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하게 노트북 좀 빌려줄래요?”…눈물의 ‘꼼수 야근’

황민혁 2023. 11. 5.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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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을 해야 하는데, 노트북 좀 빌려주실래요?" 한 유통 대기업 사무직으로 일하는 A씨는 최근 직장 동료들에게 이런 부탁을 받는다.

퇴근 시간에 맞춰 꺼진 컴퓨터를 다시 켜서 추가 근무를 하려면 부서장 결재가 필요한데, 일부 부서장은 '야근비 부담'을 이유로 이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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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을 해야 하는데, 노트북 좀 빌려주실래요?” 한 유통 대기업 사무직으로 일하는 A씨는 최근 직장 동료들에게 이런 부탁을 받는다. 퇴근 시간에 맞춰 꺼진 컴퓨터를 다시 켜서 추가 근무를 하려면 부서장 결재가 필요한데, 일부 부서장은 ‘야근비 부담’을 이유로 이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야근이 적은 A씨에게 노트북을 빌려달라고 찾아오는 직원들이 늘어났다. A씨는 “3~4개 부서 동료들이 이런 부탁을 해왔다”고 말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일부 기업들은 포괄임금제와 ‘컴퓨터(PC)오프제’를 결합해 운용하고 있다. 포괄임금제는 일정한 연장근로시간에 대한 임금을 미리 정해놓고, 이를 실근로시간과 상관없이 고정 지급하는 제도다. PC오프제는 점심시간이나 퇴근 이후 업무용 컴퓨터를 자동으로 종료하는 것이다. 직원들의 식사, 휴식, 퇴근 시간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A씨가 근무하는 회사도 포괄임금제를 채택하고 있다. 연장근로시간을 15~20시간으로 약정하고, 이를 반영해 고정된 임금을 지급한다. 15~20시간보다 더 많이 일하는 직원에겐 회사가 추가 근무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그런데 일부 부서장들이 ‘회사 부담’을 언급하며 약정 근무시간을 이미 채운 직원들의 야근 결재를 해주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직원들도 야근을 원하지 않지만 주어진 기간 안에 업무를 마무리해야 하는 시기에는 어떻게든 연장 근무를 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일은 일대로 시키면서, 돈은 더 주기 싫다는 것”이라며 “야근 많이 안 한(15시간 미만) 사람의 노트북을 구해 그것으로 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PC오프제는 포괄임금제의 ‘공짜 야근’ 부작용을 보완하고, 주 52시간 근무제 준수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지만 부작용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지난달 1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나온 허진영 펄어비스 대표를 향해 “근무시간이 52시간에 다다르면 서브(보조) 컴퓨터나 공용 컴퓨터를 사용해 일을 계속하도록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허 대표는 “서버 업데이트를 위한 공용 PC로 PC오프제를 우회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제보로 알게 됐다”면서 고개를 숙였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그간 들어온 제보들에 비춰 보면 회사가 직원들의 노동 시간을 조작하는 건 너무 쉬운 일”이라며 “포괄임금제 폐지, 출퇴근 시간 기록 의무제 도입 등으로 이를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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