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벼랑 끝' 기아차 中옌청 생산기지…EV5에 승부수
1공장선 中'하이파이' 위탁생산만
EV5 수요 늘면 1·3공장서도 생산 기대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동쪽으로 약 950km 떨어진 장쑤성 옌청. 중국 최대경제권인 장강 삼각주 내에서 '한중 경제협력'의 구심점을 역할을 하는 이 연안 도시는, 기아차가 생산기지를 조성해 고군분투 중인 전장(戰場)이기도 하다. 현지 기업 장쑤웨다그룹과의 합작법인 웨다기아를 통해 기아차는 옌청을 중심으로 중국 시장을 21년째 공략하고 있다.
지난 2일 방문한 옌청 웨다기아 3공장은 소음과 함께 제법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K5 자동차 펜더(휠을 감싸는 외부 패널)가 4초마다 하나씩 찍혀 나오고, 한쪽에는 가지런히 놓인 보닛이 조립을 기다렸다. 이곳 3공장에서는 뉴 카니발, K5, 스포티지, 페가스 등 8종의 내연차만 생산된다. 3공장은 2014년 준공돼 올해로 가동 10년 차를 맞았다.
EV5 성공하면 1공장 재가동 가능성도
2공장 이어 3공장으로 확대 전망
현장에서는 오는 17일 중국에서 판매를 시작하는 야심작, EV5의 등장을 기다리는 분위기가 엿보였다. 저우즈화 웨다기아 종합사업부장은 추후 주력 모델과 사업의 구심점으로 EV5를 언급했다. EV5는 세계 최초로 해외에서 생산되는 전기차로, 판매가격은 경쟁사인 포드의 F-150, 폭스바겐 ID.4, 토요타 bZ4X 대비 다소 낮은 15만9800~22만9800위안(약 2900만~4200만원)이다. 기자들에게는 현장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 야심작 생산 현장이 바로 옌청 3공장과 5km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2공장이다.
저우 부장은 "EV5 등 전기차 신모델 출시 등에 힘입어 올해 기아차의 중국 판매 규모를 지난해(약 13만대) 대비 40% 이상 확대할 것"이라면서 "특히 EV5 수요가 늘어 2공장 생산만으로 공급이 어려워질 경우 3공장도 전기차 제조공정을 도입해 생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객관적인 숫자를 두고 살피면 현재 상황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중국 사업 부진 여파로 3공장 가동률은 11월 현재 기준 60% 수준. 가동률을 100%까지 높이면 연간 45만대까지 생산이 가능하지만, 지난 10월 한 달 동안 생산한 차량은 1만7760대에 그친다. 월별 최대치 생산량(3만7500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하지만 EV5 성과에 따라 옌청 생산기지의 전략이 통째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 사업 부진 여파로 지난 2019년 합작법인 주주인 웨다그룹에 임대한 1공장이 대표적이다. 현장에서 확인해보니, 연간 14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춘 1공장은 현재 중국 전기차 브랜드 하이파이(가오허)의 '하이파이X', '하이파이Y' 등을 위탁생산하고 있었다. 하이파이X는 걸-윙 도어(Gull-wing door)와 최고급 음향시설을 갖춘 프리미엄급 SUV로, 최고가가 80만위안(1억4400만원)에 달한다.
흥미로운 점은 하이파이가 차량 생산 허가증이 없어, 1공장을 통해 위탁생산을 맡긴 웨다기아의 허가증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하이파이가 웨다기아의 1공장에서 생산하는 모든 차량에는 설비와 허가증의 주인 격인 '웨다기아' 마크가 좌측 하단에 찍혀 나온다.
중국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을 경우, 옌청이 수출기지로서의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게 될 가능성도 있다. 연간 30만대의 완성차를 만들 수 있는 2공장까지 합산해 옌청 내 3곳 공장의 생산능력은 연간 약 90만대에 달한다.
기아차 부진에 현대모비스도 '휘청'
2개 생산라인 중 한 곳 가동 중단하기도
옌청선 여전히 '대표기업' 반열에…투자 기대감
기아차를 비롯한 국내 자동차 기업들은 중국 시장에서 유난히 고전하고 있다. 기아차의 경우 지난해 290만대의 전기차를 판매하며 글로벌 7위에 올랐지만, 중국 내에서는 실적이 저조하다. 웨다기아에 따르면 2016년 기준 65만대에 달하던 중국 내 판매량은 2018년 37만대, 2019년 28만9300대로 급감했다. 코로나19 확산기에는 하락세에 속도가 붙어 2020년 24만9300대, 2021년 16만3400대에 이어 지난해에는 9만4300대로 곤두박질쳤다. 올해 상반기를 기준 판매량(도매 기준)은 6만대를 넘기지 못했고, 지난달엔 7600여대에 그쳤다. 이마저도(10월) 전년 대비 6.5% 개선된 것이다.
불똥은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현대모비스에도 튀었다. 현대모비스 옌청공장에서 생산되는 부품은 램프, 에어백 등 단순부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기아차에 공급해 의존도가 높다. 이를 위해 웨다기아 생산공장을 향해 부품 운송 차량을 운행하는 별도의 직통 터널을 연결했을 정도다. 기아차의 판매 부진 탓에 현대모비스는 방문 당일인 2일 2개 생산라인 중 2라인의 가동을 중단시킨 상태였다. 주제밍 현대모비스 옌청공장 생산부 부소장은 "생산량이 적기 때문에 2라인은 멈춘 상태"라면서 "내일(3일)은 다시 가동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옌청에서 웨다기아는 여전히 도시를 대표하는 기업의 반열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웨다기아의 영향력도 작지 않다. 이 회사가 중국에 법인을 설립한 후 납부한 세금만 누적 기준 520억위안을 웃돌고, 대부분 현지 인력으로 채워진 직원들도 옌청 2·3공장 합산 기준 3800여명에 달한다. 옌청 내에만 47개의 하청업체가 있고, 재하청까지 꼽으면 연관업체는 1000여곳 수준이다. 웨다기아가 쓰러지면 옌청도 연쇄 실업을 비롯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정부 차원의 기대도 상당하다. 쉬쿤린 장쑤성 성장은 지난 3일 옌청에서 열린 한중무역투자박람회에서 기아차를 언급, "한중 경제는 산업체인과 공급망이 긴밀히 연결돼있다"면서 무역 및 투자를 위해 협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우리측 대표로 이 자리에 참석한 정재호 주중한국대사는 이날 전시장 웨다기아 부스에 머물며 EV5·EV6·카니발 등을 직접 살펴보고, 판매 가격 및 시장 상황에 대해 질문하기도 했다.
옌청=김현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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