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DJ처럼…尹도 총선 직전 신당? [신율의 정치 읽기]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윤 대통령 신당이다. 과거에도 대통령이 신당을 만드는 사례가 드물지 않았다. 김영삼 정권 당시 신한국당, 김대중 정권 당시 새천년민주당 그리고 노무현 정권의 열린우리당 등이다.
신한국당은 1995년 12월에 창당됐다. 당시 15대 총선을 4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창당 이유는 다양했을 테다. 김영삼 대통령은 당내 5공 세력과 신민주공화당 세력과의 결별이 필요했다. 민주계, 민정계 그리고 공화계, 이렇게 ‘한 지붕 세 가족’ 형태였던 민자당으로서는 국정 운영 동력을 확보할 수 없었다. 김 대통령은 신한국당 창당을 통해 결별한 민정계와 공화계를 대신해, 이회창·박찬종·이재오·김문수·이우재·홍준표·맹형규·정의화 등의 정치 신인을 대거 영입했다. 당시 총선에서 신한국당 물갈이 비율은 42%에 달했다. 물갈이 덕분인지 신한국당은 15대 총선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서울에서 야당을 누른 여당이 됐다. 원내 제1당이 되는 데도 성공했다. 하지만 원내 과반 의석을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다.
김대중 정권 당시 새천년민주당은 16대 총선을 3개월여 앞둔 2000년 1월에 창당됐다.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총재를 맡았고, 국민신당계인 이만섭 의원과 이인제 의원이 전면에 나서 총선을 진두지휘했다. 하지만 총선 결과는 애석하게도 한나라당에 밀린 새천년민주당의 패배였다.
열린우리당은 17대 총선을 5개월여 앞둔 2003년 11월에 창당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초 열린우리당 창당에 반대했다. 그러나 민주당 내 친노 의원들과 개혁파 세력이 신당 창당을 강력히 주장하며 탈당하려 하자 결국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절대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창당 당시 대통령 지지율을 살펴보자. 신한국당 창당 무렵 김영삼 대통령 지지율은 32%였다. 새천년민주당이 창당될 즈음 김대중 대통령 지지율은 49%였다. 열린우리당 창당 때 노무현 대통령 지지율은 22%였다(한국갤럽 기준). 이런 과거 사례를 통해 대통령 신당이 출현할 경우, 그 성공 여부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대통령이 신당을 만든 시기는 모두 총선 직전이었다. 신당 창당 목적이 총선 승리와 여당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기 위함이라는 점도 공통적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민정계와 공화계 때문에 당에 대한 장악력 확보가 어려웠고, ‘민주적 정통성’ 역시 인정받기 쉽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총선 승리의 절박함 때문에 신당 창당 필요성을 느꼈을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낮은 지지율 때문에 전통 민주당 세력의 흔들기가 심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나중에는 신당 창당에 찬성했을 테다.
이런 공통점이 있지만, 결과는 달랐다. 김대중 대통령의 ‘신생 여당’은 총선에서 패배하고, 신한국당과 열린우리당은 승리했다. 이 중 열린우리당이 총선에서 과반 이상 의석을 확보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당시 국민들은, 노 대통령에 대한 지지 여부를 떠나 국민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국회가 손쉽게 탄핵하는 것을 보고 분노를 느끼며 신생 여당 손을 들어줬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대통령 지지율과 신생 여당 총선 승리 가능성의 함수관계다. 일반적으로 대통령 지지율이 45% 이상이면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한다. 그런데 지지율 32%였던 김영삼 대통령이 신한국당을 창당하고 치른 총선 결과는 과반 의석 확보에는 실패했지만 원내 1당 자리를 차지한 신한국당의 승리였다. 반대로 지지율이 50%에 육박했던 김대중 대통령은 여당을 재정비했지만 원내 1당이 되지 못했다. 지난 20대 총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도 50%에 육박했지만 총선에서 패배했다. 결국 대통령 지지율과 대통령이 만든 신당의 총선 승패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런 과거를 돌아보면, 윤석열 대통령 신당설(說)이 나오는 것이 특이한 현상은 아니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높지 않지만 과거 15대 총선 직전 김영삼 대통령 지지율과 큰 차이가 없다. 또 신한국당이 15대 총선에서 1당이 됐듯, 이번에도 신당 창당이 총선 승리의 견인차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윤 대통령이 신당을 창당한다면, 그 목적은 과거 여당 신당 창당 사례와 마찬가지로, 총선 승리와 당에 대한 안정적 장악력 확보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정권 재창출일 것이다.
여기서 놓치면 안 되는 사실이 있다. 김영삼 대통령이나 김대중 대통령은 모두 지역 맹주였다. 따라서 확실한 고정적 지지 기반이 있었다. 지역 기반이 있을 경우, 신당을 창당해도 어느 정도 지지율은 기본으로 확보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지역 기반이 없다. 안정적 지지 기반이 있다 보기 힘들고, 이런 상황에서 신당을 창당하는 것은 상당한 모험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지역적 기반이 취약했던 대통령이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에게는 선명한 이념 지향성이 있었다. 또한 그의 삶의 궤적이 이념 지향성의 실현을 위한 길이었다는 사실은 많은 이를 움직였다. 그렇기에 우리 정치사 최초의 팬덤이 등장할 수 있었다. 이런 팬덤은 취약한 지역 기반을 대신했다.
종합해보면, 여당의 재편 혹은 여당발 정계 개편 시나리오가 성공하려면, 지역 기반이 있거나 이념 지향성에 입각한 팬덤 같은 탄탄한 지지 기반이 있어야 한다. 이런 조건이 없는 상황에서 신당을 창당한다면, 장악력 확보는 가능하겠지만 총선 승리는 장담하기 어렵다. 이때 ‘미니 여당’으로 국정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제대로 된 국정 비전을 제시할 수 없고 정권 재창출도 쉽지 않아진다.
이뿐인가. 보수층이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유는 윤 대통령이 보수의 적자기 때문이 아니다. 윤 대통령이 성공해야 보수가 다시 한 번 집권할 수 있는 기회가 확보되기 때문일 수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윤 대통령이 신당을 만들며 정치적, 이념적으로 다양한 세력과의 연합을 꾀한다면, 이는 매우 위험한 시도가 될 수 있다. 오히려 보수층 지지가 갈려 신당이 총선에서 승리할 확률이 낮아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윤 대통령의 ‘합리적 선택’은 정통 보수 정당 기반 위에서 중도 확장을 꾀하는 것이다. 신당 창당을 통한 판 흔들기 그리고 다양한 이념 색채를 함께 아우르는 것은 아닐 수 있다. 말로는 강성 보수를 자처하지만 함께하는 세력은 정통 보수가 아닐 경우, 선거가 상당히 힘들어질 수 있다. 오히려 말로는 중도를 외치지만 보수층에 튼튼하게 뿌리박는 전략이 합리적이다.
대통령 신당이 과연 출현할까. 이번 총선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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