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너무 따뜻한 11월

2023. 11. 6.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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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일찍 눈을 뜬 날이었다.

날씨가 너무 따뜻했기 때문이다.

느닷없는 따뜻한 날씨 속에서 모두가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듯했다.

너무나 공포스러운 나머지 더운 날씨 속에서도 몸이 떨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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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오 시인


오랜만에 일찍 눈을 뜬 날이었다. 대충 씻고 나와 인왕산에 올랐다. 주말 아침에는 산길에도 사람이 많았다. 나무에는 단풍이 예쁘게 들어 있었지만 기이했다. 날씨가 너무 따뜻했기 때문이다. 이번 달은 1907년 이후 가장 따뜻한 11월이라고 한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온도 상승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기에 어쩌면 이번 달이 앞으로 우리가 겪을 11월 중 가장 시원한 기간인지도 모른다. 길에는 반팔 입은 사람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늦가을 풍경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모습이다. 느닷없는 따뜻한 날씨 속에서 모두가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듯했다.

몇 걸음을 걷다 나 역시 겉옷을 벗었다. 너무나 공포스러운 나머지 더운 날씨 속에서도 몸이 떨리는 듯했다. 겨울에 눈을 볼 수 있는 날이 앞으로 몇 년이나 남았을지 모르겠다. 기온이 조금 오르는 일은 인간에게는 겉옷을 벗는 정도의 온도 변화로 느껴지겠지만 자연을 이루는 미생물과 식물들에게는 당장의 수명과 직결된 거대한 사건이다. 생태계의 변화는 결국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의 변화로 이어질 것이며, 빙하가 지금의 속도로 녹아버린다면 높아진 해수면으로 인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곳도 머지않아 바다가 돼버릴 것이다.

나는 정말로 무섭다. 고기를 먹지 않고 재활용을 꼼꼼히 하고 가능한 한 걸어다니는, 환경을 위해 일상에서 내가 하고 있는 작은 노력들이 얼마나 도움이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기후 변화는 너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기후위기 활동가들이 정부와 대중의 변화와 협조를 촉구하고 있지만 관심과 지원은 아직도 부족한 형국이다. 인류의 종말은 행성 충돌처럼 갑작스럽게 모두가 죽어버리는 방식이 아니라 서서히, 약한 존재들부터 하나씩 고통받고 죽임을 당하는 형태로 찾아올 것이다.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을 계속해서 걷기 위해,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감탄하기 위해, 단지 살아 있기 위해, 이제는 정말로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김선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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