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희의 시시각각] 임영웅 콘서트에서 생긴 일
지난 주말 K팝 아이돌 팬덤이 난리가 났다.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가수 임영웅 콘서트 때문이다. 어르신을 모시고 공연장에 다녀온 자녀, 손녀들의 후기가 온라인을 도배했다. 팬을 배려한 편의시설, 설비투자에 감동했다는 내용이었다. “임영웅 때문에 삶의 활력을 찾았다는 어머니는 대접을 잘 받고 왔다며 만족해 하신다. 이래서 국민 효자다.” “콘서트 팬 서비스의 표준을 제시했다. 아이돌 소속사는 배워라.” ‘5070 시니어 덕질’ 현상을 이끄는 임영웅은 ‘발로트(발라드+트로트) 스타’로도 불린다.
딱딱한 경기장 의자에는 방석을 깔았고 간이화장실, 가족대기소도 따로 마련했다. 티켓 분실 관객을 위한 재발행 부스도 있었다. 공연장 안에는 고화질 초대형 스크린 12개가 콩알만 한 무대를 밀착해 보여줬다. 고음질 사운드도 깨끗했다. 2층 휠체어석 진행요원들은 임영웅이 그 앞을 지나갈 때 가까이 볼 수 있게 휠체어를 밀어줬다.
K팝 강국이라지만 아이돌 콘서트 풍경은 딴판이다. ”아이돌 콘서트 팬들은 불가촉천민”이란 자조적 표현이 나올 정도로 용역업체의 태도가 거칠다. 암표나 불법촬영을 막는다지만 젊은 여성 팬들을 대상으로 과도한 몸수색, 본인 확인 절차에 불쾌함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 팬을 서비스 아닌 통제 대상으로 보는 탓이다. 외국 팬에 비해 국내 팬을 차별한다는 불만도 많다. 관객 편의시설 미비는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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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비 팬덤 비즈니스로 성공한 K팝
아이돌콘서트 팬 푸대접은 고질적
'K팝 이후 K팝’ 시대에 팬 존중 필요
」
최근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여러 지표상 K팝은 위기”라며 그 근간으로 집중적 소비를 하고 몰입하는 ‘헤비 팬덤’을 지목했다. “헤비 팬덤에는 확장성이 없다.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라이트 팬덤이 붙는 구조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중적 팬도 끌어들이자는 얘기겠으나 아이돌 팬들이 발끈했다. K팝 팬덤을 과몰입·과소비로 몰아간 게 바로 K팝 기획사들이어서다. “라이트하게 즐기기에 무리일 정도로 콘서트 티켓값 인상을 주도한 하이브가 할 말은 아니다”는 반응도 나왔다. 음악 자체의 매력도 있지만, 아이돌에게 심리적으로 밀착해 과몰입·과소비하게 하는 여러 장치와 수익모델로 팬의 주머니를 열고, 세상 어디에도 없는 열성적인 후원자 팬덤을 구축해 성공한 것이 K팝이다. 앨범을 여러 버전으로 내고, 포토 카드 마케팅으로 다량 구매를 유도한다. 아이돌과 1대1로 만나는 팬 사인회 응모 자격을 갖추려면 수십 장, 수백 장 넘게 앨범을 사야 한다는 얘기도 돌아다닌다. 헤비 팬덤의 허리도 휠 지경이란 얘기다.
K팝은 눈부시게 진화 중이다. 한국인 멤버가 없는 K팝 그룹이 나오고, 방탄소년단 정국의 영어 곡 ‘seven’처럼 가수만 한국인일 뿐 서구 주류 팝으로 세계 차트를 석권하는 등 ‘K팝을 넘어서는 K팝’ 시대다. ‘K’의 정체성을 놓고 갑론을박하지만, 이규탁 조지메이슨대 교수의 말처럼 “K팝은 음악 스타일이라기보다는 비즈니스 모델”이고, 그 핵심은 기획사의 ‘아이돌 발굴·육성 시스템+강렬한 팬덤’이다(지금은 해외에 아이돌 육성 시스템을 이식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헤비 팬덤이 K팝의 발목을 잡는다고 탓하는 듯한 자기모순 대신 세계 수준의 K팝에 걸맞지 않은 관객 처우부터 바꿔야 하는 것 아닐까.
다시 임영웅 콘서트로 돌아와서, 할머니를 모셔다드린 손녀의 후기다. “한 할머니의 팬 엽서가 소개됐다. 우리가 가버린 다음에도 영웅이가 사랑받을 수 있게 젊은 관객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가슴이 찡했다. 이런 글도 있었다. “할머니 대신 피케팅(피 튀기는 티케팅) 너무 힘들다. 임영웅은 제발 자기 주제를 알고 다음 콘서트는 김포평야나 호남평야에서 열어라.”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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