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즌 런웨이를 통째로 삼켜버린 컬러는 바로 새빨간 ‘레드’! 지난 S/S 시즌부터 가속하기 시작한 레드의 질주가 올가을 정점에 달했다. 디자이너 불문하고 아우터, 드레스, 양말, 벨트, 모자, 백, 슈즈… 온갖 아이템이 빨갛게 물들다 못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빨간 룩이 연달아 쏟아졌다. 이와 함께 다시금 에디터의 레이더에 딱 걸린 아이템이 있으니, 바로 레드 스타킹(이 현상은 다음 시즌인 2024 S/S 컬렉션에서도 이어진다)! ‘빨간’ 스타킹이라니, 말만 들어도 벌써 부담스럽다고? 과거 레드 스타킹은 다소 촌스럽거나 관능미를 발산하는 여자들의 전유물이었다. 심지어 잘못 착용하면 빨간 내복처럼 보이기 십상인 이 어렵고도 어려운 아이템을 즐기려면 용기가 꽤 필요할 것만 같다. 하지만 이번 시즌, 레드 스타킹은 우리가 한 번쯤 꼭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키 액세서리다. 그리고 디자이너들의 제안을 제대로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당신이 생각했던 것만큼 어려운 아이템이 아닐 수 있다.
「 레드의 50가지 그림자 」
레드는 수만 가지 얼굴을 품고, 어느 맥락에 놓이는가에 따라 이미지를 휙휙 바꾸는 능력을 지녔다. 관능, 정열, 우아, 경고, 위험, 긴급, 속도감, 귀족적, 악마적, 뜨거운, 매운, 주인공, 진보, 결투, 강렬함…. 빨간색이 상징하는 이 다양한 이미지들이 스타일의 맥락 안에서도 표현될 수 있다는 게 이번 레드 전성기를 통해 증명되는 중이다. 레드 컬러의 스타킹도 마찬가지다. 이번 시즌 런웨이를 살펴볼까? 미우미우의 니트 카디건과 브리프 룩에 등장한 버건디 스타킹은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그래니 룩을 흥미롭게 만들었다. 구찌는 레드 스타킹에 시스루 톱과 스커트를 더해 레이어링의 쿨한 매력(관능미는 덤!)을 강조했다. 삭스파츠는 레더 코트나 클래식한 미디스커트 룩에 조밀한 짜임의 타이츠로 빈티지한 무드와 반전 포인트를 더했고, 탈리아 바이어는 스트라이프 패턴의 모던한 룩에 레드 스타킹으로 로한 감각을 더했다. 과거의 데이비드 코마는 버슬 스커트와 스타킹을 선명한 붉은색으로 맞춰 스페인 투우사처럼 뜨거운 정열의 감각을 더하기도. 돌체앤가바나는 모니카 벨루치로 대표되는 관능적인 이탤리언 뷰티 룩을 레드로 표현했는데, 시폰과 페이턴트 레더, 실크까지 다채로운 소재로 빨강을 겹겹이 레이어링하며 살갗이 비치는 시어한 레드 스타킹으로 다리를 감쌌다. 이처럼 레드 스타킹도 레드 컬러처럼 다양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과거의 레드 스타킹 룩이 있다. 바로 피비 필로가 이끌던 시절인 2017 S/S 셀린느 컬렉션! 시어한 드레스 자락 너머로 비치는 레드 스타킹이 어찌나 모던했던지! 많은 여자가 레드 스타킹이 이토록 세련돼 보일 수 있음을 깨닫게 한 귀중한 룩이다. 같은 컬렉션의 또 다른 룩도 인상적. 톱, 스커트, 귀고리까지 모두 푸른색인 청량한 룩에 새빨간 타이츠와 백을 더한 착장은 한 점의 회화를 보는 듯 감각적이다. 그리고 최근 공개된 2024 S/S 컬렉션에서도 레드 스타킹은 자신의 눈부신 존재감을 다시금 우리에게 알렸다. 지방시 컬렉션의 룩이 대표적인 예다.
「 신어만 볼게요 」
레드 스타킹 한 켤레의 값은? 배송비까지 해도 1만원 전후다. 1만원대 아이템으로 트렌드에 탑승할 수 있는, 이렇게 가성비 좋은 유행이라니! 이 정도면 한 번 시도해서 실패해도 부담 없지 않은가. 가벼운 마음으로 빨간 다리 유행에 편승해보자. 스타킹을 손에 쥐어도 좀처럼 어찌할지 모르겠다면 우선 작은 면적부터 시작해보길.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스커트나 원피스에 레드 스타킹을 신는 거다. 신발까지 붉은 톤으로 맞추면 다리가 길어 보이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레드 스커트에 레드 스타킹을 매치한 리즈 블럿스타인처럼! 트렌치코트와 같은 유틸리티 무드의 아우터로 무심함을, 트랙 재킷으로 캐주얼함을, 레드 스타킹과 대조되는 지적인 블루 셔츠로 감각적인 컬러를 더한 명민하고도 동시대적인 스타일링 또한 눈여겨 보길. 티파니 휴처럼 롱 코트에 착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특별한 옷을 고르지 않아도, 모노톤 코트에 레드 스타킹만 더해도 감각적이고도 개성 있는 스타일이 완성된다. 자신감을 얻었다면 다리의 노출 면적을 늘려도 좋다. 미니스커트나 미니드레스 아래로 다리를 드러내는 거다. 심플한 LbD에 레드 스타킹을 매치한 린드라 메딘의 룩이 바로 그 예. 그런지한 룩을 즐긴다면 짜임이 있는 타이츠를 활용해도 좋다. 삭스파츠 컬렉션처럼 빈티지한 감성이 담긴 타이츠, 또는 구찌 컬렉션처럼 조밀한 짜임의 피시넷 스타킹은 로라이즈 스커트의 허릿단 위로 밴드가 살짝 보여도 감각적이다. 만약 레드의 매력에 제대로 빠져들었다면 더 적극적으로 레드 전성기를 누려보자. 레드 스타킹에 레드 스커트, 톱, 가방 같은 ‘깔맞춤’을 더해보는 것. 레드의 면적이 넓어질 때도 디자인이 간결한 것이라면 오히려 우아하고 고상한 멋이 배가되는 마법을 느낄 수 있다. 다음 시즌의 프로엔자 슐러와 아크네 스튜디오, 이번 시즌 유돈초이의 올 레드 룩처럼!
그럼에도 여전히 레드 스타킹이 부담스럽다면? 그런 당신을 위한 플랜 B. 특히 옷장에 우아한 스커트보다 캐주얼한 옷이 많다면, 레드 양말로 부담 없이 도전할 것을 권한다. 발목에 라인이 있는 스포티한 디자인은 물론, 빈티지한 짜임을 더한 양말 역시 와이드 데님이나 니트 룩에 저항감 없이 녹아든다. 하지만 기왕이면 과감하게 레드 스타킹을 선택해보는 것을 강력 추천한다. 조금 낯설고 부담스러워도, 한 걸음 나아가면 새로운 즐거움이 펼쳐지는 트렌드의 세계. 이번 시즌에는 레드 스타킹 한 켤레로 이 즐거움을 맛보면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