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日여정 끝나 아쉽지만 목표 다 이뤄 행복”
“한국 여자골프를 대표할 재목감이 분명하니 눈여겨 봐줬으면 한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인 2005년에 강원도 정선군 하이원CC 개장 기념 라운드 때 앳된 여고생 골퍼를 기자에게 소개해 주면서 그의 후견인이라는 사람이 건넨 말이다.
당시 소개 받은 여고생은 이보미(35)였다. 이보미는 그 후견인의 기대와 예상대로 한국 여자 골프의 간판으로 성장해 일세를 풍미했다.
2007년 KLPGA 투어에 데뷔한 이보미는 4승을 거둔 후 2011년 일본으로 무대를 옮겼다. 2012년 첫 우승을 시작으로 올해 은퇴까지 총 298개 대회에 출전, 통산 21승을 거뒀다.
2015년과 2016년에는 2년 연속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 상금왕을 차지했다. 2015년에는 여자 골프 선수 최초로 단일 시즌 상금 2억엔을 돌파했다. 그리고 2017년 이토 엔 레이디스 우승으로 JLPGA투어 통산 20승을 채웠다. 그러면서 KLPGA투어 영구시드권을 손에 넣었다. KLPGA투어는 해외 투어에서 20승을 달성한 선수에게 영구적으로 투어에 출전할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그랬던 이보미가 지난달 20일 일본 효고현 고베 인근 마스터즈 골프클럽에서 열린 JLPGA투어 노부타그룹 마스터즈 GC 레이디스 2라운드를 끝으로 13년간의 JLPGA투어 여정을 마감했다. 일본 무대 공식 은퇴를 선언한 것이다.
이보미는 최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만감이 교차했다. 일본에서 시합을 할 수 없다는 게 참 아쉬웠다”면서 “한편으로는 시원섭섭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하던 일을 그만둬야 하니까 걱정도 들었다”고 심경을 밝혔다.
그의 은퇴식에는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주최 측이 마련한 핑크색 티셔츠를 입은 수백 명의 팬들이 함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일본 팬들로부터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았는가를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이보미는 “울지 않으려 했는데 눈물이 났다. 최근 5년간 성적이 좋지 않아 저도 힘들고 팬들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면서 “그럼에도 ‘괜찮다’고 위로해 주시고 ‘힘내라’고 격려해 주셔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근데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울컥해졌다”고 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 개선에도 도움을 줬다는 평가를 받는 이보미에게 JLPGA투어는 연말 시상식 때 특별공로상 수여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JLPGA투어 시상식에서 특별공로상 수상자는 2015년 일본 여자골프의 전설 히구치 히사코가 유일하다. 만약 이보미가 수상을 하게 되면 역대 두 번째이자 외국인으로는 최초다.
이보미는 JLPGA투어 상금왕 2연패를 하고 난 직후 급격한 하향세를 보였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딱 30살이 되었을 때다. 서른에 내 인생의 정점을 찍고 내리막을 탈 거로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빨랐다”며 “너무 많은 관심이 쏟아지면서 정신적으로 좀 힘들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가 터지면서 걷잡을 수가 없게 됐다”고 당시를 뒤돌아봤다. 그는 이어 “특히 잦은 격리로 경기 감각을 잃은 데다 보고 싶은 가족들 만날 수 없는 것도 힘들었다”며 “그러면서 즐거웠던 골프 투어 생활이 점차 일로 느껴져 그때 완전 번아웃이 왔던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고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절친’ 신지애(35)를 타산지석 삼아 마지막 열정을 불태워 보기도 했다. 이보미는 “(신)지애는 친구지만 정말 대단하다. 적잖은 나이에도 계속 자기만의 목표를 만들어 그걸 이뤄 나가는 모습이 너무 멋있다”면서 “지애와 달리 나는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목표들은 다 이뤘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이상의 목표를 세우지 못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뤄낸 목표 중에서는 결혼도 포함돼 있다고 했다. 이보미는 2019년 12월에 배우 김태희의 동생 이완(39)과 결혼했다. 그는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32세 때 목표대로 결혼했다”면서 “너무너무 행복하다. 성적으로 행복감을 느끼던 때와는 완전 다르다”고 했다.
2세 계획도 궁금했다. 그는 “투어에 집중하다 보니까 전혀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조금 휴식기를 가지면서 나만의 자유 시간을 즐기고 싶다”고 했다. 그는 “(박)주영이나 (안)선주 언니가 아이를 낳고도 우승하는 걸 보면서 나도 그럴 때가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라며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다. 당분간은 쉬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보미는 시합이 없을 때는 골프 마니아인 남편과 자주 라운드를 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물론 내기도 한다. 오빠가 80대 초반을 친다. 그래도 전후반에 4개씩 핸디를 준다”면서 “때로는 버거울 때가 있지만 가급적 내가 지는 날이 천천히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며 활짝 웃었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JLPGA투어 진출을 바라는 선수들이 있다. 그런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하자 이보미는 “오기만 하면 투어에 잘 적응할 거다. 투어 환경 자체가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조성돼 있다”면서 “그보다는 언어적인 부분이 불편함을 가져다줄 수 있으니 그에 대한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것이다”고 했다.
이보미는 일본 무대는 은퇴했지만 KLPGA투어에서는 내년에도 팬들과 만날 예정이다. 그는 “KLPGA투어 시즌 최종전인 SK쉴더스·SK텔레콤 챔피언십에 출전한다. 내년에 투어를 뛰더라도 많은 대회는 아닐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KLPGA투어 후배들의 기량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보미는 “탄탄한 기본기로 출중한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들이 워낙 많다”면서 “그런 점에서 한국 여자 골프의 미래는 아주 밝다”고 했다.
그러면서 침체국면인 한국 여자 골프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이보미는 “한국 골프가 강하다는 걸 세계적으로 좀 더 알릴 수 있는 것들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면서 “외국 투어에 도전하는 후배들이 많이 생겼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올 시즌 한국여자골프는 일본무대에서 3승,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4승을 거두고 있다. 승수만 놓고 보면 분명 기대 이하다. 그 중에서도 LPGA투어는 ‘코리안 군단’의 쇠락이 역력하다.
이보미는 그런 현상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는 “못하는 게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하면서 “전성기 때는 20명 이상의 정상급 선수들이 활동했지만 지금은 양적으로 그렇지 못하다. 그런 상황에서 ‘안되냐’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좀 더 큰 꿈을 가진 선수들이 많이 나오고 그걸 서포트해 줄 수 있는 스폰서 기업들이 많아지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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