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시장의 10년 꿈이 누군가에겐 지독한 악몽

성낙선 2023. 11. 5.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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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여행] 내년에 폐쇄되는 서울혁신파크, 그곳에서 맞이하는 가을 풍경

[성낙선 기자]

 서울혁신파크, 길가에서 바라보는 나무숲.
ⓒ 성낙선
서울시 은평구 녹번동에 있는 서울혁신파크는 다른 데서는 찾아보기 힘든, 다양한 기능을 가진 공원이다. 겉보기엔 서울에 있는 다른 공원들과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공원 안쪽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시민들에게 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 서울혁신파크가 곧 문을 닫는다고 해서, 올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가을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 봤다. 먼저, 차량이 무수히 지나다니는 도로 곁으로 나무가 울창한 숲이 보인다. 도심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풍경이다. 그 안쪽으로는 가을색이 짙어가는 공원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곳에서 시민들이 망중한을 보내고 있다. 가을 한낮에 볼 수 있는 따듯하고 평온한 풍경이다.
 
 서울혁신파크, 피아노공원.
ⓒ 성낙선
       
그 시민들 중에는 공원 벤치에 앉아 점심을 먹는 사람도 있다. 서울혁신파크에서 거의 매일, 일상적으로 보게 되는 풍경 중에 하나다. 공원 한가운데에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정자가 있고, 그 안에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다. 그 주변을 또 아름드리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다. 그 풍경이 인상적이다. 그 풍경에서 연유해, 사람들은 이곳을 피아노공원이라 부른다.
피아노공원에서 안쪽을 좀 더 걸어들어가면, 넓고 평탄한 잔디마당과 운동장이 나온다. 잔디마당에 소풍을 나온 가족과 반려견들이 보인다. 운동장 한쪽에는 특이한 형태의 농구 골대가 세워져 있다. 일반적인 골대와는 달리 골대 하나에 골을 넣는 바구니가 여러 개다. 조금 색다른 길거리농구를 즐기기 위해 골대에 변형을 주었다.
 
 서울혁신파크 운동장의 특이한 농구 골대.
ⓒ 성낙선
 
문을 굳게 걸어잠근 건물들

잔디마당을 지나서는 건물들이 밀집해 있는 공간이 나온다. 예전에 국립보건원 등이 사용하던 건물들이다. 그 건물들 중에 삼각형 모양의 지붕을 얹은, 낡은 단층 건물이 하나 있다. 세마창고라는 이름이 붙은 공공 갤러리다. 이곳은 전시 작품도 특별하지만, 전시장 내부 공간이 더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던 곳이다.

세마창고는 질병관리본부가 있을 당시, 시약 창고로 쓰였던 곳이다. 그때 쓰던 선반이 그대로 남아 전시 공간의 일부로 사용됐다. 지붕도 창고로 사용되던 당시의 뼈대가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어두운 창고를 전시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지붕으로 햇빛이 스며들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세마창고는 10월말로 문을 닫았다.
 
 서울혁신파크 내 공공갤러리, 세마창고.
ⓒ 성낙선
 
 세마창고 내부, 전시 작품 일부.
ⓒ 성낙선
 
세마창고를 나와 옆으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예전에 경비실로 쓰였을 법한 작은 건물이 하나 보인다. 거기에 작은 그림 액자들이 잔뜩 걸려 있다. 양천리갤러리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 전시장은 작품 전시 공간을 갖기 힘든 마을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곳에서 얼마 전까지 한 마을작가의 '생애 첫 개인전'이 열렸다. 마을 화가들에겐 이보다 더 소중한 공간이 없다.
누가 이 공간을 갤러리로 만들 생각을 했는지, 유쾌한 발상이다. 작고 허름한 경비실을 전시공간 등으로 사용하는 것도 이곳 서울혁신파크가 아니면 찾아볼 수 없는 풍경 중에 하나다. 하지만 이제 누군가의 생애 첫 개인전이 두 번째 개인전으로 이어질 기회 같은 건 영영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양천리갤러리에서 보았듯이, 서울혁신파크는 상당히 소박하고 정겨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공원이다.
 
 서울혁신파크, 양천리갤러리.
ⓒ 성낙선
 
 서울혁신파크, 해질 무렵의 양천리갤러리.
ⓒ 성낙선
그런데 이 서울혁신파크가 요즘 들어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스산하고 어두운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일부 건물은 입구 유리문에 출입 금지 안내문이 붙었다. 양천리갤러리와 같은 경비실 건물이면서 동네 사랑방 구실을 했던 한평책방도 문이 굳게 잠겼다. 간판은 어디론가 떨어져 나가 보이지 않고, 불은 꺼졌다.
한평책방만 그런 게 아니다. 서울혁신파크 안 곳곳에서 이처럼 문을 굳게 걸어잠근 건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곳에 사무실을 두고 있던 상당수의 사회적기업과 시민단체들이 이미 건물을 비우고 떠난 상태다. 사람들이 사라진 공간에 찬바람이 분다. 서울혁신파크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서울혁신파크, 한평책방.
ⓒ 성낙선
 
뒷전으로 밀려난 시민들

서울혁신파크가 내년에 문을 닫는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과 같은 이곳의 가을 풍경도 지나간 추억으로만 간직하게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세훈 시장이 취임한 이후로, 이곳 서울혁신파크에 다시 오세훈식 특유의 개발 바람이 불고 있다. 서울시는 이곳에 삼성동 코엑스에 맞먹는 대규모 '융복합도시'를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말 이곳에 '60층 규모 초고층 랜드마크 건물, 여의도 더현대서울보다 큰 대규모 복합문화대형 쇼핑몰, 공공형 주거단지, 창업지원시설 등을 건설한다'는 황금빛 계획을 발표했다. 축구장 15개 크기에 해당하는 11만m² 부지에, 1조 5천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2030년에 대규모 '경제문화타운'을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서울혁신파크 내 극장동의 굳게 잠긴 문.
ⓒ 성낙선
서울시가 수립한 계획에 따르면, 2년 뒤인 2025년부터 공사가 시작된다. 하지만 착공 시점이 2년 뒤인 것과 상관 없이, 당장 올해 말로 서울혁신파크 내 서울혁신센터 등 대부분의 건물이 폐쇄된다. 서울혁신파크를 운영하고 관리하던 직원들도 모두 일자리를 잃게 된다. 서울혁신파크 안에 내걸린 현수막이 그런 사정을 알려준다.
공사가 시작되는 2025년 이전에는 서울혁신파크 내 일부 공간을 계속 공원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내년에 서울시 계획이 현실화 되기 시작하면, 서울혁신파크가 지금처럼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남을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이곳의 풍경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서울혁신파크, 잔디마당.
ⓒ 성낙선
 
달라지는 건 풍경뿐만이 아니다. 서울혁신파크는 지금까지 전반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증진하는 쪽으로 활용돼 왔다. 지난 8년여간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시민단체들이 일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하지만 이제 이들 200여 개에 달하는 시민단체와 사회적기업, 협동조합들도 모두 어디론가 짐을 싸서 떠나는 처지가 됐다.
  
서울혁신파크는 또 시민들에게는 누구나 손쉽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체험 공간을 제공해 왔다. 이곳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수많은 강연과 축제, 전시, 공연 등의 다양한 행사가 진행됐다. 이제는 이 행사들도 모두 중단해야 한다. 결국 시민들이 지금까지 서울혁신파크에서 누려온 각종 혜택들도 다 함께 사라진다.
 
 서울혁신파크, 포장이 없는 가게.
ⓒ 성낙선
만세를 부르는 개발주의자들

서울혁신파크를 보고 있으면, 한때 상암동 석유비축기지와 연남동 경의선숲길 위를 떠돌던 암울한 그림자가 떠오른다. 과거의 석유비축기지와 경의선숲길 또한, 지금의 서울혁신파크처럼 대규모 건축 개발이 논의되던 곳이다. 그때 개발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힘을 얻었다면 지금과 같은 석유비축기지와 경의선숲길은 없다.

서울혁신파크 개발 계획에도 찬반 입장이 엇갈린다. 찬성 측은 개발이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반대측은 서울시의 계획이 민의를 수렴하는 공적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것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서울혁신파크 개발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거리 집회를 여는 등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다.
 
 서울혁신파크, 피아노공원의 밤 풍경.
ⓒ 성낙선
서울혁신파크는 원래 옛날 국립보건원 등이 있던 곳으로, 현재 서울시가 보유한 시유지 중 가장 큰 땅에 해당한다. 2006년 국립보건원이 청주시로 이전한 뒤, 2009년 서울시가 이 땅을 매입한다. 그후, 2010년 오세훈 시장이 이곳에 '40층 랜드마크 건물 등이 포함된 경제문화타운'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그 꿈은 오래 가지 않는다.

2011년 오 시장이 무상급식 파동으로 시장직에서 물러나면서 계획은 중동무이된다. 그러다  2015년 박원순 시장 재임 당시, 기존 건물을 재활용하는 방식으로 서울혁신파크를 조성한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2021년 오 시장이 다시 서울시장으로 돌아오면서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간다. 그 사이 오세훈 시장의 꿈도 자라서 '40층 랜드마크'가 '60층 랜드마크'로 몸을 키운다. 1조 5천억 원. 개발주의자들이 다시 만세를 부르고 있다.

해가 질 무렵, 서울혁신파크에서 또 다른 풍경을 보게 된다. 조명과 가로등이 켜지면서, 피아노공원 전체가 화사한 분위기로 변한다. 그곳에 낮 시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산책을 즐긴다. 그 중에는 문이 굳게 닫힌 건물들 사이로 조깅을 하는 사람도 보인다. 그들이 생명이 다해가는 서울혁신파크에 마지막 족적을 남기고 있다.
 
 서울혁신파크 내 재생동 벽면을 장식한 조형물.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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