 올리며 메가와 함께 공격을 주도했다. 공격득점이 2점에 불과했던 미들블로커 박은진은 4개의 블로킹을 잡으며 높이에서 페퍼저축은행을 압도했다. 한편 창단 후 정관장에게 단 1승도 따내지 못한 페퍼저축은행은 이번 시즌 첫 맞대결에서도 완패를 당하며 여자부 최하위(1승5패, 승점 3점)로 1라운드 일정을 마쳤다.
▲ 페퍼저축은행은 여자부 최고연봉을 안기면서 통산 5회 챔프전 우승경력을 가진 박정아를 영입했다. |
ⓒ 한국배구연맹 |
2021년 9월에 창단한 페퍼저축은행은 지난 두 시즌 동안 조금은 가혹하게 느껴지는 리그 적응기간을 거쳤다. 2021-2022 시즌 31경기에서 3승28패를 기록하며 승점 11점을 따낸 페퍼저축은행은 지난 시즌에도 36경기에서 5승31패의 성적으로 승점 14점에 그쳤다. 창단 후 두 시즌 동안 페퍼저축은행의 V리그 전적은 8승59패. 냉정하게 말해 페퍼저축은행에게 승리를 헌납하는 팀은 해당 라운드를 망쳤다고 해도 큰 과장이 아니었다.
페퍼저축은행은 지난 2년 동안 FA시장에서 미들블로커 하혜진과 세터 이고은을 영입했다. 물론 하혜진과 이고은이 백지나 다름 없었던 신생구단 페퍼저축은행의 선수구성에 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두 선수의 가세로 인해 페퍼저축은행의 성적이 크게 상승하진 않았다. 다시 말해 페퍼저축은행으로서는 창단 후 세 번째 FA시장에서 팀 전력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대형 선수를 영입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세 시즌 연속 선배 구단들의 '승리자판기'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한 페퍼저축은행의 강한 의지는 화끈한 투자로 이어졌다. 페퍼저축은행은 지난 17일 무려 네 건의 FA계약을 발표했다. 외부영입 두 명과 내부 FA계약 두 건이었다. 그 중 배구팬들의 눈을 사로 잡았던 계약은 역시 계약기간 3년, 연봉총액 7억7500만원으로 단숨에 김연경(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과 함께 V리그 여자부 최고 연봉선수로 등극한 '클러치박' 박정아였다.
IBK기업은행 알토스 시절 김희진과 함께 세 번의 챔프전 우승을 차지한 박정아는 2017년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로 이적한 후에도 여섯 시즌 동안 도로공사를 두 차례 우승으로 이끌었다. 박정아는 서브리시브에서 꾸준히 약점을 지적받고 있지만 V리그에서 '우승 청부사'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선수다. 페퍼저축은행은 박정아의 수비 약점을 메울 선수로 아웃사이드히터와 리베로를 오갈 수 있는 '살림꾼' 채선아도 함께 영입했다.
페퍼저축은행은 주장 이한비와 3년 처대 10억6000만원, 오지영 리베로와 3년 최대 10억 원에 FA계약을 체결하며 '집토끼 단속'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한비는 지난 시즌 439득점을 올리며 데뷔 후 최고의 시즌을 보냈고 시즌 중반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한 오지영 리베로도 페퍼저축은행의 리시브와 수비 약점을 상당 부분 극복해줬다. 이한비와 오지영 모두 말이 필요 없는 페퍼저축은행의 핵심 자원들로 차기 시즌 반드시 필요한 선수들이었다.
▲ 1라운드에서 페퍼저축은행은 사실상 야스민(왼쪽)의 원맨팀에 가까웠다. |
ⓒ 한국배구연맹 |
페퍼저축은행은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V리그에서 검증된 공격수 야스민 베다르트를, 아시아쿼터로는 필리핀 출신의 미들블로커 엠제이 필립스를 지명했다. 페퍼저축은행은 시즌 개막을 앞두고 중위권 판도를 흔들 수 있는 복병으로 주목 받았다. 물론 도로공사의 보상선수 이고은 지명과 이고은 재영입 트레이드 과정에서 크게 손해를 보기도 했지만 페퍼저축은행의 전력이 상승했다는 것에 대해 이견을 제기하는 배구팬은 거의 없었다.
실제로 현대건설과의 시즌 첫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1-3으로 패한 페퍼저축은행은 10월19일 도로공사를 상대한 홈 개막전에서 세트스코어 3-2 승리를 거두면서 개막 두 경기 만에 시즌 첫 승리를 따냈다. 지난 시즌 첫 승까지 18경기가 필요했었던 페퍼저축은행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시즌 첫 승을 챙긴 셈이다. 하지만 페퍼저축은행은 1라운드 일정이 모두 끝난 시점까지 아직 다음 승리를 추가하지 못했다.
10월 22일 우승후보 흥국생명에게 0-3으로 패한 페퍼저축은행은 27일 GS칼텍스 KIXX와의 홈경기에서 두 세트를 먼저 따내고도 세 세트를 내리 빼앗기며 리버스 스윕패를 당했다. 충격적인 리버스 스윕패 이후 기세가 꺾인 페퍼저축은행은 1일 기업은행을 상대로 1-3 패배를 당한 데 이어 5일 정관장에게는 0-3으로 무너졌다. 특히 정관장에는 창단 이후 V리그에서만 13연패를 당하며 지긋지긋한 천적관계가 세 시즌째 이어지고 있다.
페퍼저축은행은 이번 시즌 리시브 효율이 27.62%로 7개 구단 중 6위에 머물러 있다. 리시브가 불안하게 올라오면 세터가 좋은 토스를 올릴 수 없고 당연히 공격성공률(36.76%,7위)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페퍼저축은행은 야스민이 득점 4위(135점), 공격성공률 7위(43.12%)로 분전하고 있지만 토종 에이스 박정아의 이번 시즌 공격성공률은 30.1%에 불과하다. 주장 이한비도 박은서와 출전시간이 나뉘면서 6경기에서 31득점에 그치고 있다.
물론 이제 겨우 1라운드가 지난 시점에서 페퍼저축은행의 부진을 이야기하는 것은 다소 섣부른 게 사실이다. 하지만 페퍼저축은행은 지난 시즌에도 이런 식으로 연패가 늘어나다가 '개막 17연패'라는 불명예의 멍에를 뒤집어 쓴 바 있다. 그리고 앞으로 페퍼저축은행을 상대하는 팀은 1라운드에 드러난 약점을 더욱 집요하게 공략할 것이다. 1라운드에서 드러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조 트린지 감독의 변화와 조치가 필요한 시기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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