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웨이스트와 미니멀 라이프의 상관관계

김초혜 2023. 11. 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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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에세이 <별일 아닌데 뿌듯합니다> 저자이자 초등학교 교사 이은재는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며 비건 지향 채식을 하고 있다.

제로웨이스트를 시작하기 전 내가 소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긴 건 가격이었다. 절약과 저축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꼭 필요한 물건만 구입하는 편이었다. 물론 절약하는 소비가 언제나 친환경적인 소비는 아니었다. 옷이나 신발이 필요한 경우 직접 매장에 가서 살펴본 다음 집에 와서 최저가를 검색해서 주문하곤 뿌듯해했다. 매장에서 바로 살 때보다 택배 박스, 비닐 등 많은 쓰레기가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선 무심했다. 포장재를 버릴 때 돈이 따로 들지는 않았으니까. 그랬던 내가 ‘제로웨이스트’라는 개념을 알게 된 건 2017년 합정의 한 북 카페에서 우연히 집어 든 책 〈나는 쓰레기 없이 산다〉를 읽으면서부터다. 독특한 제목에 끌려 책장을 넘겼는데, 얼얼하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나에게 쓰레기는 살아가는 동안 절로 ‘생기는’ 거였다. 불가항력적 현상처럼 돌아보면 어느새 산처럼 쌓여 있는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작가는 너무나 분명하게 ‘네 쓰레기는 네가 만든 것’이라고 나를 일깨웠다. 책 속에는 작은 사진이 실려 있었는데 저자, 비 존슨이 작은 유리병을 들고 있는 장면이었다. 사진 옆에는 ‘이만큼이 비 존슨 씨네 가족이 1년 동안 만든 쓰레기의 전부’라는 설명이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우리의 소비 방식, 생활 방식을 바꾸면 쓰레기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거였다. 또 다른 책인 이나가키 에미코의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에는 ‘진정한 미니멀 라이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힌트가 있다. 에미코는 일본 대형 신문사 기자였는데,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에서 충격을 받고 그동안 전기를 당연하게 ‘펑펑 써왔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고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 그는 극한의 절전 생활에 돌입했다. 전기를 안 쓸 방법을 찾다가 청소기와 전자레인지, 급기야 냉장고를 포함한 모든 가전제품을 버렸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만, 에미코의 책 제목처럼 ‘그리고 생활은 계속되었’고, 오히려 이전보다 더 충실하게 삶을 살게 됐다고 역설한다. 무거운 청소기를 버렸더니 빗자루와 걸레로 간결하게 청소하는 시간이 즐겁다는 걸 알게 됐고, 전자레인지를 버렸더니 차가운 냉동 밥 대신 갓 지은 밥을 자주 먹게 됐다고 말이다. ‘언젠간 먹겠지’라는 생각으로 온갖 것을 꾸역꾸역 쌓아둔 육중한 냉장고를 버리고 에미코는 텅 빈 자리를 보며 해방감을 느꼈다. 그 후 그는 오늘 먹을 식재료만 구입하는 심플한 식생활을 하며 돈을 절약했고, ‘말랭이’나 ‘소금누룩절임’ 같은 조상의 지혜를 빌린 맛있는 식품 저장법을 개척하면서 재밌고 신나는 방법을 찾았다. 어쩌면 진정한 미니멀 라이프는 천편일률적 공간 인테리어 레퍼런스에 그치는 것이 아닌, ‘많은 물건의 도움 없이도 계속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단단한 나’를 만드는 과정인 것 같다. 물건이 있다면 고민하지 않고 남들이 하는 방식을 답습했겠지만, 물건이 없기에 멈춰 서서 해결책을 골몰할 때 저마다 개성 넘치는 삶이 탄생하는 것 아닐까.

미니멀 라이프를 논할 때 무조건적으로 비움만 강조하는 걸 경계하고 있다. 단순하게 배우면 내 집 안은 깨끗해질지라도 결국 그 쓰레기를 지구의 다른 장소로 이동시키는 것일 테니. 어쩌면 ‘비움’에만 집중하는 미니멀 라이프는 ‘버리는 것을 제로(0)로 만들려는’ 제로웨이스트 정신과 대치될 수 있다. 가령 1회용 행주를 쓰고 바로 버림으로써 부엌이 깔끔해 보이고, 작게 소분된 포션 잼이나 버터를 먹고 바로 버림으로써 냉장고 공간을 여유롭게 만들 수 있을 거다. 그렇지만 이런 방식은 그저 쓰레기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결국 진정한 미니멀 라이프의 시작은 ‘잘 채움’이 아닐까. 진짜 필요한 물건이 맞는지, 이미 내가 가진 물건으로 대체할 수 있는지, 가까운 미래에 쓰레기로 전락할 물건은 아닌지 등 최초 소비 단계에서 심사숙고하는 태도를 지닌다면 내 공간을 침범하는 물건과 그에 딸려오는 각종 비닐, 플라스틱 포장재들이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거다. 이렇게 채움이 줄어들면 억지로 비움을 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내가 사는 곳이 심플해진다. 소비를 줄이고 채움 앞에서 신중한 태도를 갖는 것을 상상해 보자. 언뜻 생각하면 불만족스러울 것 같지만 막상 해보면 내 공간과 인생을 훨씬 단순하고 깨끗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고민이 줄어든다.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면서 내 일상은 전보다 재밌어졌다. 매일 요리조리 창의성을 발휘해 쓰레기 없이 사는 미션을 수행하는 기분이 든다. 오스트리아 출신 철학자 이반 일리치는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에서 현대인이 ‘돈’과 ‘편리’를 추종하면서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낼 힘은 점점 잃고 있다고 역설했는데, 이제야 내 안의 잠재력을 찾은 것 같다. 필요한 게 생기면 사는 게 편하지만 쓰레기를 만들기 싫어서 내 손으로 서툴게 만들어본 경험을 통해 ‘나 역시 새로운 방법을 찾아낼 힘이 이토록 많았구나’ 하고 자각하게 된다. 내가 지향하는 미니멀 라이프는 나도 행복하면서 지구에 흔적을 적게 남기는 거다. 무조건 편리하게 살려고 하거나 욕구가 생기는 족족 채우고 소비하다 보면 돈도 많이 들고, 건강에도 좋지 않고, 쓰레기와 온실가스 등이 배출돼 지구 환경에도 좋지 않다. 반대로 지구와 환경만 생각해 내 모든 욕망을 억제하고 고생해야 한다면 그 또한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것을 통해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지 찾고, 나머지 부차적 욕망은 절제하며 양측의 균형을 이루는 삶을 꿈꾸고 있다. 소박하고 단순하되 행복한 미니멀리스트로 살아가고 싶다.

이은재

환경 에세이 〈별일 아닌데 뿌듯합니다〉 저자이자 초등학교 교사.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며 비건 지향 채식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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