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의 인사이트] 유병호 체포, 안하나 못하나
[이충재 기자]
▲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10월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감사원 종합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 남소연 |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의 '표적감사' 의혹을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4번째 출석요구서에도 불응했습니다. 하지만 공수처는 유 사무총장에 대한 체포영장 청구 등 강제수사로 전환할지 여부를 두고 고심 중이지만 결론을 내지 못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일각에선 공수처가 유 사무총장이 현 정부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위상 등을 의식해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옵니다. 야권과 시민단체 등에서는 유 사무총장의 수사 무력화 의도가 노골적인만큼 신속한 강제수사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통상 수사기관은 피의자가 정당한 이유없이 2∼3차례 출석요구에 불응하면 체포영장을 청구해 강제수사에 나서는 게 일반적입니다. 유 사무총장은 공수처 출석요구에 처음에는 "국정감사 준비로 기일을 맞추기 어렵다"고 했다가 국감이 끝나자 "사무처 직원 조사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둘러댔습니다. 그러다 4번째 출석 요구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 등으로 조사에 응하기 어려우니 12월 초 출석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유 사무총장이 고의로 수사 지연 전략을 쓴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수처 수뇌부, 눈치보나
공수처는 유 사무총장의 출석 불응에 당초 "일반적인 수사절차대로 할 것"이라며 강제수사를 공언했지만 지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공수처 안팎에선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에서 기각될 경우 파장이 상당할 것이란 점을 우려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공수처는 지금까지 5건의 체포영장과 3건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모두 법원에서 기각돼 신병확보 사례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명분 뒤에는 유 사무총장이 정권의 실세인 점을 의식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공수처 수사팀 내부에서는 체포영장 청구를 주장하지만 수뇌부가 결정을 미루고 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내년 1월 임기가 끝나는 김진욱 공수처장의 교체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책임지고 중요 의사결정을 할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는 얘깁니다. 김 처장 후임자 임명 절차도 진척이 없는 상태입니다. 후임자를 추천해야 할 국회는 국감과 예산심사 등으로 아직 후보 추천위도 구성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추천위가 구성돼도 여야 의견이 달라 추천위 자체가 공전할 가능성이 큽니다.
윤 대통령이 새 공수처장을 임명하지 않고 공수처를 '수장 공백' 상태로 만들어 무력화시킬 거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최근 감사원 '표적감사' 논란과 관련해 발단이 된 제보가 대통령실을 통해 감사원에 전달됐다는 의혹이 언론에서 보도됐습니다. 공수처의 감사원 압수수색 영장에 '권익위 관계자가 전현희 위원장 관련내용을 대통령실 비서관에게 제보했고 유병호 사무총장이 이를 전달받은 뒤 감사위원회 의결없이 감사에 착수하도록 했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다는 겁니다. 이대로라면 무리한 찍어내기 감사 배후에 대통령실이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런 내용이 사실일 경우 윤 대통령이 후임 공수처장을 신속히 임명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더구나 공수처는 감사원뿐 아니라 '해병대 수사 외압'과 '대통령실 공천 개입 의혹' '김학의 봐주기 수사' 등 윤 대통령과 검찰 관련 의혹 사건을 수사하고 있습니다. 유 사무총장의 공수처 소환 불응은 이런 점을 고려한 시간끌기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김 처장이 공수처를 떠나면 감사원에 대한 수사가 흐지부지될 것이라고 믿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수처는 지금 시험대에 오른 형국입니다. 김 처장 체제에서 수사를 마무리하지 못한다면 무능 논란에 이어 또 다른 정치적 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수사기관의 정당한 수사를 우롱하다시피하는 유 사무총장을 그대로 놔두면 더 큰 권력에 굴복하는 것으로 국민에게 비쳐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 2020년 출범 이후 전혀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던 공수처가 위상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임기 내 수사를 끝내고 국민 앞에 진상을 공개하는 것이 초대 책임자인 김 처장의 의무이자 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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